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사 추구미 무인양품,
IPO 직후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정체성 잃어
질적 성장 대신 외형 확장 택한 결과
대형 매장 늘리며 무리하게 제품군 확대
“무신사가 별 걸 다 팔아요.”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것은 무신사의 ‘다이소화’다. 지난해 10월 말 무신사가 론칭한 ‘무신사 스탠다드 홈’에서 세탁시트, 면봉, 홈스프레이 등 모든 것을 다 팔고 있다는 글이 관심을 받으면서 다이소와 비교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신사의 추구미(원하는 이미지)는 다이소가 아니다.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무인양품’이다. 두 곳 모두 무채색 컬러와 심플한 디자인을 내세운다. 특히 무신사가 무인양품처럼 다양한 카테고리로 사업을 확장하는 점도 닮아 있다.
그래서 무신사는 무인양품의 성장 스토리를 꼭 체크해 볼 필요가 있다. 무인양품은 기업공개(IPO) 직후 회사가 무너질 뻔한 위기를 겪었다. 상장 이후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기업 색을 잃어버린 결과였다. IPO를 준비하는 무신사가 이 과정까지 따라하지 않기 위해서는 ‘확장’과 ‘정체성’ 사이에서 제대로 길을 찾아야 한다.
◆ IPO 준비하는 무신사
국내 최대 패션 플랫폼으로 성장한 무신사가 IPO를 공식화했다. 지난 8월 18일 복수의 증권사를 대상으로 기업공개 주관사 선정과 관련한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했다.
무신사가 IPO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글로벌 진출을 위한 결정이다. 박준모 무신사 대표는 지난 6월 간담회에서 “글로벌 사업 자금 조달을 위해 IPO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상장 시점은 미정이다. 무신사 관계자는 “이제 RFP를 발송했을 뿐이며 주관사 선정도 아직 안 한 상태”라며 “상장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 여러 요인을 적절히 검토해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무신사 상장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업계에서는 지난해부터 무신사가 상장을 준비할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창업자 조만호 이사회 의장이 3년 만에 대표이사로 복귀하고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 적자를 내는 자회사 에스엘디티(SLDT)를 흡수합병하는 등의 움직임이 모두 상장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또 29CM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이구에디션(2024년 3월), 무신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무신사 스탠다드 홈(2024년 10월), 패션 브랜드 레스트앤레크레이션의 뷰티 브랜드 RR뷰티(2024년 10월), 17~21세 겨냥한 메이크업 브랜드 ‘위찌’(2025년 2월), 무신사 스탠다드 주얼리 라인(2025년 8월) 등을 신규 카테고리를 적극적으로 확대한 것도 상장을 앞두고 기업 규모를 키우기 위한 시도로 풀이됐다.
실적도 성장세다. 2023년 9931억원의 매출에도 8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지만 이듬해 1조2427억원의 매출과 102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당기순이익은 698억원이다.
증권가에서는 무신사의 기업가치가 최대 10조원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 IPO 이후 내리막길 걸었던 무인양품
문제는 글로벌 진출에 나서는 무신사가 IPO 이후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정체성을 잃고 조직 규모가 커지면서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의사결정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무신사의 비교 대상으로 꼽히는 일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무인양품 역시 같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무인양품은 1980년 일본의 종합슈퍼마켓 세이유의 PB(자체제작) 브랜드로 시작됐다. 상표가 없는(無印) 좋은 제품(良品)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첫 시작은 가정용품 9개, 식품 31개였다. 화장지, 포장랩, 티슈 등 슈퍼마켓에서 꾸준히 판매되는 제품을 PB로 만들었다. 고객 반응이 좋자 이듬해 의류를 판매하기 시작하고 이불·자전거·가방·잡화 등으로 카테고리를 확대하면서 기업 규모를 확장했다.
회사가 커지자 1989년 6월 30일 세이유에서 분사해 ‘양품계획(료힌케이카쿠)’을 설립했다. 무인양품의 성장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사업부를 떼어냈다.
1995년 8월 1일 일본증권업협회에 주식을 등록하고 1998년 12월 도쿄증권거래소 시장제2부에 상장했다. 이후 2000년 8월 시장제1부 종목으로 승격됐다.
문제는 이 시기 발생했다. 상장 이후 무인양품은 질적 성장 대신 외형 확장을 택했다. 글로벌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1991년 영국 런던에 첫 해외 매장을 오픈한 이후 1990년대 들어 홍콩, 싱가포르, 프랑스 등에 연이어 진출하면서 사세를 확장했다.
일본 현지에서는 2000년 ‘대규모 소매점포법(대점법)’ 폐지를 앞두고 글로벌 유통 기업들의 진출에 대비하기 위해 매장을 적극 확대했다. 1995년 미일구조협의에서 미국은 ‘대규모소매점포법’이 자국 대형마트 브랜드의 일본 진출을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이후 일본은 2000년 대점법을 폐지했다.
이 시기 무인양품은 대형 점포를 적극적으로 열었다. 1995년 평균 200㎡(약 60평) 수준의 매장 면적은 1999년 600㎡(약 180평)로 넓어졌다. 500개 미만이던 제품 수는 4000개 이상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1999년 무인양품이 판매한 총 제품은 4155개에 달했다.
적극적인 매장 확대에 따라 쓸데없는 제품을 늘려야 했고 품질과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하자 고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양품계획은 2001년 8월 반기 결산에서 38억 엔의 적자를 기록하며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연간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52.4% 줄어든 55억 엔(약 550억원)에 그쳤다. 당시 양품계획의 재무를 총괄한 아오키 마사오는 “일부 매장이 너무너무 컸다”며 “그 공간을 채우기 위해 과도하게 제품을 생산한 점이 패착이었다”고 밝혔다.
2000년 2월 1만7350엔(약 16만원)에 달했던 주가는 1년 만에 2750엔(약 2만6000원)으로 추락했다. 시가총액은 4900억 엔(4조6000억원)에서 770억 엔(73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1년 만에 4000억 엔에 달하는 기업가치가 증발했다.
당시 일본 언론에서는 ‘무인의 시대가 끝났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일본 애널리스트들은 “한번 떨어진 기업은 부활하기 어렵다”고 말하며 무인양품의 재기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평가했다. 양품계획은 2001년 실적 부진을 이유로 급하게 CEO를 교체했다. 사업부장 마쓰이 다다미쓰를 신임 사장으로 선임하고 품질 개선에 집중했다. 그 결과 양품계획은 1년 만에 무인양품을 흑자전환시켰다.
◆ 현지화·가성비 등으로 경쟁력 찾아야
무신사가 무인양품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현지화와 가성비 전략 등으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무인양품은 현지화를 하지 않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일본에서 판매하는 제품 위주로 해외 매장을 구성한다. 문제는 미국, 중국 등 현지 소비자의 특색이 강한 국가에서 이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20년 무인양품이 미국에서 파산 신청을 했을 때 포브스는 “이 회사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위기를 겪었다”며 “무인양품은 그들만의 브랜드 철학을 과하게 고집했다. 일본 소비자들은 품질 좋은 옷을 필요로 하겠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기능보다 미적인 측면을 더 중시한다”고 설명했다.
또 대다수 해외 시장에서 일본 대비 가격을 높게 책정해 판매한 것도 문제였다. 미니소, 노미 등 저가 유사 브랜드가 시장에 등장하자 경쟁력을 잃으며 소비자 이탈이 심화했다. 아크릴 수납함, 나무 선반 등 디자인 특색이 없는 제품이 대다수인 무인양품은 더 저렴한 유사 제품이 나오자 빠르게 대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