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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석유’로 불리는 리튬 전쟁이 후끈 달아올랐다. 전기차 배터리 핵심 원료로 쓰이는 덕분에 배터리, 완성차업계 등 글로벌 기업마다 리튬 확보에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글로벌 공급망이 불안해지면서 세계 각국이 ‘자원민족주의’를 강화하자 서둘러 리튬을 확보해 시장 우위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아르헨티나 옴브레 무에르토 리튬 염호
포스코그룹이 2018년 약 3000억원을 투자해 인수한 아르헨티나 옴브레 무에르토 리튬 염호 전경. (포스코홀딩스 제공)

기업 리튬 확보 경쟁 치열

포스코·SK·LG “무조건 대량 확보”

포스코홀딩스는 아르헨티나 소금호수 근처에 연산 2만5000t 규모 수산화리튬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2024년 상반기 준공이 목표다. 2만5000t 규모 2단계 공장도 올해 착공, 2025년까지 수산화리튬 5만t 생산 체제를 완성할 계획이다. 수산화리튬은 리튬의 수산화물로 국내 배터리업계 주력 제품인 NCM(니켈·코발트·망간),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배터리에 쓰인다.

 

최근에는 호주 광물 탐사 개발 기업 진달리리소스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미국에서 점토리튬 사업을 추진 중이다. 진달리리소스는 미국 오리건주와 네바다주 경계에 위치한 ‘맥더밋 점토 리튬 프로젝트’ 지분 100%를 보유했다.

 

리튬은 주로 광석과 염수에서 추출한다. 점토를 비롯한 비(非)전통 리튬 자원은 상업 생산이 이뤄진 사례가 없고 광석, 염수에서 추출한 리튬보다 품질이 낮다. 이에 포스코홀딩스는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과 리튬 추출 공정 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사업성을 검토하기로 했다. 점토리튬 추출의 상용화 가능성을 확인하는 대로 진달리리소스와 사업 협력을 추진한다. 2030년까지 리튬 30만t 생산, 판매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극재 생산을 위해서는 리튬 확보가 필수적이다. 포스코홀딩스 자회사 포스코케미칼은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양극재 합작사인 ‘얼티엄캠’을 설립하고 캐나다 퀘벡주에 연산 3만t 규모의 양극재 공장을 건설 중이다.

 

포스코홀딩스 관계자는 “점토리튬 프로젝트의 경제성이 확인돼 미국 내 투자로 이어진다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혜택과 함께 리튬 사업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포스코홀딩스는 국내에서도 올해 말 연 4만3000t급의 전남 광양 리튬 공장 완공을 앞두는 등 리튬 추출, 생산에 주력해왔다. 안회수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포스코홀딩스가 미국 점토리튬 프로젝트에 속도를 내면서 2025~2026년 리튬 관련 매출이 본격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SK그룹 배터리 계열사인 SK온 움직임도 활발하다. 지난해 10월 호주 자원 개발 업체 레이크리소스 지분 10%를 사들였다. 동시에 내년부터 10년간 레이크리소스에서 리튬 23만t을 장기 공급받는 계약을 맺었다. 안정적인 리튬 수급을 위해 지난해 11월에는 글로벌 자원 기업 칠레 SQM과 향후 5년간 리튬 5만7000t을 공급받는 계약도 체결했다.

 

LG그룹 계열사 중에서는 LG화학, LG에너지솔루션이 리튬 확보 경쟁에 뛰어들었다.

 

LG화학은 미국 광산 업체 피드몬트리튬과 20만t 규모의 리튬정광 구매계약을 맺었다. 연간 5만t씩 4년간 공급받는 조건이다. 이는 고성능 전기차 50만대분 배터리에 들어가는 양이다. 이 리튬정광은 올해 북미에서 유일하게 상업 생산이 가능한 캐나다 퀘백의 NAL 광산에서 채굴된다. 피드몬트리튬은 NAL 광산 지분 25%를 보유했다.

 

LG에너지솔루션도 지난해 미국 자원 기업 컴퍼스미네랄과 2025년부터 6년간 약 1만1000t 규모의 탄산리튬을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캐나다 아발론, 스노우레이크 등 다른 기업과도 수산화리튬 25만5000t 규모 공급계약을 맺은 상태다.

 

글로벌 기업들은 일찌감치 리튬 확보 경쟁에 뛰어들었다. 완성차 생산 세계 1위 업체 토요타자동차는 지난해 일본 후쿠시마현에 전기차용 리튬 제조 공장을 준공했다. 아르헨티나 염호로부터 정제한 탄산리튬을 수입해 수산화리튬으로 가공, 공급할 계획이다.

 

세계 전기차 1위 업체 테슬라도 캐나다 리튬 업체 시그마리튬 인수를 추진 중이다. 이 업체는 브라질에서 대규모 리튬 광산 ‘그로타 도 시릴로’를 개발 중이다. 미국 완성차 업체 GM은 캐나다 광산 업체 리튬아메리카스에 6억5000만달러(약 8500억원) 규모 지분 투자 계획을 내놨다. 포드 역시 지난해 호주 광산 업체 라이언타운과 계약을 체결해 내년부터 리튬을 공급받기로 했다.

 

리튬 확보 경쟁, 왜?

‘자원민족주의’로 몸값 높아져

기업들이 너도나도 리튬 확보 경쟁에 뛰어든 것은 그만큼 리튬 몸값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리튬은 원래 산업재로서 유리, 도자기에 활용됐다. 유리에 리튬을 첨가하면 녹는점과 점도가 낮아져 가공이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도자기 강도를 높이고 유약 색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지금도 세계 리튬 수요의 15% 이상은 유리, 도자기 산업에 쓰인다.

 

리튬은 또 스마트폰, 노트북 등 전자제품은 물론이고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로도 활용된다. 전기차 배터리 생산원가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양극재 핵심 광물이기도 하다.

CATL
세계 배터리 시장 1위인 중국의 CATL은 전략적 협력 관계의 전기차 기업에 탄산리튬 가격을 t당 20만위안(약 3770만원)으로 고정해 산출한 가격으로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했다. (DPA 제공)

양극재 제조에 활용되는 리튬화합물은 크게 수산화리튬과 탄산리튬으로 나뉜다. 수산화리튬은 NCM, NCA 등 고밀도, 고용량이 필요한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된다. 이에 비해 탄산리튬은 중국 업체들이 주로 제작하는 전기차의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나 에너지 밀도가 낮은 가전·IT 기기 배터리에 쓰인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커지면서 리튬 가격은 최근 3년 새 10배가량 치솟았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지난 2월 21일 기준 리튬 가격은 ㎏당 383.5위안을 기록했다. 중국발 전기차 수요 둔화로 지난해 11월(581.5위안)보다 떨어지기는 했지만 3년 전인 2020년 2월(39위안)과 비교하면 10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40년까지 리튬 수요가 현재보다 40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내다본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은 2025년 리튬 총 수요가 82만1000t까지 늘어난다고 전망했다. 앞으로도 리튬 몸값이 계속 치솟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리튬 몸값이 높아진 것은 리튬을 둘러싼 ‘자원민족주의’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촉발된 공급망 위기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심화하면서 세계 각국의 자원민족주의 움직임이 가속화하는 모습이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석유, 구리 등이 자원민족주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최근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커지면서 수요가 급증하는 리튬, 니켈 등 핵심 광물로 무게 중심이 옮겨 가는 분위기다. 특히 핵심 광물에 대한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는 기업뿐 아니라 국가 자원 안보 차원에서도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세계 10위 리튬 보유국 멕시코는 최근 리튬을 국유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지난 2월 19일 소노라주를 찾아 리튬을 국유 재산화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멕시코에서도 광물이 가장 풍부한 소노라주에 리튬 매장지 6개 지역을 ‘채굴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이곳에서의 탐사 채굴권을 국가에서 독점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이 나라, 이 지역에 있는 리튬은 멕시코 국민의 것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가 착취할 수 없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멕시코는 세계 리튬 매장량의 2%가량을 보유한 세계 10위권 리튬 매장국이다. 멕시코 정부는 그동안 중남미의 리튬 보유국들과 연합 결성을 추진하는 등 자원 국유화에 적극 나서왔다. 지난해는 리튬 생산 국영 기업 ‘리티오멕스’까지 설립했다.

 

중남미 다른 국가도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전 세계 리튬 매장량의 60%를 차지해 ‘리튬 삼각지대’로 불리는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3개국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슷한 방식의 ‘리튬판 OPEC’을 추진 중이다. ‘하얀 석유’ 리튬을 무기화하기 위해서다.

 

이들 국가 리튬은 주로 염호에 매장돼 있다. 염호란 안데스 산맥 융기로 육지에 갇힌 바닷물이 수만 년간 증발해 만들어진 소금 사막을 일컫는다. 소금 사막 아래는 막대한 해수가 갇혀 있고, 1㎏당 1.5g의 리튬을 머금고 있다. 아르헨티나 라리오하 주지사는 이미 리튬을 전략 광물로 지정하고, 그동안 승인된 모든 탐사 허가를 중단하는 법안을 주지사령으로 공포했다.

 

자원민족주의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전 세계 광물을 싹쓸이하는 중국 기업 움직임도 심상찮다. 중국 광물 업체들은 일찌감치 남미, 호주, 아프리카의 리튬 광산을 ‘쇼핑’하면서 어느새 세계 리튬 화합물 1위 생산 국가로 떠올랐다. 리튬 국제 가격이 중국 화폐 단위인 위안으로 산출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한국무역협회 무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수산화리튬 전체 수입액 36억6074만달러 중 중국 비중은 87.9%에 달한다. 2021년(83.8%)보다 4.1%포인트 늘면서 대중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진다는 우려다. 세계 주요국에서 생산된 리튬이 중국으로 건너간 후 고순도리튬으로 제련돼 주요국에 공급되고 있다.

 

미국 IRA도 빼놓을 수 없는 핵심 변수다. IRA에 따른 세액 공제 혜택을 받으려면 올해부터 북미 지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생산된 원자재를 40% 이상 사용해야 한다.

 

세액 공제 조건이 강화되는 2027년에는 미국 또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하거나 가공해야 하는 핵심 광물 비율이 80%로 높아진다. 2025년부터는 중국 등 우려 국가에서 조달한 핵심 광물이 포함된 경우 아예 보조금 대상에서 배제된다.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이 북미에서 원재료 확보부터 공장에 이르는 가치사슬을 갖춰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전략을 앞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일례로 LG화학은 북미 지역 리튬을 확보하기에 앞서 미국에 양극재 생산 기지 설립을 추진하는 등 배터리 가치사슬 구축에 힘쓰는 모습이다. 미국 테네시에 연산 12만t 규모의 양극재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올 1분기 중 착공해 2025년 말 양산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다.

리튬가격
반값 리튬

CATL발 ‘치킨 전쟁’ 서막

‘K배터리’ 단기 영향 제한적

리튬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이 쏠린다. 특히 세계 배터리 1위 업체 중국 CATL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CATL은 최근 배터리 소재인 탄산리튬 가격을 t당 20만위안으로 낮춰 중국 내 자동차 업체와 장기계약을 맺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내 배터리업계는 중국 CATL의 리튬 가격 인하 파장이 어디까지 확산할지 주시하는 모습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단기적으로는 중국 내수 시장으로 그 영향이 제한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 중론이다. CATL이 내세운 조건을 살펴보면, 배터리 구매량의 80% 이상을 CATL 배터리로 사용하는 고객사에 한해 오는 3분기부터 3년간 가격을 낮출 계획이다. 사용 중인 배터리의 80% 이상을 CATL에 받는다는 조건에 비춰, 실제로 이 혜택을 누릴 기업은 니오, 리오토 등 대부분 중국 전기차 기업이 될 전망이다.

 

배터리셀 가격에 미치는 영향력도 제한적이다. CATL은 배터리셀 원가를 차지하는 여러 원재료 가운데 리튬에 대해서만 50% 정도 깎아준다는 것이지, 완성차 업체에 납품하는 배터리셀 가격 자체를 할인한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밝혔다. 삼성증권이 투입 원가 비중, 메탈 가격 등을 통해 추산한 결과, 셀 가격 하락폭은 약 14% 정도로 추정됐다.

 

장정훈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번 할인 대상이 된 완성차 업체는 CATL의 배터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곳이고, 전체 판매 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글로벌 시장에서 4%, 중국에서는 6.6% 수준에 불과하다”며 “단기간에 다른 배터리 업체들의 셀 가격 하락 압력으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이번 이벤트를 CATL에 국한한 개별 기업 차원의 이슈로 치부하기 힘든 측면도 있다.

 

외신과 배터리업계 의견을 종합하면,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이기도 한 중국에서는 어느 한쪽이 멈춰야 끝이 나는 가격 인하 ‘치킨 게임’ 서막이 올랐다는 게 대체적인 진단이다. CATL이 쏘아 올린 치킨 게임은 중국 주요 배터리 업체에 연쇄적인 가격 인하 압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다시 국내 배터리 회사에 수익성 악화 요인으로 돌아올 수 있다.

 

실제 중국 배터리 시장에서는 지난해부터 과잉 재고 이슈가 도마 위에 올랐다.

 

중국 경제 매체 차이신과 배터리얼라이언스 등에 따르면, 중국 내 동력 배터리(리튬이온·니켈수소 배터리) 재고 누적량은 2018년 13.6GWh에서 2020년 19.8GWh, 2021년 65.2GWh, 2022년 251GWh로 치솟았다. 특히 2022년 배터리 재고는 전년 대비 4배 가까이 급증했다. 지난해 유럽을 중심으로 전기차 보급 속도가 가팔랐고 중국 내수 시장에서는 정부의 신에너지차(전기차·하이브리드차·수소차) 지원 덕분에 탄산리튬 배터리 산업이 유례없는 호황기를 누렸다. 탄산리튬은 중국이 주도하는 LFP 배터리에 주로 쓰인다.

 

그러던 중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고조되자 분위기는 돌변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말 신에너지차 지원 정책을 종료시켰다. 이에 동력 배터리를 사용하는 친환경차 판매량은 급감했다.

 

중국 승용차협회 집계에 따르면 지난 1월 신에너지차 판매는 36만대로, 한 달 전인 지난해 12월보다 44% 감소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최근 수년간 중국을 포함한 배터리 제조 기업의 수요 예측이 다소 낙관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특히 중국은 역대급 성장세를 보였던 수년간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요 예측을 하다 보니 미래 수요가 부풀려진 측면이 있었고 배터리 제조 설비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렸던 게 결과적으로는 화근이 된 셈”이라고 돌아봤다.

 

배터리업계 1위 CATL이 가격 인하 전쟁을 촉발한 만큼 후발 업체도 결국 이를 따를 수밖에 없다. 보유 자원과 현금 여력이 풍부한 CATL은 충분히 버틸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에는 재무적 압박 요인으로 작용한다. 중국 내에서는 CATL을 비롯한 상위 업체를 중심으로 과점 수준의 충분한 시장 집중화가 이뤄질 때까지 ‘치킨 게임’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결국 중국 내 배터리 기업 간 연쇄적인 가격 인하로 확전될 경우, 이는 국경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리튬 가격 추가 하락과 이에 따른 배터리셀 가격 인하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뿐 아니다. 완성차 업체의 대응 전략도 배터리 회사 수익성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친다. 전기차 시장 초기 협상력 측면에서 배터리 회사보다 상대적 열위에 놓여 있던 완성차 회사는 산업 헤게모니를 되찾으려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최근 경기 침체 우려로 전기차 수요가 줄고 원자재 가격이 안정을 찾자 완성차 기업은 배터리 기업과 전략적 연합을 강화하며 공급처를 다변화하고 있다. 완성차 기업은 ‘공급처 다변화’를 지렛대 삼아 배터리업계를 대상으로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리튬 국가별 매장량

산업 헤게모니를 거머쥐려는 완성차업계는 CATL이 촉발한 치킨 게임이 어디까지 확전될지 주목한다. 배터리 업체는 완성차 업체와 맺은 장기 공급계약에서 서로 연동된 원자재 가격과 배터리 판매 가격이 사전에 약속한 범위를 벗어날 경우 가격 협상을 다시 하도록 했다. 이는 기초자산 가격 등락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파생 시장의 옵션(풋·콜옵션)과도 비슷하다. 원자재 가격이 오를 때는 기존 계약이 완성차 업체에 불리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완성차 회사는 원자재 가격 하락을 이유로 배터리 단가 인하를 벼르는 분위기다. 이는 국내 배터리 회사에 수익성 악화 요인으로 작용한다.

 

민관 대응 체계 구축 서둘러야

정부 대응 적시성 부족 지적

미국 IRA를 비롯한 자원민족주의 심화로 이제는 개별 기업 역량만으로는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이 때문에 민관 협동 체계를 구축해 전략 자원 다각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 주장이다.

 

우선, 우리 정부는 경제 안보 차원에서 33종의 핵심 광물을 선정하고 이 가운데 반도체, 2차전지 등 주력 산업 공급망 다변화에 필수적인 리튬을 비롯한 10대 광물을 전략 자원으로 선정했다. 정부의 집중 관리를 받는 전략 핵심 광물은 리튬·니켈·코발트·망간·흑연, 일부 희토류(네오디뮴·디스프로슘·테르븀·세륨·란탄) 등 10종이다.

 

정부는 핵심 광물의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국제 협력을 추진한다. 33종의 핵심 광물 매장량, 생산량, 우리 기업 진출 현황 등을 고려해 전략 협력국을 골라 장기 공급계약 체결, 광산 투자 지원 등 다각도로 협력을 도모한다. 또, 미국 주도 광물안보파트너십(MSP), 호주 주도 국제에너지기구(IEA) 등 다자간 협력 체제에도 적극 참여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2030년까지 리튬·코발트·흑연 등 전략 광물의 특정국 의존도를 80%에서 50%대로 낮추고 2%에 불과한 재자원화를 20%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다만, 산업계는 정부의 이런 대응이 경쟁국인 일본에 비춰 다소 늦은 감이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은 일찌감치 리튬 수입처 다변화에 나서 중국 의존도를 50%대로 낮췄다.

 

민간 기업의 핵심 광물 투자를 촉진할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미래 수요 예측이 힘든 전략 광물 특성상 소수의 광물에만 투자할 수 없어 높은 리스크를 안고 여러 광물 자원에 동시다발적으로 투자할 수밖에 없다. 이에, 우리 정부는 기업이 떠안아야 할 리스크를 완화하고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다양한 유인책을 추진한다.

우선 2013년 일몰된 해외 자원 개발을 위한 투자 세액 공제 제도를 재도입한다. 또, 개발 실패 시 비용 인정 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포함, 해외 자회사 배당금 세 부담 완화를 통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핵심 광물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위험성이 높고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광물 자원 탐사는 광해광업공단 등 공공기관이 주도하고 타당성 검토 후 민간 기업의 투자와 연계하는 민관 합작 사례도 확대한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는 핵심 자원 내재화와 전략적 협업 다각화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미 미국 GM은 지난 1월 캐나다 광산 업체인 리튬아메리카스에 6억5000만달러(약 8500억원)를 투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투자로 연간 100만대의 전기차 생산에 필요한 리튬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테슬라, 포드 등 다른 업체들도 리튬 확보에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전략 자원의 공급망 취약성을 기업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에도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산업연구원은 “기업의 회복 탄력성, 공급망의 해외 노출 정도, 수요의 해외 노출 정도 등에 따른 스트레스 테스트를 고려할 수 있으며, 취약성이 높고 국내 파급 효과가 큰 산업, 전략적으로 중요한 품목일수록 테스트가 필요하다”며 “정부가 그 포맷을 제시하고 기업 스스로 테스트를 실시해 잠재적 위험에 대응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에코프로비엠.엘앤에프 급등...과열 우려 커

[들썩이는 양극재 관련주]

리튬을 비롯한 주요 원자재 확보에 비상이 걸리면서 시장에서는 양극재 관련주가 주목받는다. 양극재 주요 원료인 리튬 가격이 하락하면 양극재 판가 하락이 불가피하지만 대규모 수주가 양극재 업체의 견고한 실적을 뒷받침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양극재 대장주로는 에코프로그룹이 손꼽힌다. 에코프로그룹은 에코프로머티리얼즈(전구체), 에코프로이노베이션(리튬), 에코프로씨엔지(폐배터리 재활용) 등으로 양극재 관련 밸류체인을 내재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7년 7월 지주사 에코프로가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후 양극재 제조사 에코프로비엠, 친환경 솔루션 기업 에코프로에이치엔이 코스닥 시장에 입성했다.

 

시장에서 주목받는 기업은 에코프로비엠이다. 이 회사는 2027년까지 전구체 33%, 니켈 31%, 리튬 26%를 내재화해 글로벌 양극재 수요에 적극 대응하고 지정학적 리스크를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권준수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BMW·포드·현대차 등 고객사의 신차 출시와 양극재 증설 효과가 더해지며 높은 외형 성장이 예상된다”며 에코프로비엠의 올해 매출, 영업이익이 각각 8조9382억원, 6027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봤다. 이는 전년 대비 각각 67%, 58% 증가한 수준이다.

 

배터리 양극재 기업 엘앤에프도 주목받는다. 엘앤에프는 최근 미국 테슬라와 3조8347억원 규모의 하이니켈 양극재 공급계약을 맺었다. 공시된 공급계약 규모는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 3조8838억원에 육박한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전체 공급량은 양극재 7만t 수준, 배터리 환산 시 44~47GWh, 85㎾h급 전기차(테슬라 모델Y 기준) 52만~55만대에 탑재할 수 있는 수준으로 추정된다.

 

전창현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번 계약 물량은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 때 제시됐던 양극재 생산능력 가이던스(2024년 22만t, 2026년 40만~43만t)에 포함된 수치로 추정된다”며 “후속 공급계약으로 이어질 시 2026년 이후 실적 추정치 상향으로 이어질 것”으로 봤다

에코프로비엠

다만, 일각에서는 양극재 관련주에 대해 기업가치 거품 우려를 제기한다.

 

에코프로비엠의 경우 영업이익이 10배 이상 차이 나는 SK이노베이션의 시가총액을 추월하면서 거품 논란에 불을 지폈다. 지난해 에코프로비엠 영업이익은 3825억원으로 SK이노베이션(3조9989억원)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중국 CATL이 촉발한 출혈적인 가격 경쟁이 확산할 경우 양극재 기업의 이익 감소 우려도 높다. 장정훈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테슬라 수주·증설 호재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반영돼 주가가 오르고 있다”며 “큰 기대감은 큰 실망을 불러올 수 있으며 위험 요인이 있는 만큼 신중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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