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 수도 곳곳 中 브랜드 포진
샤오미, 스마트폰 1위 삼성 위협
급성장 전기차 시장은 BYD가 주도
양국 관계 밀접에 中 영향력 날개
“다는 아니지만, 어떤 중국 제품들은 품질이 아주 우수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화웨이 같은 브랜드는 굉장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봐요. 이번에 화웨이가 말레이시아에서 출시한 ‘메이트XT(트리폴드폰)’를 써보고 싶은데, 가격 때문에 고민하고 있어요.”
지난 19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최대 쇼핑몰, 파빌리온 KL. 이날부터 일주일간 운영되는 화웨이 메이트XT 팝업 스토어에서 만난 20대 말레이시아인 여성은 기자를 만나 이같이 말했다. 이 쇼핑몰 외부에는 벽면 두 개에 걸쳐 대형 스크린 광고판이 설치돼 있었는데, 화웨이에 샤오미까지 중국 기업들의 광고가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중국 기업들이 동남아의 중심, 말레이시아를 적극 공략하고 있다. 미국과의 무역 전쟁이 격화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찾는 중국의 시도가 경제 성장률 제고를 위해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 말레이시아의 이해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이전에도 말레이시아는 거대 화교 인구에 지리적 접근성 등으로 인해 ‘중국의 뒷마당’으로 꼽혔는데, 앞으로 이 나라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 뒤에는 말레이시아를 기점 삼아 세계 시장에 대한 지배력을 높여 나간다는 중국의 야심이 숨어있다.
말레이 곳곳에 中 브랜드 포진… 전기차 1위는 BYD
이날 돌아본 쿠알라룸푸르에서는 중국 자본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나와 시내로 향하는 도로에는 화웨이의 메이트XT 대형 전광판이 관광객을 반기고 있었다. 파빌리온 KL 쇼핑몰에는 중국 대표 훠궈 브랜드인 ‘하이디라오’와 생활용품 전문점 ‘미니소’, 밀크티 전문점 ‘바왕차지’, 휴대전화 브랜드 ‘아너’와 화웨이 등 중국 소비재 브랜드가 대거 밀집해 있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중국 지리차가 44.9% 출자한 말레이시아 자동차 브랜드 ‘프로톤’은 한국 내 소나타급으로 흔했고, 중국 최대 전기차 기업인 비야디(BYD)와 10대 자동차 기업 창청차 매장도 시내 곳곳에 들어서 있었다.
중국은 이전부터 말레이시아와 밀접한 관계였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중국은 2023년까지 15년 연속 말레이시아 최대 무역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양국 간 무역액은 1902억달러(약 273조7000억원)에 달했다. 화교 인프라도 양국을 묶어주는 연결고리 중 하나다. 말레이시아 내 화교 인구는 약 768만명(2023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23%를 차지한다. 중국 내 자본 규제로 인해 말레이시아로 이주 수요가 높아지면서 화교 인구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들어 중국 산업계는 말레이시아 산업 공략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과의 무역 갈등으로 인해 새로운 시장을 발굴해야 하면서다. 중국은 말레이시아의 지리적 이점에 주목했다. 중국 상무부가 발간한 ‘대외투자합작 국가별 가이드: 말레이시아(2024년판)’ 보고서는 “말레이시아는 동남아 중심부에 있어 아세안 시장은 물론 중동, 호주 및 뉴질랜드 진출을 위한 교량이 될 수 있다”며 “탄탄한 경제 성장 전망에 풍부한 원자재, 높은 품질의 인적 자원 등도 갖추고 있다”라고 했다.
말레이시아도 경제성장률 제고를 위해 외국인 투자 유치가 시급한 상황이다. 2022년 전년 동기 대비 8.7%에 달하던 성장률이 2023년 3.6%로 고꾸라지면서다. 양국 간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중국의 말레이시아 투자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2019년 79억2000만달러(약 11조4000억원) 수준이었던 중국의 말레이시아 직접투자액은 2023년 134억8000만달러(약 19조4000억원)로 4년간 70% 넘게 급증했다. 이성기 코트라 쿠알라룸푸르 무역관장은 “말레이시아에 있어 중국은 자국 내수를 성장시켜 주는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고 했다.
특히 스마트폰과 자동차 부문에서 중국 기업들의 공세가 거세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스마트폰의 경우 아직 삼성이 점유율 26.0%(지난해 기준)로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중국 샤오미가 23.7%로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애플은 13.8%로 3위를 달리고 있는데, 그 뒤로는 줄줄이 비보(11.7%), 오포(11.5%), 아너(4.4%) 등 중국 기업이다. 이번에 메이트XT 글로벌 시장 출시 행사를 진행한 화웨이는 올해 말레이시장 현지 판매 상위 5위 안에 든다는 목표다. 이 관장은 “중국산 스마트폰이 약진하는 데다가, 동남아에서도 고급 스마트폰 수요가 늘면서 애플 아이폰으로 갈아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동남아 1위를 지켜왔던 삼성도 최근 고민이 클 것”이라고 했다.
말레이시아가 석유 생산국인 만큼 아직 내연기관차가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전기차 시장에서는 중국 BYD가 점유율 39.3%(지난해 기준)로 테슬라(23.6%)를 제치고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중국 체리차 산하 SUV 브랜드 ‘재쿠’가 지난해 말레이시아 전기차 판매량 1위를 차지하는 등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다. 말레이시아 전기차 시장은 판매량이 2020년 700여대에서 지난해 약 13만4000대까지 20배가량 급증하는 등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BYD는 반제품조립(CKD) 공장 설립을 예고하는 등 시장 확대에 대비하고 있다.
中 산업계, 말레이 디지털 산업도 눈독
중국 산업계는 앞으로 말레이시아의 디지털 산업을 적극 공략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 바이트댄스가 지난해 6월 말레이시아에 인공지능(AI) 허브를 설립하겠다며 100억링깃(약 3조3000억원) 투자 계획을 내놓은 것이 대표적이다. 화웨이도 말레이시아 통신사인 맥시스와 협력하며 5G 통신망 구축에 적극 참여 중이다. 상무부는 보고서를 통해 “최근 말레이시아의 디지털화 과정은 연이은 이니셔티브 발표로 가속화하고 있고, 전자상거래 시장 발전을 위한 환경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5G와 빅데이터 등 디지털 인프라 구축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라고 했다. 태양광 등 친환경 사업 부문도 중국 기업들이 눈독들이는 분야로 꼽힌다.
중국 산업계의 말레이시아 침투는 양국 간 우호적 관계에 힘입어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6월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말레이시아를 방문해 “중국과 말레이시아는 역내 국가들 관계 중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고, 기준이자 본보기를 제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중립 외교를 표방하던 말레이시아도 최근 친중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영유권 분쟁 중인 남중국해 문제에 상대적으로 유화적 태도를 보이고,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신흥국 연합체 ‘브릭스(BRICS)’ 가입 의사도 밝힌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