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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 대신 나트륨 배터리…게임 체인저?

전기차 성능을 좌우하는 신개념 배터리가 속속 등장하는 가운데 최근 나트륨을 활용한 배터리가 등장해 화제다.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 대비 가격을 대폭 낮출 수 있어 배터리업계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할지 주목을 끈다.

나트륨 배터리를 탑재한 중국 장화이자동차(JAC)의 시험용 전기차 ‘E10X’. (JAC모터스 제공)
나트륨 배터리를 탑재한 중국 장화이자동차(JAC)의 시험용 전기차 ‘E10X’. (JAC모터스 제공)

中 기업, 나트륨 배터리 시장 공략

저렴하고 충전 시간 짧아 매력적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1위 기업인 중국 CATL은 최근 중국 체리자동차에 나트륨이온 배터리를 납품하기로 했다. 나트륨이온 배터리와 리튬 배터리를 동시에 탑재하는 방식으로 1회 충전 주행 거리를 500㎞ 수준으로 높일 것이라는 계획도 내비쳤다.

 

이미 나트륨 배터리를 상용화한 전기차도 등장했다. 중국 장화이자동차(JAC)는 나트륨 배터리를 탑재한 시험용 전기차 ‘E10X’를 공개했다. 전기차 E10X는 JAC와 폭스바겐이 합작한 ‘시하오’ 브랜드가 선보인 경형 전기차다. 중국 배터리 업체인 하이나배터리가 개발한 나트륨 배터리를 적용했다. E10X는 25㎾h 용량 배터리를 얹어 1회 충전 시 최대 250㎞를 주행할 수 있다. 세계 전기차 판매 1위에 오른 중국 BYD가 올해 선보일 신형 전기차에 나트륨 배터리를 탑재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중국 정부도 힘을 보탰다. 오는 2025년까지 추진하는 ‘에너지 분야 과학기술 혁신을 위한 14차 5개년 계획’에서 재생에너지 이용 확대에 도움이 되는 나트륨 배터리 연구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미쓰이물산전략연구소가 최근 10년간 글로벌 혁신 배터리 개발 관련 특허를 분석한 결과, 전체 특허(9862건)의 절반 이상인 5486건이 중국 몫이었다. 이 중 상당수가 나트륨이온 배터리 관련 특허다.

 

중국 투자은행 CICC는 “2023년이 나트륨이온 배터리 산업화 원년이 될 것”이라며 “2025년까지 전 세계 나트륨이온 배터리 출하량이 90GWh를 넘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전 세계에 등록된 전기차 배터리 총 사용량이 517.9GWh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무시 못할 규모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전 세계에서 계획 중이거나 건설 중인 나트륨 배터리 공장 20곳 중 16곳이 중국에 있다. 2년 후 중국이 전 세계 나트륨 배터리 생산능력의 95%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직은 생소한 나트륨이온 배터리 개념부터 들여다보자.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가 리튬이 양극과 음극을 오가며 전기를 만드는 구조라면, 나트륨이온 배터리는 리튬을 나트륨으로 대체한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나트륨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소금(염화나트륨)의 주성분이다. 지구상에서 여섯 번째로 많은 원소로 가격은 리튬 대비 80분의 1 수준에 그친다. 그럼에도 리튬보다 400배가량 풍부한 매장량을 자랑한다.

 

원재료 차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양극재, 음극재에 들어가는 소재가 달라지는데 리튬이온 배터리는 동박이 사용되지만, 나트륨이온 배터리는 알루미늄박이 쓰인다. 알루미늄박은 고전압에서 쉽게 산화되지 않는 특성이 있어 강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나트륨 배터리 가격이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30~40%가량 저렴할 것으로 내다본다. 리튬보다 매장량이 많고 채굴과 정제가 쉬운 덕분이다.

 

리튬이온 배터리 셀 가격이 ㎾h당 132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나트륨이온 배터리 셀 가격은 77달러로 ‘반값’에 불과하다. 중국 CATL이 ‘규모의 경제’로 ㎾h당 40달러까지 비용이 낮아질 것이라고 밝힌 만큼, 전기차 1대당 9200달러의 비용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 배터리 가격이 전기차 판매 단가의 40%를 차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나트륨 배터리를 채택할 경우 차량 가격을 대폭 낮출 수 있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서 성능이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충전에 걸리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저온에서의 에너지 유지 능력이 뛰어난 것이 나트륨 배터리의 장점이다. 나트륨 배터리는 상온에서 15분 만에 80% 충전이 가능할 정도로 충전 속도가 빠른 데다 영하 20도에서도 90% 이상 성능을 발휘한다. 저온에서도 얼마든지 고성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화재 사고가 잦은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열 폭주 우려가 낮은 것도 장점이다. 충전, 방전 수명은 3000회 이상으로 리튬 배터리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다. 테슬라 4680 원통형 배터리 충방전 사이클(1500회)의 2배에 달한다.

 

폐배터리 재활용에서도 환경 친화적이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재활용 기술과 설비가 나트륨이온 배터리에 그대로 사용될 수 있는 데다, 나트륨 배터리는 코발트와 흑연이 없어 환경오염 우려가 적다.

나트륨이온 배터리와 리튬 배터리 생산 원가 비교

단점도 만만찮아

무겁고 에너지 밀도 낮아

물론 단점도 꽤 있다. 일단 나트륨 배터리 에너지 밀도는 리튬 배터리의 40% 수준에 그친다. CATL은 나트륨 배터리 연구개발(R&D)을 지속해 에너지 밀도를 리튬 배터리의 40%에서 7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나트륨 배터리가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무겁고 부피가 큰 점도 아쉽다. 나트륨은 리튬보다 원자가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트륨 배터리가 급부상한 것은 세계 각국의 리튬 확보 전쟁이 격화된 영향이 크다. ‘하얀 석유’로 불리는 리튬 가격이 급등하면서 리튬 배터리 원가 부담이 커졌다. 전기차 판매가 급증하면서 전기차 배터리 핵심 원료인 리튬 가격은 2021년 초 t당 5만위안에서 지난해 말 약 57만위안으로 10배 넘게 폭등했다. 상대적으로 값싼 나트륨 배터리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나트륨 배터리 생산을 둘러싼 논란도 적잖다. 나트륨의 주원료인 소다회는 대부분 미국에서 생산된다. 미국이 전 세계 채굴 가능 매장량의 90%를 보유했다. 미국 와이오밍주 남서부 사막 깊숙한 곳에 5000만년 전 형성된 광대한 소다회가 매장돼 있다. 중국은 자국 내 소다회 자원이 부족하고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석탄을 원료로 사용하는 화학공장에서 합성 소다회를 생산한다.

 

하지만 중국의 합성 소다회 산업은 환경오염 문제로 악명이 높다. 2016년 당시 중국에서 합성 소다회를 만들고 난 뒤 나오는 찌꺼기인 알칼리광재 더미가 무너져 인근 강을 크게 오염시키기도 했다. 이에 중국 환경청은 소다회 산업의 정화 작업을 진행 중이라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과의 협력이 절실하다. 아직까지 나트륨 배터리의 전기차 상용화가 쉽지 않은 만큼 전기차보다는 높은 에너지 밀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에너지저장장치(ESS)용으로 주로 쓰일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나트륨 배터리 기술력이 취약한 상황에서 대량 생산과 관련 기술 개발로 리튬 가격이 떨어지면 나트륨 배터리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잖다. 그럼에도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 중국에서 나트륨 배터리 생산이 늘어나는 데다 기술력이 보완된다면 충분히 배터리업계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다.

 

“향후 출시될 나트륨 배터리의 성능, 스펙, 가격에 따라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업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중국 CATL 주장대로 ‘반값 배터리’ 달성이 가능하면 중저가 모델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아직까지 기술력 논란이 있지만 국내 업체들도 중국 업체의 나트륨 배터리 개발 동향을 예의 주시해야 할 때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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