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 “시장 관심 큰 만큼 꼼꼼히 심사”
한국거래소가 인적분할을 추진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재상장 예비심사 기한 연장을 통보했다. 기존 주주에게 신설 회사의 주식을 나눠주는 인적분할은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크지 않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할 계획도 무난한 진행이 예상됐다. 그런데 최근 상법 개정이 이뤄지는 등 주주 권익에 관심이 커지면서 인적분할 후 재상장에 대한 한국거래소의 심사도 신중해진 분위기다.
한국거래소는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재상장 예비심사에 필요한 기한을 연장한다며 증권신고서 제출을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재상장 예비심사는 이미 상장된 기업이 분할이나 합병을 통해 다시 상장할 때 거치는 심사로, 절차의 적정성을 평가해 적격 판정을 받아야 재상장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당초 29일 예정이었던 증권신고서 공시일이 미뤄지게 됐다. 재상장 예비심사의 경우 예비심사 청구를 접수한 후 45일 이내에 결과를 통보해야 하고, 추가 심사가 필요한 경우 한국거래소는 공시 기한을 연장할 수 있다. 기업은 예비심사를 통과한 이후 증권신고서를 공시해 다시 금융감독원의 심사를 받는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재상장 예비심사가 늦어지는 일은 이전에도 종종 있었다”면서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인적분할은 시장에서 관심이 큰 사안이라 관련 자료를 꼼꼼히 보는 과정에서 심사 절차가 다소 지연됐다”라고 설명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5월 22일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인적분할해 신설회사 ‘삼성에피스홀딩스(가칭)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바이오 의약품 위탁생산개발(CDMO) 사업을 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산하에 바이오시밀러(바이오 의약품 복제약) 사업을 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를 두는 현재 구조에선 고객사들과 이해 상충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별도 법인으로 분리해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생산을 위탁하는 고객사의 자사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인적분할을 발표했다. 인적분할은 기존 상장 기업의 주주가 신설 기업의 주식을 지분율에 비례해 나눠 갖는 방식이다. 신규 상장 주식을 전량 기존 상장사가 갖는 물적분할과 비교하면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크지 않다.
이 때문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할 계획은 순조롭게 흘러갈 것으로 예상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인적분할 계획을 발표하면서 7월 29일 증권신고서 제출, 9월 16일 주주총회 개최, 10월 1일 삼성에피스홀딩스 창립, 10월 29일 변경상장 및 재상장 등 일정을 안내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거래소의 예비 심사가 길어지면서 향후 일정도 늦춰질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재상장 예비심사 지연이 최근 정부가 주도하는 주주 가치 제고 정책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정부가 기업의 분할 후 재상장 과정에서 소액 주주의 권익이 침해되는 사례에 엄중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고, 앞서 파마리서치와 하나마이크론 등 주주의 반발을 의식해 인적분할 계획을 취소한 사례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당정은 상법 개정을 통해 소액 주주의 권익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한국거래소도 기업 분할 상장 과정에서 기존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사례가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겠다며 중복상장 관련 심사 기준 마련에 나섰다.
다만 전문가들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인적분할은 파마리서치, 하나마이크론 사례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인적분할 구조를 따져봤을 때 사업 분리와 효율화를 위한 목적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파마리서치, 하나마이크론의 인적 분할은 궁극적으로는 지주사 전환을 통해 최대 주주의 지분율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었던 만큼 기존 주주의 이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었다”며 “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별도의 사업을 가진 법인을 분리하는 측면에서 기존 주주의 이익 침해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