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상반기가 마무리됐다. 흔히 한 해나 반기를 결산할 때 ‘다사다난’이란 용어가 사용되지만 올해 상반기만큼은 다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으로 집약된다. 관세 문제로 세계경제를 지배한 때는 10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 변수 넘치는 세계경제
관세 영향을 보는 시각도 극과 극으로 나누어졌다. 트럼프 진영은 ‘일시적’이라고 강조했지만 피해국은 1930년대 대공황이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 여전히 지배적이다. 부과국과 피해국을 동시에 고려하는 세계 3대 예측기관은 전망치를 내놓을 때마다 성장률을 떨어뜨리고 물가상승률을 올려 트럼프 진영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가장 최근까지 관세 영향을 반영한 미국 중앙은행(Fed)의 경제전망(SEP)을 보면 올해 성장률을 1.4%까지 대폭 내려 잡았다. Fed가 추정하는 잠재성장률인 1.8%를 0.4%포인트 밑도는 디플레 갭이 발생하는 수준이다. 통화정책의 잣대가 되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상승률은 인플레이션 통제 가능한 임계치 3.0%를 벗어난 3.1%로 올려잡았다.
경기침체하에 물가가 올라가는 스태그플레이션 정도가 깊을수록 최고통수권자와 중앙은행 총재 간의 갈등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전자는 ‘경기부양’, 후자는 ‘물가안정’이 1선 목표이기 때문이다.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가 끝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인하 폭은 무려 300bp(1bp=0.01%포인트)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제롬 파월 의장과 Fed 이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인하 요구뿐만 아니라 SEP에서 근원 PCE 상승률이 작년 12월 2.8%에서 6월에는 3.1%까지 올라갔어도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중립금리가 PCE 상승률에 따라가는 종전의 패턴대로라면 6월 점도표에서는 최소한 4.5%대까지는 올라갔어야 하지만 6개월 동안 3.9%에서 변하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명료성(clarity)’ 때문이다. 시차가 1년 이상 걸리는 기준금리 변경 방식은 통화정책 여건이 명확해질 때까지 한 번 더 점검하는 ‘체크 스윙(checking swing)’이 Fed의 전통이자 관례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관세정책은 지금 이 시간에도 변할 수 있는 초불확실한 변수다. 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등 지경학적 위험도 가세되고 있다.
가변적인 통화정책 여건에서 기준금리를 결정해야 하는 파월 의장과 Fed 이사는 칼날 위를 타는 무속인으로 비유된다. 해러드-도마 성장 이론에서 비롯된 칼날 위, 즉 황금률(잠재성장률=균형성장률=실제성장률)에서 균형을 잃어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치면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 Fed 자체적으로도 ‘에클스의 실수’와 ‘볼커의 실수’를 저지른 경험이 있다.올해 하반기 이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최근처럼 경기순환상 진폭이 커지고 순응성(procyclicality)과 주기가 짧아지는 ‘단축화(shortening)’ 여건에서 상반기처럼 지금의 방식을 고수해 나가면 또 다른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높다. 명료성 문제가 해결되면 그때는 이미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져 ‘울트라 빅컷’을, 물가가 너무 올라 ‘울트라 빅스텝’을 추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통화정책의 생명인 ‘선제성(preemptive)’을 잃는다는 의미다.
지난 5월 열렸던 토머스 라흐바흐 콘퍼런스에서 연방기금금리(FFr) 교체, 경제지표 의존(data dependent) 방식 수정, 평균물가목표제(AIT) 폐지 등 현행 3대 통화정책 프레임워크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이뤄졌던 것도 이 때문이다. 8월에 열릴 잭슨홀 미팅에서 추가 논의를 거쳐 Fed의 입장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통화정책 프레임워크가 변하면 주 수단도 바뀌어야 한다. 하반기 이후에는 기준금리 변경보다 유동성 조절로 그때그때 변하는 통화정책 여건에 신속하게 대응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 혹은 계층 간 불균형이 심해지는 여건에서는 통화정책 관할 범위가 일반적, 보편적인 수단보다 소상인과 취약계층에 파고들 수 있는 질적, 선별적 수단이 선호될 확률도 높다.
◆ 달러 가치, 어떻게 변하나
올해 하반기에 Fed의 통화정책 프레임워크가 변한다면 가장 우려되는 것이 달러 가치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점이다. 매년 7월에는 실제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각종 위기설이 많이 나온다. 미국 국가 부도설, 중국 시진핑 주석 실각설 등 올해도 여지없이 많이 나도는 위기설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은 ‘달러 가치 급락설’이다.
강달러 대 약달러. 취임 초부터 트럼프 정부가 어느 것을 원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달러 가치는 많이 떨어졌다. 주요 6개국 통화에 대해 달러 가치를 알 수 있는 달러인덱스는 취임 전 110 내외에서 96대로 급락했다. 같은 기간 원·달러 환율도 달러당 100원 이상 하락했다. 그 어느 해보다 올해 7월에 달러 가치가 더 떨어질 것으로 보는 것은 계절적 요인이 먼저 작용하고 있다. 여름철을 맞아 시장 참가자가 장기 휴가를 떠나면서 거래량이 받쳐주지 못해 작은 외환시장 변화가 생겨도 가격(환율)으로 받아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76년 자유 변동환율제 전환 이후 매년 7월에는 달러 가치가 연평균 0.7% 정도 떨어졌다.
머큐리(Mecury·펀더멘털) 면에서는 미국 경제 둔화 요인을 들 수 있다. 지난 1분기 성장률 확정치가 –0.5%로 역성장했다. 관세 영향을 가장 늦게까지 반영해 Fed가 내놓은 올해 성장률이 1.4%다. Fed가 추정하는 잠재성장률인 1.8%에 0.4%포인트가 못 미치는 수준이다.오쿤의 법칙상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깊은 디플레 갭이 발생하면 마스(Mars·정책) 면에서도 달러 가치 하락 요인으로 작용한다. Fed의 통화정책 우선순위가 경기부양에 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6월 점도표에서 중립 금리가 3.9%인 점만을 고려하더라도 올해 하반기에는 두 차례 금리를 내려야 한다.
금리를 내리지 않더라도 보완적 레버리지 비율(SLR) 완화 조치로 달러 가치가 떨어질 확률이 높다. SLB 비율이 5%에서 3.5∽4.5%로 내려가면 초대형 은행(GSIB)은 130억 달러 내외의 자본금을 덜 충당해도 된다. 6%에서 3.5∽4.5%로 내려가는 자회사까지 포함하면 2000억 달러 이상의 여유자금이 생겨 국채를 매입하면 국채금리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Fed 자체적으로도 달러 가치 하락 요인이 많다. 파월 의장 간의 갈등이 되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판단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르면 7월에도 차기 의장을 지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끝낸 후보자의 면면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인하 요구를 수용할 비둘기파 성향이 강하다. Fed가 조기에 차기 의장 체제로 바뀌면 올해 안에 한 차례 빅컷을 포함해 최대 1%포인트 금리인하도 가능하지 않느냐는 시각까지 나오고 있다.
문제는 차기 의장이 지명되면 파월 의장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점이다. 파월의 의장으로서 임기는 2026년 5월 말까지이지만 이사로서의 임기는 2028년 1월 말까지다. FOMC 의장은 금리결정권을 갖은 12명의 이사가 호선에 의해 결정된다. 트럼프 대통령 압력에 조기 퇴임하더라도 FOMC 의장을 맡을 수 있다는 의미다.
만약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Fed 의장과 FOMC 의장이 따로 노는 극단적인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1987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폴 볼커 의장 간 갈등이 최악의 상황에 이르자 주가와 달러 가치가 동시에 급락하는 루브르 위기가 발생했다. 결국 볼커 의장의 조용한 퇴임과 후임자인 앨런 그린스펀 의장의 대규모 금리인하로 극복했다.
7월 달러 가치 급락설에 따라 원·달러 환율은 어디까지 하락할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달러인덱스와 원·달러 환율 간 상관계수를 고려하면 전자가 90 내외로 떨어지면 후자는 1300원이 붕괴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과 해외주식 투자자는 원·달러 환율이 급락할 가능성에 대비해 놓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