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반도체 제조 강국으로 떠오른 대만이 또 한 번 차세대 핵심 기술 선점에 나섰다. 대만 주요 반도체 기업 중심으로 '광 반도체(실리콘 포토닉스)' 연합을 결성, 차세대 AI 반도체 기술 고도화와 생태계 구축에 뛰어들었다.
광 반도체는 빛으로 전기 신호를 대체한다. AI 반도체 성능을 비약적으로 높이는 기술로 급부상했다. 이 때문에 주도권 경쟁이 치열한데, 한국은 경쟁력을 좌우할 생태계가 취약해 AI 반도체 시장에서 또 뒤처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SEMI 실리콘 포토닉스 산업 연합(SiPhIA)은 최근 특별 관심 그룹(SIG)을 발족하고 광 반도체 생태계 조성에 뛰어들었다. TSMC·ASE 등 대만 반도체 위탁생산과 첨단 패키징 기업 주도로 지난해 9월 결성한 연합이 본격적인 실무 활동에 나선 것이다. 해당 연합체는 현재 110개 기업이 참여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3개로 구성된 SIG는 광 반도체 기술 상용화 속도를 높이는 게 목적이다. 구체적으로 △광 반도체 칩 설계·제조 분야 생태계 확장(SIG1) △이종 결합 및 광학 첨단 패키징 기술을 위한 광·전자 기술 통합(SIG2) △광 반도체에 필요한 장비 제조 및 공급(SIG3) 활동을 전개한다. 광 반도체 전주기 협력 체계를 구축해 산업을 주도하려는 시도다.
이 같은 행보는 글로벌 빅테크 중심으로 광 반도체 수요가 빠르게 확산, 미래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광 반도체는 전기를 빛으로 전환해 신호를 전달하는 기술로, 적은 전력으로 빠른 속도를 구현할 수 있어 AI 반도체 뿐 아니라 AI 데이터센터 전반에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외국계 광 반도체 소재 업체 관계자는 “해외, 특히 미국에서는 차세대 반도체 연결 기술인 광 반도체에 대한 연구개발(R&D)이 상당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며 “AI 확산에 따라 더 빠른 대역폭과 전력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광 반도체는 미국 스타트업 아야르랩스·어비세나·라이트매터 등이 원천 기술을 개발하면 대만 TSMC와 ASE 등이 제조를 담당하는 형태로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엔비디아·인텔·AMD 등 광 반도체 잠재 고객들이 본격적인 투자에 나서면서 광 반도체 산업이 태동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TSMC를 중심으로 한 패키징 기술과 생태계로 AI 반도체 중심지로 떠오른 대만이 차세대로 부상하는 광 반도체까지 차지할 채비에 나선 것이다. TSMC는 올 하반기 광 반도체 양산에 돌입한다.
반면 국내에서는 광 반도체 대응이 턱없이 모자르다는 지적이다. 빈약한 생태계 탓이다.
광 반도체 생태계가 활성화되려면 반도체 위탁생산부터 첨단 패키징까지 아우르는 기술 협력이 필수인데, 국내는 대만과 견줘 열위에 있다.
최광성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연구위원은 “대만은 TSMC를 중심으로 첨단 패키징 기업들의 협력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미래 시장에 대응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한국은 이러한 생태계 역량이 아직은 부족하다”며 “AI 반도체 칩 제조를 대만이 주도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산업 기반이 약하다 보니 검사·측정 등 일부 국내 광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이 오히려 대만 생태계에 진입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전자가 그나마 광 반도체 R&D를 진행 중이나 소부장과 반도체 외주패키징·테스트(OSAT) 업계까지 협력 저변이 확대되지 않아 시장 주도권 확보가 쉽지 않다.
삼성전자의 광 반도체 도입 목표 시점은 2027년으로, 대만보다 뒤처졌다. 시장 실기 탓에 광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의 '갈라파고스화'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광 반도체가 상용화되면 현재 AI 반도체 제조 주도권을 대만에 빼앗기는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