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지난 7월 16일 미국 상원 그리고 다음날 17일에는 하원에서 스테이블 코인을 규제하기 위한 최초의 법인 지니어스법(GENIUS Act)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7월 18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정식 법률로 발효됐다. 2008년 비트코인이 만들어진 이후 가상화폐 시장은 비규제 시장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가상화폐는 빠르게 실물 경제에 파고들었으며 미국에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법안까지 만들어졌다. 규제가 만들어졌다는 점은 공식적으로 가상화폐를 하나의 제도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 가상화폐는 가격 변동성이 컸던 만큼 투자의 수단으로는 여겨졌지만 일상적인 결제나 가치저장 수단으로 사용하기 어려웠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스테이블코인이 만들어졌으며 스테이블코인은 주로 미국 달러, 유로화 등 법정화폐 가치를 1대 1로 모방하도록 설계됐다. 초기에 스테이블코인은 비트코인 혹은 이더리움과 같은 변동성이 큰 가상화폐를 사고팔 때 쓰이던 거래소 내 내부결제 수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3~4년 사이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서비스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송금, 급여, 카드결제, 탈중앙대출, 자산관리까지 활용 범위를 넓히며 금융 인프라로 진화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달러 등 법정화폐 가치와 연동되도록 설계된 만큼 항상 가격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시장의 불안이 생기면 법정통화에서 벗어나는 사례가 존재했다. 2023년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했는데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의 일부 준비금 중 33억 달러가 SVB에 묶여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USD코인(USDC) 가격은 1달러를 하회했다. 발행사인 서클이 주말 내내 보유하고 있는 미 국채를 현금화하고 결제은행을 기존 SVB에서 뉴욕멜런·BNY로 갈아타겠다고 발표한 뒤에야 다시 1달러로 가격이 돌아왔다.
이번에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지니어스법도 스테이블코인 가격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는 발행된 스테이블코인의 가치만큼 현금, 예금, 93일 미만의 미 국채를 보유하도록 하고 있으며 매월 정기 감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안전하고 유동화하기 쉬운 자산을 보유함으로써 언제든 스테이블코인의 환매에 대응할 수 있도록 법제화한 것이다.
미 국채 금리 하락 견인한 스테이블코인
스테이블코인이 점차 제도화되고 있는 것은 가상화폐 시장뿐 아니라 국채 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현재 미 국채 10년 금리가 4.3%대를 기록하는 등 미 국채 금리가 높은 수준에서 하락하지 못하는 이유는 관세에 따른 물가상승 우려로 연준의 금리인하 기대감이 후퇴한 것도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안으로 미국의 재정적자가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이번에 통과된 감세안에 따르면 미국의 재정적자는 향후 10년간 4.1조 달러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적자가 확대되면서 미 국채 발행은 증가할 가능성이 높은데 늘어나는 국채 발행에 대한 부담으로 금리가 상승한 것이다.
다만 스테이블코인 시장 확대는 미 국채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지니어스법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은 발행한 규모만큼 현금, 예금, 93일 미만의 미 국채를 보유하도로 규정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규모만큼 현금 혹은 예금을 보유해도 되지만 현금은 이자가 발생하지 않는다. 발행자 입장에서는 이자가 발생하는 예금 혹은 93일 미만의 미 국채를 보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 재무부도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미 국채의 새로운 수요가 창출됐다고 언급한 바 있다.
현재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미 국채의 규모는 1660억 달러로 알려져 있다. 나라별로는 미 국채를 16번째로 많이 보유하고 있는 노르웨이(1873억 달러) 다음이며 사우디아라비아(1277억 달러, 17위), 한국(1242억 달러, 18위)보다 보유 금액이 많다. 현재 시가 총액이 큰 테더, USDC, 다이(Dai) 등 3종류의 미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시가 총액은 약 2298억 달러이며 스테이블코인의 시장가치는 2028년까지 2조 달러까지도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시장 가치가 커지는 만큼 미 국채의 수요도 많아질 것이다.
물론 미 국채의 만기는 최대 30년까지인 반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매입할 수 있는 미 국채의 잔존 만기는 93일까지이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초단기물 채권만 매수한다면 장기물 금리는 여전히 높은 수준에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의 수요가 많아질 경우 미 재무부도 이에 대응해 단기물의 발행 규모를 확대할 수 있다.
현재 미 재무부가 제시하고 있는 미 국채의 발행 가이드라인은 ‘전체 부채의 15~20%를 T-bills(만기가 1년 미만인 채권)로 조달한다’이다. 2025년 6월 미 정부의 부채 중 T-bills 규모는 5.78조 달러로 전체 부채의 20.2%를 차지하고 있다. 재무부가 제시하고 있는 가이드라인 상단을 소폭이지만 상회하고 있어 만기 1년 미만인 채권의 발행 비중 축소가 불가피하다.
다만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로부터 T-bills의 수요가 확대될 경우 미 재무부는 T-bills의 발행 비중 가이드라인을 상향할 수 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도 꾸준히 스테이블코인은 미 국채의 새로운 투자자라고 언급하고 있으며 베선트 재무장관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미 장기물 금리를 낮추고 싶어한다. T-bills의 발행 비중을 확대할 경우 만기 2~30년인 채권들의 비중은 자연스럽게 감소할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금리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는 채권 공급에 대한 우려는 완화되면서 금리 하락 안정에 기여할 것이다.
빠르게 기준금리 인하한 한은
물가에 대응해 3.50%까지 기준금리를 인상했던 한국은행은 2024년 10월부터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0월과 11월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올해에도 1월은 동결을 결정했지만 2월 재차 인하를 단행하면서 총 3차례까지 빠르게 인하했다(현재 한국 기준금리 2.75%). 기준금리를 인상했던 원인인 물가상승률이 아래로 향하면서 목표치인 2%를 하회하는 가운데 2024년 11월 미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보호무역주의에 따른 국내 수출 경기 부정적), 그리고 12월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경기의 불확실성이 높아져 경기 대응에 무게를 두면서 빠르게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한국은행이 경기에 대응해 비교적 빠르게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여전히 한국 경기의 하방 압력은 높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도 경기 대응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있으며 한은 총재는 한국은 여전히 인하 사이클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금융시장은 연내 1~2차례의 추가 인하를 전망하고 있는 가운데 한은 총재는 금융시장의 전망은 한국은행의 가정과 유사하다고 언급했다. 이로 인해 금융시장은 8월 추가 기준금리 인하 등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추가 기준금리 인하 속도는 이전과 비교해 점차 더뎌질 것이다.
경기의 하방 압력은 여전히 높다. 특히 미국이 금융시장이 생각했던 것보다 강하게 관세정책을 실행하면서 한국 경제에도 부담이 높다.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 중반 내외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경기를 바라보면 기준금리를 더 빠르게 그리고 더 많이 내려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경기만 바라보면서 통화정책을 결정할 수는 없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1.5%로 전망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 성장률이 더 하향 조정되더라도 이는 재정지출을 통해 대응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즉 경기의 불확실성이 더 높아질 수 있지만 한국은행은 경기만 생각하면서 기준금리를 빠르게 그리고 큰 폭으로 인하할 수 없는 만큼 재정지출을 통해 경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느려질 수밖에 없는 추가 인하 속도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의 목표는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다. 부진한 경기는 물가상승 압력을 낮춘다는 점에서 기준금리 인하 요인이다. 하지만 금융안정 부문을 고려하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를 저해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는 금융 부문은 환율과 가계부채이다. 먼저 환율을 바라보자. 1400원 내외이던 환율은 2024년 12월 초 계엄 발생 이후 1450원대까지 상승했다. 한국은행은 기존 원화의 약세는 달러의 강세 때문이라고 주장해왔지만 109pt이던 달러인덱스가 104pt까지 하락하면서 달러가 약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화는 오히려 장중 1470원을 돌파했다. 코로나19로 유동성 경색이 생기면서 경기침체 우려가 높아졌던 2020년 3월 수준을 상회하고 있다. 대내외적인 정치 불확실성과 약해진 한국의 경기 펀더멘털로 원화 환율이 하락할 재료가 많지 않다. 한국은행 입장에서는 기준금리를 빠르게 인하할 경우 한·미 기준금리 역전폭이 확대되면서 원화 환율이 빠르게 반등할 위험이 존재한다.
또한 부동산 가격도 우려이다. 여전히 지방 부동산 가격은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연초 이후 강남을 중심으로 서울 부동산 가격은 빠르게 상승했다. 이에 대응해 정부는 3월 19일 부동산 가격 억제를 위해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다만 부동산 대책이 정부 의도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울 상당수 지역들의 부동산 가격이 2024년 고점을 돌파한 상황에서 정부 의도와 다르게 풍선효과로 강남의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리스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팬데믹 이전과 비교하면 은행권의 대출금리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지만 이미 7%가량의 대출금리를 목격했던 상황에서 심리적인 저항선은 낮다.
한국은행 총재가 꾸준히 언급하듯이 부동산 가격 자체를 한국은행이 통제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부동산을 매수하려는 수요가 강해지면서 가격이 더 상승하는데 이에 따라 가계대출이 빠르게 늘어난다. 그리고 한국은행이 걱정하는 가계부채가 빠르게 증가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2024년 7~8월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경계심을 보여준 적이 있다.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을 마무리하고 금융시장은 금리인하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과 스트레스 DSR 실행 전 수요로 부동산 가격은 가파르게 반등했고 이에 따라 가계대출도 빠르게 증가했다. 결국 한국은행은 금융시장의 기대와 다르게 2024년 7~8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만장일치로 동결하고 가계대출 증가세의 둔화가 확인되기 시작한 2024년 10월에서나 인하를 단행했다.
문제는 당시보다 부동산 가격에 대한 우려는 더 커질 수 있다. 2024년 하반기로 돌아가면 통화정책은 긴축적인 상황에서 물가는 하향 안정화되고 있었다. 그리고 9월부터 스트레스 DSR이 실행되면서 가계대출 증가세의 둔화가 확인됐다. 하지만 현재는 당시보다 기준금리가 더 낮은 상황이다. 더욱이 2024년 하반기에는 물가가 낮았던 만큼 가계대출의 둔화세가 확인되면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지만 올 하반기에는 물가가 반등할 위험이 존재한다. 또한 2024년 하반기와 다르게 기준금리를 한은 총재가 인하 사이클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인하할 수 있는 여력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금융시장도 점차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 중반을 지나 전환점에 돌입한 것을 인지하고 있다. 정확한 지점은 알 수 없지만 한국은행이 한 번 더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하게 된다면 목적지인 최종 기준금리(=인하 사이클이 끝났을 때의 기준금리)에 더 가까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의 추가 인하 시점은 금융시장이 생각하고 있는 8월보다 더 늦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