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실물화폐 가치’
실물화폐 프라이버시·경제체계 지탱 역할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 등 디지털 자산이 빠르게 성장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화폐의 미래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 사이에서 ‘현금 없는 사회’와 ‘디지털 화폐’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실물화폐’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행하고 한국조폐공사가 제조하는 법정통화는 우리 경제와 사회에서 여전히 핵심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디지털 자산의 장점을 인정하되, 실물화폐가 왜 법정통화로서 계속 유지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먼저, 실물화폐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가치 교환의 수단이다. 비트코인이나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려면 스마트폰이나, 디지털 지갑, 블록체인 네트워크 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접근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거나 아예 접근할 수 없는 이들이 존재한다. 고령층, 장애인, 농촌 지역 주민들, 기술 접근성이 낮은 취약 계층 등이 그들이다. 실물화폐는 이러한 기술 장벽 없이 누구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화폐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이는 단지 편의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포용성과 평등의 문제다.
둘째, 실물화폐는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최후의 방패다. 디지털 자산은 모든 거래가 블록체인상에 기록되며, 익명성이 강조되더라도 기술적으로 추적이 가능한 구조다. 정부나 기업이 개인의 소비 패턴을 분석하거나 통제하는 감시 사회로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실물화폐는 익명 거래가 가능하며, 누구와 무엇을 사고팔았는지 남기지 않는다. 이는 개인의 사적 영역을 보장하고,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민주사회의 핵심 인프라 중 하나로 기능한다.
셋째, 실물화폐는 극한 상황에서의 ‘최후의 수단’이다. 정전, 사이버 공격, 자연재해, 인터넷 마비 등 디지털 기반 인프라가 작동하지 않는 위기 상황에서 디지털 자산은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반면, 지폐와 동전은 별다른 기술이나 전력 없이도 가치 교환의 수단이 되며, 경제 활동의 최소한을 유지시킬 수 있다. 국가 재난이나 전시 상황 등 극단적인 조건 속에서 실물화폐는 단순한 거래 수단을 넘어, 경제 체계 지탱하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
또한, 실물화폐는 국가의 통화 주권과 경제 안전성을 유지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관리하는 법정통화는 정부가 통화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이 되며, 물가 안정과 경제 성장이라는 거시경제적 목표를 실현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디지털 자산, 특히 기축통화 역할을 하는 ‘USDT(테더)’와 ‘USDC(서클)’와 같은 달러 기반의 탈중앙화 스테이블코인이 국내에서 주요 거래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될 경우, 우리 정부는 해당 통화를 통제할 수 없어 통화정책의 실효성이 크게 약화될 수 있다. 이는 세금 징수, 금리 정책, 경기 조절 등 국가 경제를 운영하는 핵심 기능에 차질을 초래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경제 주권의 약화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물론, 디지털 자산이 전통적인 화폐 시스템에 던지는 질문은 매우 유의미하다. 빠르고 저렴한 국제 송금, 탈중앙화된 금융 접근, 투명한 거래 기록 등은 디지털 화폐가 제공하는 분명한 이점이다. 스테이블 코인은 가격 안정성을 통해 실물 경제에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자산은 아직 보편적 신뢰, 규제, 기술 인프라 등 여러 측면에서 미완의 상태이며, 그 자체로는 포용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담보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실물화폐는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필요한 공공 인프라다. 그것은 모두가 접근할 수 있고, 자유를 지켜주며, 위기 상황에서도 작동하며, 국가 경제의 핵심 기능을 지탱하는 존재다. 디지털 자산은 효율성과 혁신을 대표하지만, 실물화폐는 신뢰성과 포용성을 상징한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이 둘을 이분법적으로 대립시키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인 구조 속에서 공존시키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도 실물화폐의 자리는 여전히 견고하다. 이는 단순히 과거 방식을 고수하려는 것이 아니라, 포용적이고 접근 가능한 금융 환경을 유지하려는 의지이자 사회적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