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미국 와이오밍주에 속한 작은 휴양도시에서 열릴 ‘2025 잭슨홀 미팅’에 전 세계인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전체적인 주제는 빠르게 진전되는 인공지능(AI) 시대에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어떻게 확보해 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 AI발 변화 가장 빨리 체감할 수 있는 곳, 고용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논의되기 시작했던 AI가 3년 전 챗GPT로 우리에게 다가오기까지 의외로 잠잠했다. 산업발전 단계상 엄동설한에 푸른 싹이 돋기 시작한 단계(green shoot)인 챗GPT가 윤리적 문제에 봉착해 시든 잡초(yellow weed)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3년 만에 모든 산업 중 가장 빨리 화려하게 꽃(golden goal)을 피우고 있다.
최근처럼 세계경제가 어려울 때는 신기술이 출회하면서 위기 극복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1990년대 들어 일본발 위기론이 확산됐을 당시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기술(IT)이 꽃을 피우면서 세계경제를 구해냈다.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IT가 주도산업으로 자리 잡으면서 종전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고성장·저물가의 신경제 신화를 낳았다.
AI발 변화를 가장 빨리 체감할 수 있는 곳이 고용시장이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중국을 비롯한 저임의 저개발국 노동력 공급이 더 이상 안 되는 루이스 전환점이 앞당겨져 주요국 자체 노동시장에서 저소득층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코로나 지원금에 따른 자발적 실업인 코브라 효과까지 겹쳐 저소득층의 임금은 빠르게 상승했다.
올해는 디지털 고도화까지 이루어지면서 구조조정 대상이 바뀌고 있다. 코로나 사태 직전까지 디지털화는 블루칼라를 대신할 수 있는 방향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AI 등이 급진전되면서 화이트칼라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필요없는 시대가 오면서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저소득층(혹은 블루칼라)의 역습 시대가 온다’고 내다봤다.
저소득층의 역습은 성장과 고용 간의 정형화된 사실도 깨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저소득층이 내몰리면서 ‘고용 창출 없는 경기회복(jobless recovery)’을 낳았지만 최근에는 저성장 시대가 정착되는 속에서도 실업률이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 ‘고용 풍부한 경기둔화(job full downturn)’라는 새로운 수수께끼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현상이 일시적이냐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앞으로 더 강화돼 추세로 자리 잡을 확률이 높다. 중국, 한국 등 주요국은 인구절벽으로 생산가능인구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AI, 양자컴퓨터 등으로 이어지는 디지털의 고도화는 이들의 노출도가 심한 화이트칼라와 고소득층을 더 빨리 대체해 나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AI가 진전되는 시대에는 경기순환 진폭이 커지는 ‘순응성(procyclicality)’과 주기가 짧아지는 ‘단축화(shortening)’ 현상이 심화되는 반면에 기준금리 변경 방식이 효과를 보기까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 통화정책의 시차가 길 때는 기준금리를 변경할 때와 효과가 나타나는 시점에 경제 상황이 달라 각국 중앙은행이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높아진다.
통화표준(monetary standard)의 생명으로 ‘선제성(preemptive)을 유지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통화표준이란 로버트 헤철 전 리치먼드연방준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가 주장한 통화정책의 틀(frame)이자 체제(regime)로 기준금리 변경과 같은 통화정책은 일정기간 지속돼야 효과를 볼 수 있어 선제성을 중시한다.
각국 중앙은행은 통화표적경로상 최종 목표인 물가안정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중간에 확인해 보고 싶은 표적변수(proxy)가 필요하다. 중간표적변수는 그 특성상 기준금리와 인과관계가 명확하고 최종 목표와의 연계성이 높아야 한다.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중간표적변수를 설정해 운용하면 최종 목표 달성이 더 어려워지는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 양대 조건을 갖춘 중간표적변수를 찾기가 더 어렵다는 점이다. 비밀의 사원을 열어 Fed의 의도대로 시장을 끌고 나가 시차를 줄이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1994년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서 발표를 필두로 2000년에는 경제진단과 전망, 2003년에는 통화정책 지침이 추가됐다. 바통을 받은 벤 버냉키 의장은 2011년에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기자회견을 하면서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했다. FOMC 회의 직후 발표되는 선언문과 30분 후 여는 Fed 의장 기자회견 간의 일관성이다. 최근처럼 디지털이 진전되는 통화정책 여건에서는 FOMC 선언문과 Fed 의장의 기자회견과 일치되지 않을 때는 확정 혹은 부정적 편향을 낳아 시장에 혼선을 초래한다.
◆ 어떻게 통화정책을 수행할 것인가
작년 12월 FOMC 선언문과 제롬 파월 Fed 의장의 기자회견으로 이 문제의 중요성을 살펴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선언문에 포함된 점도표상으로는 올해 세 차례 금리인하가 예상됐다. 하지만 파월의 기자회견은 선언문보다 더 강한 피벗 시사로 최대 여섯 차례까지 금리인하 신호를 줬다. 직전 선언문은 무력화되고 시장은 혼선이 나타났다.
파월 이전에 버냉키와 재닛 옐런 의장이 이 점을 중시해 기자회견 내용을 FOMC 선언문의 내용을 재확인하는 선에 그쳤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파월 의장은 달랐다. 기자회견 뉘앙스가 FOMC 선언문과 다른 것을 넘어 각종 포럼과 의회 증언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Fed 인사들도 가세했다.
Fed 의장과 인사들이 수시로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과정에서 통화표준의 생명인 선제성 유지가 어렵게 되자 2021년 9월 평균물가목표제 도입 계기로 ‘후행적(reactive)’으로 바뀌었다. 통화표준상 선제성을 잃어 통화정책의 주도력을 잡지 못한다면 ‘세계중앙은행’과 ‘세계경제 대통령’으로서 Fed와 Fed 의장의 위상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AI 시대가 전개되면서 종전의 정형화된 사실이 흐트러짐에 따라 각국 중앙은행은 ‘어떻게 통화정책을 수행할 것인가’ 하는 또 하나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네트워킹 효과와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AI 시대에 있어서는 중앙은행의 목표를 ‘물가안정’에만 둘 수는 없다. 기준금리 변경, 유동성 조절 등과 같은 종전의 통화정책 수단도 무력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효과는 반감된다.
통화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다른 경제주체도 공유가 가능해짐에 따라 ‘정보의 비대칭성’을 전제로 한 중앙은행의 시장 선도 기능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즉 중앙은행과 시장참여자 간 관계가 ‘수직적’이 아니라 ‘동반자적’으로 변한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중앙은행과 중앙은행 총재의 위상, 기준금리와 시장금리 간 체계는 약화가 불가피하다.
특히 우려되는 대목은 각국 국민이 적응할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새로움과 복잡성’에 따른 위험이 증대되고 화폐개혁 논의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사 금융행위도 판치게 된다. 이런 환경에 맞춰 금융 감독이 새로운 옴니버스 방식 등으로 접근하지 못할 경우 각국 국민의 화폐생활에 있어서는 일대 혼란이 초래될 확률이 높다.
한국은행도 AI 시대에 맞춰 중앙은행 목표 수정, 통화량 등 새로운 통화지표 개발, 통화유통속도와 통화승수 무력화 방지, 인과관계와 추적성이 중간인 표적변수 개발, 통화정책 관할 범위 확대, 통화정책 전달경로 유효성 점검, 경기 예측력 제고, 그리고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다변화 등을 사전해 준비해 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