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당 후보들의 정책 공약이 부동산 시장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6월 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부동산 시장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빅 이벤트’를 피하는 분양 시장 특성상 일시 정지됐던 아파트 분양 현장 대부분은 다음 대통령선거 이후까지로 일정을 미루게 됐지만, 헌법재판소 선고가 나오면서 투자자들을 관망하게 했던 한 가지 불확실성은 사라졌다. 그러나 각 당 대선 후보들의 정책 공약이 부동산 시장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가 새로운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전문가들 상당수는 건설·부동산 경기가 침체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후보들의 공약이 ‘표’를 얻는 데 유리한 중간지대에 집중될 것으로 보고 있다.이는 실제 상황으로 나타나는 분위기다. 대선 후보 중 가장 지지율이 높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보이는 ‘우클릭’ 행보가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올해 강남 등 서울 집값이 오르자, 오세훈 서울시장과 정부는 헌재 선고가 나오기 전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확대 지정하는 강수를 뒀다.
동시에 선거철 단골손님인 개발 공약이 일부 지역의 시세 상승을 불러올지도 관심사다. ‘지방 첨단 산업 유치’, ‘신(新)행정수도’ 같은 개발 공약도 이미 등장하고 있다. 대통령실 이전, 신행정수도에 대한 기대감에 벌써 세종시 집값이 들썩이며 ‘개발 호재’의 여파를 실감케 하고 있다.
부동산 정책, 결국 중간으로
이재명 전 대표는 2월 25일 유튜브 채널 ‘삼프로TV’에 출연해 다주택자 과세에 대한 질문에 “부동산 정책은 가급적 손을 대지 않는 게 좋은 것 같다”면서 “손을 댈 때마다 문제가 됐다”고 답변했다.이 전 대표는 고가 주택 거래에 대해서도 “강남의 특정 지역, 한강이 보이는 지역을 5억이 아니라 500억을 주고라도 사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말리나”라며 투기적 요소 외에 1가구 1주택에 대해서는 죄악시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도 전했다.
이 전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부동산 정책이 급진적이라는 그동안의 인식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제20대 대통령선거 전인 2021년 이 전 대표는 국토보유세 신설을 통해 부동산 실효세율을 1%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부동산 규제에 강경한 이미지로 인해, 4월 4일 헌재의 탄핵선고 직후부터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그의 당선을 우려하는 게시글들이 올랐다. “이재명이 대통령 되면 재개발사업이 중단될 수 있나요”라거나 “고가 주택(15억 원 이상) 주택담보대출이 막히나요”와 같은 질문들이 많다.
‘이재명 정부 출범 시 부동산 정책 및 시장 전망’이라는 글이 돌기도 했다. ‘종부세율 인상’, ‘재개발·재건축 촉진법 폐지’, ‘전세 갱신 주기 10년으로 확대’, ‘국토보유세 신설’ 등이다.남기환 더불어민주당 전문위원은 이 같은 소문에 대해 “악의적 음해에 불과하다”면서 “아직 제정도 되지 않은 재개발·재건축 촉진법을 폐지할 수도 없으며 전세 갱신 주기와 관련해서는 당에서 검토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국토보유세도 이 전 대표가 직접 ‘드롭’했다고 공식 언급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지지율’ 공식에 “리스크 없애자”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023년부터 지난해까지 국회에서 국민의힘이 발의한 ‘재건축 패스트트랙법’(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노후계획도시 특별법’(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등 부동산 규제 완화 법안들을 함께 가결했다.
2022년 금리 인상 이후 건설·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면서 민간주택 공급의 필요성이 불거진 상황에서 2024년 총선까지 앞두고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실감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 당시부터 지속된 다주택자 규제로 인해 주택 수요자들이 ‘똘똘한 한 채’로만 집중되며 부동산 양극화가 심화했다는 지적 또한 제기됐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더불어민주당이 다시 집권하면 공급 부족과 특정 지역 쏠림현상들이 심해져 서울 아파트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유력 대권주자인 이 전 대표로선 불식시켜야 할 우려일 수 있다.이 전 대표는 최근 중도층의 표심을 겨냥하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불과 3년 전 대선을 겪고 당 대표까지 지낸 후보로서 이 전 대표가 빠르게 대선 전략을 마련하기 유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아직 캠프가 완전히 구성된 것은 아니지만 후보 주변 전문가에 의해 대체적인 정책 방향이나 전략은 나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동연 경기지사, 김부겸 전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내 다른 대권주자들도 비교적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온건파로 분류된다.
부동산 규제, 국지적 지역에 집중
아직 국민의힘에선 확실한 후보가 좁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정책 방향을 상당 부분 계승할 가능성이 높다. 공시가격 현실화 폐지 등 부동산 규제 완화 공약을 내세웠던 윤 정부와 국민의힘은 민간 및 공공주택 공급을 늘려 부동산 가격을 잡고 침체한 건설 경기를 살리겠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전 정부는 임기를 시작한 해부터 비상계엄 이후인 올해 3월까지 매년 굵직한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2023년 내놓은 ‘9·26대책’(국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은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을 제외한 전국 모든 지역을 규제 지역에서 해제하는 방안을 담고 있었다.
지난해 나온 ‘8·8대책’(국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 방안)은 재건축·재개발사업 추진 시 용적률 제한을 완화하는 ‘재건축·재개발 촉진법(재건축·재개발사업 촉진에 관한 특례법) 제정’, ‘수도권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해제로 8만 가구 공급’ 등의 계획을 담고 있다.그럼에도 정부의 규제 완화 수준은 시장 기대를 채우지 못했다. 2023년과 2024년 서울 등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국지적 집값 상승세가 이어진 것이다. 주택 공급에는 부지 확보, 인허가 등으로 인한 시차가 발생하는데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대출 지원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2023년에는 소득 제한 없이 9억 원 이하 주택에 5억 원까지 주택담보대출을 해주는 일반형 특례보금자리론이 판매되기 시작하면서 집값이 오르고 가계 부채도 증가했다. 결국 정부는 9월부터 해당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정부는 주택담보대출에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적용하는 등 주택 시장 안정화를 위해 노력했다. 결국 올해 ‘3·19대책’(부동산 안정화 방안)에서는 실사용(주택은 실거주) 외에 투자 용도로 부동산을 매수할 수 없는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확대 지정한다. 서울시가 지난 2월 일명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에 대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해제하면서 강남권 집값이 급격히 오르자, 상승세 확산을 막기 위해 오히려 적용 지역을 강남3구와 용산 아파트로 넓힌 것이다.
또 충청도 겨냥…개발 공약 쏟아진다
결국 국민의힘 후보들도 ‘완화 일변도’로만 공약을 세우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 강남3구와 용산이 6개월 뒤인 9월 30일 지정 기한이 다 돼서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재지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2월부터 구역 해제 이후 집값이 급격히 상승하는 모습을 모두가 목격했기 때문이다.양지영 신한투자증권 수석은 “집값 상승세가 성동·강동·마포구 등지로 확산될 경우, 해당 지역에 대한 토허제 추가 지정이나 DSR 규제 강화 조치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결국 ‘주택 공급 촉진’과 ‘집값 상승 지역 규제’라는 큰 줄기는 차기 정부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집값 또한 지난 2~3년과 마찬가지로 단기적인 상승과 조정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교수는 “이 전 대표가 정권을 잡은 뒤에는 공약보다 더 강한 규제를 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으며 민간 공급보다 이전 공약이던 ‘누구나 집’ 같은 공공임대 공급을 더 확대할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 “국민의힘 후보 중에서 대통령이 나온다면 더불어민주당보다는 더 완화 기조에 가까운 정책을 내놓겠지만 일부 후보들은 규제를 완화하는 데 더 신중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편 이미 정치 공약에 따른 개발 기대감으로 부동산이 들썩이는 지역이 나오고 있다. 역대 선거에서는 주로 충청권과 부산·경남권에 대형 개발 공약이 집중되는 사례가 많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전 대표 지시로 행정수도를 세종시로 완전 이전하는 ‘신행정수도법’(신행정수도 건설특별조치법 제정안)을 조만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세종시 이전은 20대 대선부터 이 전 대표의 공약이었는데, 그 점이 최근 세종시 아파트 거래량이 늘고 시세가 하락에서 보합으로 전환된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개발 호재나 집값과 상관 없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이후부터 미뤄진 주택 분양 일정은 또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대조1구역재개발 등 서울에서 잘될 만한 일부 사업지를 제외하고는 올해 하반기까지 분양을 미룰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선 공약은 물론 사회적 관심이 부동산에 지나치게 매몰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전쟁’은 물론 국가 전반적으로 더 시급한 대내외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들 삶이 팍팍할수록 부동산 양극화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많아지고 정치권도 인기에 영합해 빈부를 가르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면서 “새 정부는 부동산에 집중하기보다 거시적 관점에서 기로에 서 있는 나라 경제와 사회를 성장시키는 데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