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가격 하루에만 22% 급락
1968년 이후 일간 하락률 최대
정제 구리는 관세 제외된 영향
구리에 대한 투기 수요도 종료
구리 가격 하락에 베팅하는 상장지수증권(ETN) 수익률이 최근 급등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정제 구리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결정한 데 따른 영향이다. 관세 부과 전 구리 사재기에 나섰던 미국 내 기업들의 수요를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점도 가격을 끌어내린 원인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구리값이 반등해도 관세 부과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을 내놓는다.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1일 기준)간 ETN 수익률 상위 10위권 중 6개가 구리 인버스 ETN으로 집계됐다. 이중 '한투 인버스 2X 구리 선물' 수익률이 61.44%로 가장 높았다. 이어 '신한 인버스 2X 구리 선물' 'KB 인버스 2X 구리 선물(H)' '삼성 인버스 2X 구리 선물(H)' 등이 27.3~61.21% 상승률을 보였다.
반면 구리 가격 상승에 베팅하는 ETN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같은 기간 48.92% 급락한 '삼성 레버리지 구리 선물(H)'을 비롯해 하락률 상위 10위권 중 9개가 구리 레버리지 상품이었다. 이중 'KB 레버리지 구리 선물(H)' '메리츠 레버리지 구리 선물(H)' '신한 레버리지 구리 선물' '한투 레버리지 구리 선물' 등이 22.71~48.9%의 하락률을 나타냈다.
구리값이 급락하자 이를 기초자산으로 삼는 ETN의 성과도 희비가 엇갈린 것이다.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지난 1일(현지시간) 9월물 구리 선물 가격은 파운드당 4.44달러로 전날 종가보다 1.86% 올랐다. 하지만 지난달 31일 미국이 순도 높은 정제 구리와 가공이 덜 된 형태의 구리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고 밝히자 구리 선물 가격은 이날 하루에만 22.05% 급락했다. 구리 파이프·와이어 등 반가공 제품과 전선 케이블·전기 부품 등 완제품 수입에만 50%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 구리값이 하루에 20% 넘게 폭락한 건 1968년 이후 처음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미국이 구리에 대한 50% 관세 예고로 지난달 23일 선물 가격이 5.82달러까지 급등했던 때와 비교하면 23.71% 떨어진 수준이다. 그동안 관세를 의식한 미국 내 기업들의 투기 수요로 인해 미국으로 대량의 구리가 수출됐다. 삼성선물에 따르면 올 상반기 미국으로 이동한 구리는 60만~88만t에 달했다. 이는 반기 구리 소비량인 44만t의 1.5~2배 수준이다. 하지만 관세가 부과되지 않게 되면서 창고 비용만 부과되는 재고에 불과해 실제 수요가 있는 곳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최진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COMEX 구리 가격 급락의 원인은 관세 대상에서 미가공 구리가 제외됐기 때문"이라며 "이전까지는 미국 내 기업들이 관세를 우려해 사재기에 나섰지만 더 이상의 수요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면서 가격이 하락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리에 대한 관세 리스크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가격이 관세 부과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미 백악관은 추가 조사를 통해 정제 구리에 대한 관세 부과 여부를 다시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계획이 통과되면 2027년부터 15%, 2028년 이후엔 30%의 보편적 관세가 부과된다.
옥지회 삼성선물 연구원은 "정제 구리에 대한 수입 관세 부과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상무부 장관에게 내년 6월 말까지 미국 구리 시장에 대한 최신 정보를 제공하라고 지시한 점을 미뤄 봤을 때 내년 하반기 이후 정제 구리에 대한 관세 부과 여부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봤다.
최 연구원은 "관세 리스크는 여전히 살아 있지만 원자재는 주식과 달리 경기에 후행하는 자산"이라며 "2027년부터 고관세가 부과돼도 당장 1~3개월 이슈에 집중하는 게 원자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미 미국 내 기업들은 사재기를 마쳤다"며 "구리 재고는 2018년 수준에 도달한 만큼 가격은 반등을 시도하겠지만 관세 이전 수준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