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의로 韓 관세 25→15%로
FTA 효과도 잃어… 車 관세, EU·日과 동일
대규모 美 투자 펀드에 국내 투자 여력 상실 우려도
다음 달 1일부터 미국이 우리나라에 부과하기로 한 25%의 상호관세가 협의로 15%로 줄어 한시름 놨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편으로 아쉬운 결과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상호관세를 낮추기 위해 우리 협상단이 미국에 여러 선물 보따리를 제시했는데 이에 따른 출혈도 만만치 않아서다. 상호관세를 10%포인트(p) 낮추는 대신 우리나라는 3500만달러(약 486조원) 규모의 대미(對美) 투자를 약속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인한 무관세 이점을 포기했다.
정인교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31일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차선의 결과”라고 평가했다. 정 전 본부장은 윤석열 정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지난달까지 미국 측과 관세 관련 협의를 진행했다.
정 전 본부장은 “(FTA를 고려해 우리 협상단이 미국에) 자동차 품목관세 12.5%를 요구한 건 합리적이었지만 (협상안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라면서 “(이번 협상에) 품목관세를 매기고 있는 철강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고 했다. 이어 “미국이 다른 나라와 관세 협상을 한 후에 우리나라와 진행했기 때문에 협상안에 대한 큰 틀은 어느정도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미국은 이달 22일(현지 시각)과 28일 일본, 유럽연합(EU)와 차례로 관세 협상을 마쳤다. 이들이 적용받는 상호관세는 우리나라와 같은 15%다. 다만 미국에 준 당근엔 차이가 있다.
일본은 5500억달러의 대미 투자와 미국산 쌀 수입 75% 확대, 보잉 항공기 100대 구매, 매년 수십억달러의 방산 장비 추가 도입 등을 약속했다. EU는 6000억달러 규모로 미국에 투자하고, 7500억달러의 미국산 에너지를 사겠다고 했다. 일본과 EU의 미국 수출 자동차 품목관세는 2.5%에서 15%로 올랐다. EU·일본은 미국과 FTA를 맺지 않았는데도 FTA를 맺은 우리나라와 동일한 자동차 품목관세율을 적용받는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기존에 우리나라는 FTA로 무관세로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했는데 앞으로는 관세 15%를 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 EU보다 가격 측면에서 유리했는데 이제는 같은 선에서 경쟁해야 한다. 우리나라 자동차가 (이번 협상으로) 불리해졌다”고 말했다. 장 원장은 “이번 협상안에서 가장 아쉬운 건 한·미 FTA의 실효성이 없어진 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장 원장은 일본과 EU처럼 미국 상품 구매액이 적은 건 성과라고 했다. 장 원장은 “일본은 항공기 등 구매하는 미국 제품이 많고, EU도 7500억달러의 미국산 에너지를 구매하기로 했다”면서 “우리나라는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1000억달러라 상대적으로 (경제적) 부담이 작다”고 말했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결국 이번 협상으로 자동차 품목관세를 10%p 낮춘 것”이라면서 “(3500억달러의 대미) 투자와 자동차 품목관세 인하를 맞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보호 무역주의가 한동안 계속되는 상황에서 한·미 FTA는 우리의 든든한 방패”였다면서 “(우리 협상단이) 한·미 FTA의 중요성에 대해서 망각하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대규모 대미 투자로 인한 우리 기업들의 국내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한국국제통상학회장인 허정 서강대 교수는 “(대미 펀드 조성으로)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해야 해 국내 투자가 소홀해질 수 있다”면서 “기업 입장에선 어디 투자하든 상관없지만 한국 경제로서는 해외에서 번 이익금을 국내로 재투자할 여지를 둬야 한다”고 했다.
우리 정부는 대미 투자 금액이 미국에 대한 무역 흑자 수준으로 정해진 거라 일본보다 선방했다고 자평했지만, 절대적인 규모로 봤을 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허 교수는 “3500억달러면 약 500조원으로 우리나라 1년 예산에 맞먹는 수준”이라고 했다.
일본과 경제 규모로 비교해도 선방한 건 아니다. 지난해 말 기준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4조2137억달러로 우리나라의 2.2배다. 이 비율대로라면 우리나라의 대미 투자액은 2350억달러였어야 한다.
아직 고삐를 늦출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2주 내로 트럼프 대통령과 양자회담을 하기로 했는데, 이 과정에서 세부안이 조정될 수 있어서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방위비 협상이 아직 남았다”면서 “안보 쪽에서 좋은 협상이 있어야 경제 협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선순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