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그룹이 8일 창립 72주년을 맞아 창업정신을 기렸다.
재계에 따르면 SK그룹이 전날 오전 서울 종로구 선혜원에서 고(故) 최종건 창업회장과 고 최종현 선대회장을 기리는 '메모리얼 데이'를 비공개로 연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등 SK그룹 오너 일가와 일부 경영진이 참석한 가운데 차분한 분위기에서 창업정신을 기린 것으로 전해졌다.선혜원은 최종건 창업회장이 1968년 사저로 매입해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이후 직원 연수원으로 활용하다 2022년 리모델링을 시작해 내달 완공 예정이다.
SK그룹은 국제통화기금(IMF)과 금융위기 등 수차례 파고에도 오너 일가의 '형제 경영'과 '딥체인지'로 불리는 비즈니스 모델 혁신으로 위기를 극복해왔다.
1953년 직물회사 선경직물에서부터 시작한 SK그룹은 1980년대 에너지화학, 1990년대 정보통신, 2010년대 반도체, 최근에는 전기차배터리와 바이오라는 신성장 동력원을 탑재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1973년 최종건 창업회장 별세 이후 친동생인 최종현 선대회장이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최 선대회장이 1998년 그룹명을 '선경'에서 'SK'로 변경하고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도약을 추진하다가 별세하며 그의 장남 최태원 회장이 오너 일가의 만장일치로 SK그룹 수장에 추대됐다.최 회장은 에너지와 정보통신을 두 축으로 하는 SK그룹의 사업 구조를 발판 삼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이겨냈다.
2011년에는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를 3조3747억원에 인수하며 SK그룹의 4번째 변혁을 이끌어냈다. 당시 메모리 반도체 불황으로 '승자의 저주'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지만, 최 회장은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예견하고 2012년 SK하이닉스를 출범시켰다.
SK하이닉스 출범은 선경직물, 유공, 한국이동통신에 이은 SK그룹 제4의 창업으로 불린다. 최 선대회장이 유공과 한국이동통신을 인수, 성장축을 확보한 것처럼 최 회장은 하이닉스반도체 인수는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었다.
최 회장은 채권단 관리 시절 생존이 불확실하던 SK하이닉스에게 신속하고 과감한 투자를 단행해 인수 직후 적자기업을 흑자로 전환시켰다. SK하이닉스는 SK그룹 편입 직전이던 2011년과 비교해 지난해 매출 6배 이상, 시가 총액은 10배 이상 상승할 정도로 탈바꿈했다.

최 회장은 올해 초 한국 경제가 처한 현실을 ‘삼각파도’로 정의했다. 최 회장이 언급한 삼각파도는 미국발 관세전쟁, (관세전쟁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 인공지능(AI)의 빠른 기술적 변화다. 최 회장은 "미국 주도의 관세 인상과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 인공지능(AI)의 빠른 기술적 변화 등의 불안요소가 삼각파도로 다가오고 있다"며 "지금까지 씨름을 잘해왔던 선수라도 당장 수영을 해서 경쟁하라고 하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수출 주도형 경제를 바꿔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기존 경제질서를 씨름으로, 새로운 질서를 수영에 비교하며 "피나는 노력으로 스스로 씨름 선수에서 수영 선수로 탈바꿈하거나 최소한 물속에서 씨름을 하자고 (룰을) 바꿀 수 있는 목소리를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트럼프 2기 출범 등으로 국제 질서의 변화를 씨름에서 수영으로 경기 종목과 룰이 바뀌는 것에 비유해 한국이 기존 수출주도형 모델로 경제 성장을 이루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SK하이닉스 인수는 SK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반도체로 넓힌 것에 그치지 않고 삼각파도 중 하나인 'AI'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변곡점이 됐다.SK하이닉스에 대한 최 회장의 뚝심 투자는 AI 시대에서 빛을 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2년 SK하이닉스 출범 당시 메모리 업황 부진으로 대부분 반도체 기업들이 투자를 10% 이상 줄일 동안 SK그룹은 매년 조 단위 R&D 비용을 투입했고, M14와 M16을 비롯한 신규 메모리반도체 공장도 적극 건설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R&D 및 양산도 이때 이뤄져 2013년 세계 최초 HBM 개발로 이어졌다.
최 회장은 데이터센터(DC), 거대언어모델(LLM) 등에도 역량을 집중하며 SK그룹의 AI 사업을 이끌고 있다. 최 회장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등 빅테크와 만나며 AI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