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교회→지주택 공사로 급성장
시공능력평가 16위에도 부실공사·뒷돈 논란 뒤따라
서희건설이 김건희 여사 의혹 수사 과정에서 ‘태풍의 눈’으로 부상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김 여사에게 ‘반클리프앤아펠’ 목걸이를 전달한 것을 자백하면서부터다.
서희건설은 불과 20년 만에 종합시공능력평가(옛 도급순위) 100위권에서 20위권으로 진입하는 등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급성장했다. 소규모 관급공사나 교회, 학교 신축을 맡던 건설사에서 어느새 ‘서희스타힐스’로 널리 알려진 중견사로 자리를 굳힌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합법과 탈법을 넘나들며 사업을 영위해온 사실이 최근 수사 결과 드러나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선 “원수에게 추천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논란이 많은 지역주택조합 시공권 수주를 통해 실적을 높여온 만큼 각종 잡음을 피할 수 없었다는 분석이다.
‘틈새시장’의 강자, 이슈도 많아
서희건설은 대형사들이 눈독 들이지 않는 ‘틈새사업’을 공략해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창업자 이봉관 회장의 인맥 및 경력도 중요하게 작용했다.1945년 이북(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한 이 회장은 전쟁 뒤 경북 경주에 자리를 잡았다. 경주 문화고등학교와 경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1970년 포스코(옛 포항제철)에 취업했다. 1982년까지 포스코에 몸담다가 운송업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창업한 ‘영대운수’가 지금 서희건설의 모태가 됐는데 영대운수는 1994년 건설업으로 업종 변경을 하면서 포항제철소 토건 정비공사를 맡게 된다.
이렇게 탄생한 서희건설은 2000년대 이후 대형교회 공사를 도맡으며 가파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수백억원 규모에 달하는 명성교회 본당, 청운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광림교회 등의 신축 공사를 따낸 것이다. 이봉관 회장은 청운교회 장로로서 기독교 인맥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정권과의 유착 의혹도 이어졌다. 기독교, 포항 지역 인맥으로서 이명박 전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의장의 후원회장을 지냈고, 경희대 총동문회장으로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이 회장은 자식 농사에 성공한 기업인으로도 유명한데 슬하에 세 딸과 배우자가 각각 명문대 출신에 법조인이다. 서희건설의 ‘서희’가 셋을 뜻하는 경상도 방언 ‘서이’와 세 딸의 이름 뒷글자 ‘희’를 딴 것으로도 유명하다.
맏이인 이은희 통합구매본부 부사장의 배우자는 이 회장이 특검에 제출한 자수서에서 “맏사위 인사청탁을 위해 김 여사에게 목걸이 등을 전달했다”고 언급한 박성근 변호사이다. 서울고검 검사였던 박 변호사는 윤석열 대통령 임기 초인 2022년 한덕수 국무총리 비서실장에 임명됐고 윤 대통령이 대구지검에서 근무할 당시 함께 일하기도 했다.
둘째 이성희 재무본부 전무의 남편은 현직 판사이며 막내 이도희 미래사업본부 기획실장 부부도 검사 출신이다. 이 회장과 딸들은 한일자산관리앤투자→유성티엔에스→서희건설로 이어지는 그룹사 간 순환출자 구조 속에서 대주주이자 임원으로서 높은 임금을 받고 있다. 2024년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봉관 회장은 서희건설로부터 29억4000만원, 유성티엔에스에서 6억1200만원을 받았다. 이은희 부사장과 이성희 전무는 서희건설로부터 퇴직금을 포함해 각각 10억900만원, 9억5600만원을 지급받았다.
지주택 손대며 ‘파죽지세’
창업 초기 인맥을 활용해 학교나 작은 건물 공사를 따낸 뒤 주택사업으로 몸집을 불리는 방식은 지금까지 중견 건설사의 성공 공식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서희건설이 건설업계에서 지금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 일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지역주택조합’ 사업이다. 지난해 매출 상위 5개 발주처는 강화지역주택조합, 평택화양지구지역주택조합, 엘지로지역주택조합(평택진위), 내당3지구지역주택조합, 포스코이다. 이들이 차지한 매출액은 전체의 37%에 달한다.
건설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2012년께 지역주택조합 사업을 본격화한 서희건설은 주택경기가 회복기에 접어든 2015년 수주 규모를 대폭 확대하며 ‘지주택 업계 1위’ 건설사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 수주한 지주택 현장에 공사를 시작하며 그 결실을 보게 됐다. 2004년 국토교통부 시공능력평가 100위였던 서희건설은 2021년 23위, 올해 16위를 기록했다. 연결매출액은 2015년 1조원을 넘겼고 지난해에는 1조4736억원으로 1조5000억원에 육박했다.그러나 이 같은 명성이 기업 이미지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만은 아니다. 지역주택조합 공사는 대형사들이 이미지나 수익, 사업 리스크 등을 고려해 잘 수주하지 않는 틈새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잡음과 사업 리스크가 많다는 것이다.
지역주택조합은 주택법에 따라 무주택자나 전용면적 85㎡ 이하 1주택 소유자들이 결성할 수 있다. 노후화한 주택가 또는 아파트 단지의 기존 토지주들이 자기 땅에 새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는 재개발, 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과 달리 조합이 토지를 사들여 주택개발사업을 하는 방식이다. 일명 ‘원가 아파트’라고도 불리며 통상 인근 아파트 시세보다 저렴한 분양가격을 홍보해 조합원을 모집한다. 따라서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서민이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문제는 기존 토지주로부터 토지 매입이 어려운 경우가 대다수이며 인허가가 오래 걸려 조합원들의 예상보다 사업이 늘어지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조합원을 모집하는 등 조합 역할을 하는 업무 대행사가 조합 예산을 ‘눈먼 돈’으로 보고 비리를 저지르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이 과정에서 사업이 정체되거나 공사비와 금융비용이 늘면서 추가로 내야 할 분담금이 증가한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천신만고 끝에 뒤늦게 사업이 성공하더라도 조합원들이 입주할 때는 일반적인 아파트 분양가격과 맞먹는 돈을 내게 되는 일이 흔하다”고 설명했다. 국토교통부가 전국 618개 지역주택조합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조합원 모집 공고 후 3년 넘게 조합설립인가를 받지 못한 곳이 3분의 1인 33.6%에 달했다. 지역주택조합은 대지 80% 이상의 사용권원을 확보하고 대지 15% 이상 소유권을 확보해야 인가받을 수 있다. 조합운영 부실, 탈퇴 및 환불 지연, 공사비 인상 등으로 전국 조합의 30%는 분쟁을 겪고 있다.이처럼 분쟁이 생기면 그 화살은 시공사에 돌아간다. 조합원 모집 단계에서 조합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건설사가 ‘시공 예정사’라는 명목으로 홍보에 활용되는데 이로 인해 마치 건설사가 아파트 분양을 하거나 사업을 책임지는 것으로 오해하고 가입하는 조합원이 많다는 것이다. 서희건설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시행사는 주택을 지을 때 모든 공사의 책임을 맡아 전 과정을 관리·감독하는 주체”라며 “시공사는 시행사로부터 사업을 발주 받아 실제로 건축을 하는 회사로 서희건설도 지역주택조합 사업지의 시공사에 속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교회나 학교 공사는 수주하고 나서 헌금, 발전기금 등을 내야 하는 경우가 많고 교인, 재단 입김이 강해 까다롭다”며 “지역주택조합은 사업에 문제가 생기면 시공사에 화살이 돌아오는 구조로 서희건설이 힘든 사업을 계속 해온 것은 맞다”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정비사업처럼 지역주택조합에도 시공사에서 대여금이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서희건설 나름대로는 여러 문제가 있더라도 사업이 제대로 가도록 힘 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환경에서도 수익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하자, 편법 공사비 인상 등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불거졌다. 특히 ‘부실 공사’ 꼬리표는 계속 따라다녔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19대 국회의원이던 2014년 국정감사 당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아파트 가운데 가장 많은 하자발생 건수(3825건)를 낸 시공업체가 서희건설이라는 자료를 냈다. LH 발주 현장에서 임금체불도 59건, 13억7500원으로 1위였다.
서희건설은 8월 11일 공시를 통해 자사 송모 부사장이 13억7500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7월 31일 기소됐다고 밝혔다. 이것도 지역주택조합에서 발생했다. 경기 용인시 보평역 한 지역주택조합의 전 조합장 A 씨는 송 부사장에게 13억원대 뒷돈을 받은 뒤 공사비를 물가상승에 따른 인상액 142억원의 2배가 넘는 385억원으로 높여줬다. 한국거래소는 서희건설에 공시 요구(풍문 또는 보도)를 했고 서희건설이 확정 공시를 한 뒤 주식 거래를 정지시켰다.일각에선 이봉관 회장이 구속을 피하기 위해 자수서와 함께 김 여사에게 전달했다 반환 받은 목걸이를 제출하는 등 특검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각종 수사와 의혹을 벗어나더라도 서희건설의 앞날이 밝지는 않을 전망이다.
건설사 관계자는 “지역주택조합은 민원이 많은 사업으로 그동안 지자체 차원에서 전수조사와 제도 개선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바 있다”며 “대통령이 대놓고 문제를 제기한 만큼 제도가 대대적으로 개편되면서 지주택 사업이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