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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의 SK그룹, 세대교체 가속화
형제·전문경영인→사촌·오너 경영으로

 

재계를 대표하는 SK, GS그룹에 거센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핵심 계열사를 이끌었던 전문경영인이 대거 퇴진하고, 오너 일가가 경영 전면에 등장하는 모습이다. 불황 극복을 위해 오너 일가의 책임 경영을 강화하고 경영진 세대교체로 조직 쇄신을 꾀하려는 속내다.

 

SK그룹은 최근 인사에서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을 SK그룹 2인자 격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으로 전격 선임했다. 그동안 최태원 회장의 핵심 참모 역할을 해온 조대식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장동현 SK㈜ 부회장,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등 ‘부회장 4인방’은 사실상 2선으로 물러난다.

 

허태수 GS그룹 회장의 과감한 인사도 화제다. 주요 계열사 수장을 교체하는 한편 오너 일가를 대거 요직에 등용하며 어수선한 내부 분위기를 다잡는 모양새다. 그룹 후계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허세홍 GS칼텍스 사장, 허윤홍 GS건설 사장 등 이른바 ‘홍’자 돌림 4세가 경영 전면에 나서 눈길을 끈다.

 

SK그룹이 ‘형제 경영’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사촌 경영’ ‘오너 경영’ 체제로 전환한다.

 

지난 12월 7일 단행한 연말 인사에서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SK그룹 2인자인 수펙스추구협의회(수펙스) 의장으로 선임됐다.

 

최창원 부회장은 故 최종건 SK 창업주 셋째 아들로,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이다. 대신 전문경영인 부회장단은 경영 2선으로 물러난다. 오너 일가 최창원 부회장이 그룹 2인자 자리에 오르면서 사실상 오너 경영 체제로 전환되는 것이다. 최태원 회장 장녀 최윤정 SK바이오팜 전략투자팀장도 신규 임원으로 승진해 사업 개발 조직을 맡는다.

 

저금리 국면에서 지주사·수펙스 주도로 잔뜩 벌였던 투자처 곳곳에서 이상 신호가 포착되자 오너 경영인을 중심으로 위기 복원력(Resilience), 시장 대응력(Responsiveness), 책임(Responsibility) 경영 등 이른바 ‘3R’ 역량을 높이자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최창원 부회장, 수펙스 의장으로

 

투자 전략 대수술할 듯

 

재계에 따르면 SK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수뇌부를 모두 교체했다. 부회장단은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고 2선으로 퇴진하되 각자 역할을 맡는 것으로 조율됐다.

 

신임 수펙스 의장은 최태원 회장 사촌동생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낙점됐다. 조대식 의장은 지주사인 SK㈜ 부회장으로 이동한다. 박정호 부회장은 대표이사직을 내려놓되 SK㈜·SK하이닉스 부회장으로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AI 전략적 연합(Alliance)를 이끈다. 장동현 부회장은 SK㈜ 부회장직을 유지하면서 박경일 사장과 SK에코플랜트 각자대표(부회장)를 맡는다. 김준 부회장은 SK이노베이션에서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고 부회장직만 유지한다.

 

주요 계열사 CEO도 대폭 물갈이됐다. SK㈜ CEO 자리에는 장용호 SK실트론 사장, SK이노베이션 CEO에는 박상규 SK엔무브 사장이 내정됐다. SK하이닉스는 곽노정 단독 대표이사 체제로 운영된다. 이석희 전 SK하이닉스 사장은 SK온 사령탑으로 돌아온다. 지난해 3월 SK하이닉스 대표에서 물러난 지 약 1년 9개월 만의 현업 복귀다. 지동섭 SK온 사장은 수펙스 SV위원회 위원장에, 정재헌 SK텔레콤 대외협력담당 사장은 거버넌스(Governance)위원회 위원장으로 각각 발탁됐다.

 

SK그룹 인사가 큰 폭 변화를 보일 것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 예견됐지만 그룹 2인자 의장을 포함한 ‘부회장단 전원 퇴진’은 예상 밖이라는 평가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CEO 세미나’에서 “급격한 대내외 환경 변화로 빠르게, 확실하게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며 ‘서든 데스(Sudden Death)’ 위험성을 경고했다. 당초 일부 부회장만 교체하는 안이 검토됐으나 세계박람회(엑스포) 부산 유치가 실패하는 등 그룹 안팎 기류가 심상찮게 돌아가자 대대적인 쇄신론이 급부상하면서 조 의장이 부회장단에게 퇴진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부회장은 마지막까지 퇴진에 대한 고심이 컸다는 후문이다.

 

SK그룹 안팎에서는 조 의장과 박 부회장의 경우 2선으로 물러나더라도 느린 속도로 퇴진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

 

재계 관계자는 “조 의장과 박 부회장은 전문경영인 중에서도 총수 일가 신임이 가장 두터운 특수 관계”라며 “그룹에서 조 의장과 박 부회장 사단으로 분류되는 CEO만 여럿이라는 점에서 이들을 단기간 물러나게 할 경우 조직 안팎에서 거센 반발과 반목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을 것”이라 귀띔했다.

 

최창원 부회장은 수펙스 의장직 수락 여부를 놓고 막판까지 고심이 컸던 것으로 알려진다. SK그룹은 ‘큰집’ 최신원, 최창원 형제와 ‘작은집’ 최태원, 최재원 등 네 형제가 그룹 계열사를 맡아 경영해왔다.

 

최창원 부회장은 SK그룹 안에서 소그룹 형태로 SK디스커버리그룹을 마련해 사실상 ‘독자 경영’ 중이다. SK디스커버리를 챙기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최창원 부회장이 실질적으로 그룹을 총괄하는 수펙스 의장직을 맡은 것을 두고 본격적인 승계를 실행하기 전 징검다리 역할을 맡긴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우선 최창원 부회장이 그룹 후계자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현재 최창원 부회장은 SK그룹과 지분 관계가 완전히 정리된 상태다. 지주사 SK㈜도 SK디스커버리 지분이 없다. 사실상 경영권 분쟁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SK㈜의 최대주주는 최태원 회장(17.7%), 2대 주주는 최태원 회장의 여동생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6.6%)이다. 남동생 최재원 수석부회장 지분율은 0.4%를 밑돈다.

 

지난 10월 최태원 회장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경영권 승계에 대해 “아직 공개할 시점은 아니지만 나만의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비춰, 아직 어린 자녀들에게 승계를 이행하기 이른 만큼, 가장 신뢰할 수 있으면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촌 형제에게 실질적인 경영권을 맡기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SK그룹 오너가 관계도
SK그룹 오너가 관계도

투자 시스템 손질

 

중복 투자 줄이고 관리 방점 

 

재계는 이번 인사가 인수합병(M&A)을 기반으로 성장한 SK그룹의 외연 확장·관리(Boundary Spanning) 전략을 재점검하라는 최태원 회장의 뜻이 담겨 있다고 본다.

 

SK그룹은 1980년 대한석유공사(현 SK이노베이션), 19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에 이어 2012년 SK하이닉스까지 3대 ‘인수합병’으로 재계 2위에 올랐다. 최근 SK그룹 안팎에서 입길에 오른 M&A·지분 투자 건은 대부분 해외 기업이다.

 

SK하이닉스가 인텔로부터 인수한 중국 다롄 공장과 미국 솔리다임은 그룹 전체 유동성에 압박을 주고 있다. 베트남과 미국에 투자한 기업의 지분 가치도 크게 하락하고 있다.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다각화(Diversification)하며 외연 확장·관리를 숨 가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상 신호를 면밀히 감지하는 역량이 부재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드세던 배경이다.

 

이에 따라 최창원 부회장은 SK그룹 전체 투자 시스템을 정상화시키는 한편 중복 투자 조율, 자원 재정비 등의 역할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최창원 부회장은 보수적이고 신중한 성품의 경영자로 알려진다. 그는 독자 경영 행보에 나선 이후 기존 주력 사업과 신사업 간 차별적인 조직 관리에 능수능란했다는 평가다.

 

투자형 지주사 중심 파이낸셜 스토리 또한 숨 고르기에 돌입한다. SK그룹은 지주사 역할 고도화, 다변화에 앞장서며 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투자를 늘려왔다. 하지만 고금리 장기화로 투자금 회수에 실패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SK하이닉스는 2021년 인텔에서 약 11조원을 주고 인수한 낸드사업부(솔리다임)가 골칫거리다. SK하이닉스 자회사인 미국 솔리다임은 지난해만 3조원 넘는 순손실을 기록했다. 2025년까지 잔금 20억달러도 치러야 한다. 과점 구조의 D램 시장과 달리, 낸드 시장은 다수 사업자로 파편화돼 있어 공급 감축을 통한 가격 조절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 낸드 시장은 업황 회복 시기를 가늠하기조차 힘든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SK㈜·SK E&S가 최대주주로 있는 수소 연료전지 기업 플러그파워는 2021년 투자 당시 주당 29.99달러였으나 최근 실적 부진에 따른 유동성 위기로 주당 3.99달러로 곤두박질쳤다.

 

SK스퀘어는 이커머스 업체 11번가 상장이 무기한 연기된 데다 이사회에서 11번가 콜옵션(미리 정한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을 포기하자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당시 계약에는 ‘드래그앤콜’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즉, SK스퀘어의 경우 지난 9월까지 기업공개(IPO)를 완료하지 못하면 컨소시엄이 SK의 지분까지 강제 매각(드래그얼롱·Drag Along)할 수 있게 하되, 그 전에 SK가 지분을 되살 수 있는 권한(콜옵션)을 부여했다. SK스퀘어는 배임 논리를 앞세워 콜옵션 포기 논리를 정당화하려 하지만 시장 반응은 싸늘하다. 이번 사태로 드래그앤콜 조항이 무력화될 것이라는 냉소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이에 따라, SK그룹은 이번 정기 인사와 함께 기존 조대식 의장이 총괄하던 수펙스 내 투자1·2팀을 SK㈜ 산하 4개 투자센터와 합쳐 SK㈜로 통폐합·축소한다. 계열사 간 중복 투자를 대폭 줄이고 신규 투자보단 관리, 회수로 전략의 무게 중심이 옮겨질 전망이다.

이석희 사장 복귀

이석희 사장 뜻밖 복귀

 

SK온 수율 책임질 듯 

 

이번 인사에서 가장 의외로 평가받는 대목은 이석희 사장의 귀환이다. 재계에서는 이석희 사장이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를 주도한 책임을 지고 사실상 SK그룹 전문경영인 대열에서 탈락했다고 봐왔다. 재계 관계자는 “이석희 사장이 다시 귀환했다는 건 하이닉스 시절 패착에도 불구하고 그를 불러들일 수밖에 없었던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 촌평했다.

 

재계에서는 이석희 사장이 SK온의 수율(收率·정상품 비율) 관리를 책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석희 사장은 SK하이닉스의 고질적인 약점으로 꼽혔던 D램 미세 공정 기술 발전과 수율 안정화에서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던 인물이다. 그만큼 SK온에서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슈가 수율이다. 2차전지처럼 기술력이 원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특수 산업에서는 수율이 곧 제조원가다. 증자와 차입금 등으로 조 단위 레버리지를 일으킨 상황에서 수율마저 적정 범위에서 관리되지 않을 경우 손익 관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SK온은 포드와 세운 미국 합작 공장의 수율 관리에 애를 먹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재원 수석부회장과 이석희 사장은 SK온 현금창출능력을 확대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SK온은 국내 배터리 3사 중 연결 기준 영업손익과 순손익 모두 적자를 기록한 유일한 기업이다. SK온은 올 상반기 4762억원 영업손실을 낸 데 이어 3분기에도 860억원 적자를 냈다. 올 3분기 누적 순손실은 6010억원이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규모 확대로 두 분기 연속 적자 규모를 줄였지만,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현금은 거의 없다.

 

이런 가운데 올 들어 SK온은 국내 2차전지 셀 메이커 가운데 가장 공격적으로 자금을 끌어왔다. SK온은 올 상반기에만 8조원 넘는 자금을 조달하면서 투자자에게 연 7.5%의 수익률(IRR·한투PE)을 보장해야 하며 가까운 시기에 IPO까지 성사시켜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물론 영업 활동에 따른 현금 유입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당장 전기차 시장 설비 투자(CAPEX)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외부 자금 조달이 불가피했던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전기차 시황이 급변하면서 공격적인 자금 조달은 재무 구조에 부메랑으로 돌변했다. 최재원 수석부회장 SK 경영진이 결과적으로 내년 전기차 시황을 오판한 아니냐는 뒷말도 따랐다. 그룹 계열사 SK스퀘어가 11번가 콜옵션을 포기하면서 시장에서드래그앤콜조항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한 것도 부담스럽다. SK 역시 한투PE 측과드래그얼롱+콜옵션조합으로 구조를 짰다. 금융권 관계자는 “SK온은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현금흐름이 전무한 상태에서 대규모 투자가 진행됐던 터라 재무 관리의 필요성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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