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상 부회장이 2024년 7월 1일 형제경영의 막을 내리고 출범시킨 HS효성이 창립 1주년을 맞았다. 조 부회장이 이끄는 HS효성은 첨단소재·ICT·미국 법인 등을 중심으로 독립 경영 체제를 구축하며 ‘조현상 체제’를 본격화했다. 형인 조현준 회장은 섬유, 중공업, 화학 등 주력 계열사를 기반으로 (주)효성을 이끌고 있다.
서류상 분리는 어느 정도 마무리됐지만 법적으로는 공정거래법상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현재 조 부회장 측이 기존 효성 계열사 일부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추가 정리가 필요하다. 공정위의 ‘기업집단 분리 승인’도 필수다. 단순한 지분 정리뿐 아니라 내부거래 해소, 사옥 및 브랜드 분리 등 최종 관문을 넘어야 조 부회장의 ‘뉴효성’이 완성된다.
출범 첫해 성과는 ‘안정적’
“우리가 이룬 1년은 단순한 기업 활동이 아니라 창업 그 자체였다. 임직원 모두가 HS효성의 경영자이자 창업자이며 파운딩 스피릿(Founding Spirit)을 가슴에 품고 앞으로 더 큰 역사를 만들어가자.”
지난 6월 30일 창립 1주년 기념식에서 조 부회장은 이같이 말했다. 조 부회장은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기술 산업 전환 시대에 대비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깊이와 고유가치 창출”을 강조, 독립 이후 명확한 방향성도 제시했다.실적도 나쁘지 않다. HS효성은 지난해 7월 출범 후 하반기 실적이 매출 9104억원, 영업이익 173억원, 순이익 23억원을 기록했다. 주력 계열사인 HS효성첨단소재는 매출 3조3112억원과 영업이익 2197억원으로 그룹 실적을 견인했다.
올해 1분기에는 매출 4545억원, 영업이익 95억원을 기록했다. 순손실은 4억원으로 적자 전환됐지만 영업이익은 전분기 대비 22.4% 증가했다.
조 회장이 이끄는 효성과 비교하면 효성은 지난해 매출 2조2728억원, 영업이익 2211억원을 기록했다. HS효성의 실적은 하반기부터만 반영돼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비교적 안정적 실적을 거뒀다는 평가다.
‘완전 독립’은 미완…지분·지주 요건 충족은 숙제
조 부회장이 HS효성 독립 체제를 가동한 지 1년이 지났지만 법적·제도적으로는 아직 ‘완전한 분리’는 아니다. 공정거래법상 기업집단 분리 요건은 동일인과 그 친족이 상대 회사의 지분을 3% 미만으로 보유해야 한다.조 부회장은 효성(14.06%)과 효성화학(6.16%), 효성중공업(0.61%)의 지분을 아직 보유 중이다. 반대로 조 회장은 HS효성 지분을 모두 동생에게 넘기고 그 대가로 효성 지분 7.99%를 양도받았다. 지분 맞교환은 완료됐지만 공정위의 기업집단 분리 승인을 받기 위해선 잔여 지분을 정리해야 한다.
또 다른 과제는 지주회사 요건 충족이다. 공정거래법에 따라 지주회사가 상장 자회사를 보유하려면 3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HS효성이 보유한 HS효성첨단소재 지분은 24.82%다. 조 부회장은 22.53%를 개인 명의로 보유하고 있다.HS효성첨단소재 지분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조 부회장이 보유한 지분을 현물 출자하는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캐시카우’ 매각…AI·미래 소재로 재편
조 부회장은 HS효성의 체질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기존 수익원 매각을 통한 신사업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타이어 스틸코드 사업부 매각이 대표적이다. 2023년 기준 HS효성첨단소재 전체 매출의 26%, 영업이익의 40%를 차지하는 캐시카우다. 매각가는 약 1조5000억원으로 추정되며 베인캐피탈·스틱인베스트먼트·JKL파트너스가 인수전에 참여한 상태다.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되면 연내 최종 계약 체결이 점쳐진다. 타이어 스틸코드 사업 매각을 통해 확보한 재원은 고부가가치 분야인 탄소섬유·아라미드·AI·친환경 소재 등으로 재투자할 계획이다. 조 부회장은 출범 직후 종합기술원(HARTI)을 설립하고 연구 인력을 30% 이상 확대했다.
지난해 초 신설한 미래전략실 중심으로 선제적 투자도 추진 중이다. 2024년 11월 양극재 글로벌 2위 기업 유미코아에 448억원을 투자했고 2022년에는 HS효성더클래스를 통해 국내 양극재 기업 우전지앤에프 지분 60%를 327억원에 인수했다.
성장 한계가 뚜렷한 기존 사업에서 벗어나 선제적 투자로 고부가가치 시장을 선점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선 향후 반도체 소재, 수소, AI, 바이오 등 미래 산업 분야 M&A가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통상 무대 ‘존재감’…APEC 개최 준비 앞장
조 부회장은 독립 이후 민간 외교무대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며 글로벌 리더십을 공고히 하고 있다. 올해 초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발맞춰 대한상공회의소 대미 경제사절단으로 미국을 방문, 양국 경제협력 확대를 위한 ‘대미 통상 민간 아웃리치’ 활동을 펼쳤다.지난 3월에는 대한상공회의소 한-베트남 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돼 서울에서 열린 ‘한-베트남 비즈니스 포럼’을 주관했다. OECD 기업산업자문위원회(BIAC) 이사로도 활동하며 국제통상 이슈에 대한 민간 경제계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다보스포럼 등 국제행사에 꾸준히 참여하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한 대외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조 부회장이 가장 집중하는 올해 하반기 경영활동은 오는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와 성공적 개최다. ABAC 의장직을 맡으며 호주, 베트남 등에서 열리는 ABAC 회의도 주재한다.
조 부회장은 ABAC 의장으로서 각국 정상들에게 기업의 목소리를 전달해 APEC의 성공적인 개최와 정상회의 성과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재계 민간 외교관으로서 글로벌 경제 네트워크 구축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다.조 부회장의 리더십은 전략가형 면모와 섬세한 감각이 혼합된 스타일로 평가된다. 미국 브라운대 경제학과 졸업 후 베인앤드컴퍼니를 거쳐 2000년 효성 전략본부에 합류한 뒤 해외 M&A와 사업구조 고도화에 깊이 관여해왔다.
HS효성으로 독자 경영을 본격화한 이후부터는 유연한 조직문화 조성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6월 청바지와 후드집업 차림으로 타운홀 미팅에 참석해 직원들과 격의 없이 소통했으며 문화예술 체험 확대를 위해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 내한공연에 임직원 초청 이벤트를 제안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