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분에 대한 관심 커지자 제약사까지 참전
전체 실적서 화장품 사업 비중 커지는 추세
동국제약, 대웅제약 등 앞다퉈 화장품 내놓아
더마코스메틱 시장, 매년 두자릿수 성장세
글로벌 ‘K뷰티’의 강세로 전통 화장품 기업들의 실적이 반등하는 가운데 국내에선 제약 성분을 내세운 신흥 브랜드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매년 실적이 성장을 거듭하더니 올해 들어 날개를 단 모양새다.
해외 약국 화장품(더마 코스메틱)의 유행부터 ‘화해’ 앱이 국내 1위 타이틀을 차지하기까지 ‘성분’에 주목하는 트렌드는 2000년대 이후 오랫동안 지속됐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제약사들이 화장품 시장에 적극 참전하면서 이 같은 흐름이 극대화하고 있다.
유명 제약사의 기술력으로 만든 성분이 제품에 포함됐다는 측면에서 차별화 포인트는 확실하다. 광고는 브랜드별 특화 성분과 함께 ‘고함량’, ‘기능성’, ‘○배 개선’ 등 효능, 효과를 강조한 문구로 채워진다. 병원이나 약국에서 판매하는 일반의약품처럼 투박한 듯 단순한 디자인은 오히려 콘셉트에 생명력을 더하며 소비자에게 매력으로 다가온다.전체 실적에서 화장품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높아지면서 제약사들은 판매 채널, 제품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포화상태인 전문의약품, 일반의약품 시장과 ‘한 방’이 터질 때까지 장기 투자가 필요한 신약개발에 비해 신규 사업이 가져다주는 결과물은 크고 확실하다.
약에서 출발…화장품에 헤리티지 담아
이 분야 대표 브랜드는 동국제약 센텔리안24의 ‘마데카크림’이다. 마데카크림, 뒤이은 마데카 앰플 제품의 선전에 힘입어 센텔리안24는 지난해 누적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올해 3월에는 마데카크림 누적 판매량이 7800만 개를 넘겼다.
이름에서 연상되듯 마데카크림은 동국제약의 일반·전문의약품 ‘마데카솔’의 병풀 추출물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마다카스카르가 원산지인 병풀(학명: 센텔라아시아티카)은 상처 치유, 항염, 진정, 보습, 재생 등 다양한 효과가 있다.
수십 년간 자체 발효공법을 통해 생산한 병풀 정량추출물(TECA)로 마데카솔 제품을 생산, 판매하던 동국제약은 2015년 센텔리안24 론칭과 함께 동일 성분을 함유한 화장품 마데카크림을 내놨다. 이 제품은 출시 첫해에만 100만여 개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며 센텔리안24가 시장에서 안착하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당시 국내 제약사들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사업 확장에 돌입했는데 그중 하나가 신약개발, 다른 하나가 뷰티·건강기능식품·의료기기 사업 확대였다. 신약개발은 장기 성장을 위한 투자 차원에서 이뤄졌다면 화장품 등 의약품 외 사업은 내수 제약시장의 과열 경쟁, 리베이트 수사 등으로 성장의 한계에 다다른 제약사들이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 택한 묘안이었다.
마데카크림 론칭 이듬해 출시된 ‘이지듀’도 당뇨발 전문 치료제인 ‘이지에프외용액’ 함유 성분을 담고 있다. 바로 대웅제약이 개발한 인체와 동일한 표피성장인자(EGF) DW-EGF이다. EGF는 상처가 생겼을 때 살갗을 덮어주고 콜라겐이 합성되고 혈관이 생성되는 등 피부 재생의 전 과정에 관여한다.
특히 대웅제약은 피부가 재생 기능을 하지 못하고 만성적으로 상처가 악화하는 당뇨병성족부궤양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이 성분의 개발에 매진해 결국 2001년 희귀의약품 이지에프외용액을 내놨고 이지듀에는 상처 부위가 아닌 정상 피부에 잘 흡수되는 나노리포좀 EGF 제형을 적용했다.
DW-EGF를 도입해 이지듀 제품의 생산 및 판매를 하고 있는 회사는 최초로 국내 시장에 보톡스와 필러를 도입한 디엔컴퍼니와 관계사 디엔코스메틱스이다. 디엔컴퍼니는 미국 앨러간이 국내 보톡스 유통권을 회수하자 새로운 돌파구로 이지듀를 택했다. 현재 이지듀의 병의원, 약국 판매는 디엔컴퍼니가, 일반 유통은 디엔코스메틱스가 맡고 있다.이 같은 더마 코스메틱(Dermocosmetic) 시장은 코로나19 확산 시기를 맞아 매년 15%씩 급성장했다. 소비자들이 마스크 착용으로 인한 트러블 문제를 겪기 시작했고 메이크업보다 기초화장품, 특히 피부진정 효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기존에 기술력과 브랜드 ‘헤리티지’를 보유한 제품이 대세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동화약품이 2021년 론칭한 ‘후시다인’도 그렇다. 후시다인 제품들은 마데카솔의 영원한 경쟁작 ‘후시딘’ 함유 성분 ‘후시디움 코키네움’을 발효한 독자 특허성분 ‘후시덤’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첫 제품인 후시드크림을 필두로 무기자외선차단 선크림, 더마 트러블 라인 등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크림에서 앰플·쿠션까지, ‘공홈’ 매출도 증가
그러나 화장품 기업만 수만 개에 달하는 시장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제품 및 판매 채널 다양화에 힘써야 한다. 더마코스메틱 브랜드들은 점차 기능성 제품 라인을 늘리는 한편 홈쇼핑과 올리브영 입점에서부터 온라인 마켓으로 판매 채널을 확대했다.제품마다 패키지나 판매 방식도 다르다. 저자극, 기능성 크림 제품은 연고나 병의원 판매용 로션 패키지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이 대부분이다. 후시드크림은 후시딘 연고를 연상시키는 모양에 부채표 동화약품 로고가 그려져 있는 튜브형으로 나온다. 이 같은 크림 제품은 고용량, 기능에 집중하는 만큼 일반 화장품처럼 대용량 패키지가 드물다. 이 때문에 일명 ‘쟁여템’ 형식으로 여러 개를 묶어 할인 판매하는 사례가 흔하다.
충분히 유명세를 얻은 브랜드의 경우 네이버 스토어 등 자체 온라인 채널을 통한 판매 실적도 좋은 편이다.동국제약 관계자는 “마데카크림은 57년간 식물성 원료의 연구개발을 진행해 온 동국제약 센텔리안24의 대표제품인 만큼 그 헤리티지를 담기 위해 디자인되었다”며 “온라인과 오프라인 판매 비중은 밝힐 수 없지만 최근 공식 홈페이지와 네이버 스토어 매출도 꽤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통상 크림 다음으로는 마찬가지로 기능성 화장품의 대표 주자인 앰플 또는 에센스형 제품이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지듀는 EGF 기미앰플이 대표 제품인데 저용량 제품(1~8mL)은 주사기와 비슷한 형태의 패키지에 담겨 있다.
이지듀는 지난해 신규 출시한 기미 쿠션(멜라 비 토닝 기미 앰플 쿠션)과 대표 제품인 기미앰플을 앞세워 실적 견인에 힘쓰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마케팅 강화에 힘입어 성장하던 이지듀는 지난해 말 배우 한가인을 모델로 채택해 기미 쿠션 광고 캠페인을 시작하는 등 메이크업 제품 시장에도 본격 진출하며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 기미 쿠션의 누적 매출액은 이미 400억원을 넘겼고 이에 힘입어 올해 7월 이지듀 매출은 1000억원을 돌파해 지난해 동기 대비 200% 성장을 기록했다.
후발주자인 동화약품은 이미 LG생활건강과 종근당에서 실적을 증명한 마케팅·유통 전문가를 영입했다. 조영한 신임 생활건강본부장은 종근당건강에서 기능성 화장품 브랜드 ‘클리덤’을 다이소에, ‘CKD 개런티드’를 올리브영에 입점시켜 실적 성장을 도왔다. 두 브랜드 제품 중에서는 저분자 콜라겐 성분 제품이 인기다. 특히 모델 한혜진이 선전하는 CKD 개런티드 제품에는 종근당건강 특허 기술인 플렉시블 리포솜(Flexible Liposome)이 적용됐다.동화약품 관계자는 “조 본부장 선임은 화장품뿐 아니라 건기식 등 앞으로 확대 계획이 있는 생활건강사업의 전반적인 성장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흐름의 원인으로는 이미 관련 기술과 생산 노하우를 보유한 제약사 입장에서 진입 장벽이 낮은 화장품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한데 따른 것이다. 정부의 약가 인하 움직임으로 의약품 판매만으로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는 가운데 연구개발(R&D)에 투입돼야 할 재원 마련이 필요하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신약 연구에만 최소 5~10년가량 투자가 필요한데 성공 가능성은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국내에서는 큰 제약회사라 하더라도 빅파마만큼의 규모와 투자재원이 없는 이상 화장품이나 건기식 사업을 통해 실적을 안정화하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분산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