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사주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무시하는 대표적 사례다.”(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자사주 의무 소각은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할 수 없다.”(한국상장회사협의회)
자사주를 둘러싼 논쟁은 ‘국제 기준’을 두고도 정반대의 해석으로 맞선다. 선진국은 자사주 매입 시 곧바로 소각해 사실상 의무화된 관행이 자리 잡았다는 주장과 법으로 소각을 강제한 사례는 없다는 제도적 현실을 근거로 반론이 맞서고 있다.
김남근 의원이 7월 9일 발의한 상법 개정안의 배경은 ‘글로벌 스탠더드’다. 그는 2011년 이명박 정부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제도 개선’이라는 명분으로 자사주 취득을 폭넓게 허용하면서 소각 의무를 없앴지만 , 실제로는 국제 기준과 다르다고 지적했다.그는 선진국에서 자사주가 장부에 오래 남지 않는 점을 들었다. 예컨대 미국 모범회사법과 캘리포니아 회사법은 자사주를 ‘발행되지 않은 주식’으로 간주한다. 매입하면 곧바로 유통주식 수에서 제외돼 소각 효과가 난다. 기업의 금고 안에 들어갔으니 유통주식 수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독일도 자사주가 자본금의 10%를 넘으면 3년 안에 소각해야 한다. 일본 역시 이사회 결의만으로 손쉽게 소각할 수 있고 매입 목적을 반드시 공시하게 해 자사주가 장부에 쌓여 있는 경우가 드물다.
반면 한국은 발행주식 수 기준으로 시가총액을 계산한다. 자사주를 매입해도 발행주식 수 자체가 줄지 않아 유통주식 수 감소 효과가 시장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시장에 주식은 없지만 금고 안에는 발행된 주식이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사주가 쌓여도 주당 가치가 바로 오르지 않고 오히려 경영권 방어에 쓰이는 경우가 많다.기업거버넌스포럼은 “2000년 이후 한국 증시는 자사주 소각 부족으로 주식 수가 매년 4%씩 늘었지만 미국은 꾸준한 소각으로 주식 수가 안정돼 장기 수익률에서도 격차가 났다”고 지적한다.
미국 연 12.5% 대 한국 4.6%.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요인으로 자사주를 꼽는 이유다.
반면, 자사주 의무 소각 법제화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법제도의 잣대로 본다. 미국·영국·독일·일본 어디에도 자사주 소각을 법으로 의무화한 사례는 없다는 것이다.
앞서 김 의원이 예시로 든 미국도 주별로 차이가 있다. 델라웨어·뉴욕 등 12개 주는 자사주 보유를 허용하되 자사주에는 배당권·의결권 등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나머지 38개 주는 자사주 취득 시 곧바로 소각된 것으로 본다. 즉 관행상 소각 효과가 나기 때문에 굳이 법으로 강제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영국은 자사주 보유 자체는 인정하지만 불법 취득분만 소각을 강제한다. 일본도 보유를 허용하되 자사주에 권리를 주지 않는다. 합병 시 신주 배정도 불가능해 한국처럼 ‘자사주 마법’ 논란이 생기지 않는다.
결국 국제적으로는 자사주를 장부에 둘 수는 있지만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 기준이지, 법으로 소각을 강제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반대 측은 한국의 제도적 현실도 문제 삼는다. 한국은 경영권 방어 장치가 사실상 자사주 외엔 거의 없다. 미국·일본은 포이즌필, 황금주, 차등의결권 같은 다양한 장치를 두고 있지만 한국은 자사주 의무 소각을 도입하면 오히려 방어 수단이 더 취약해져 해외 기업과 비교해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양측이 같은 해외 사례를 두고도 다르게 해석하는 이유는 기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상 발행주식 수를 기준으로 시총을 계산하는 한국과, 유통주식 수를 기준으로 소각 효과가 자동 반영되는 선진국의 차이에서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이 같은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1월 금융위원회는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에 자사주를 뺀 시가총액 정보를 정기보고서를 기준으로 분기별로 업데이트해 투자자에게 제공하게 하는 조치도 도입했다.
그러나 여전히 발행주식 수 기준이 널리 인용돼 큰 실효성이 없다. 이에 자사주 매입과 동시에 시가총액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남우 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자사주는 주식이 아닌 만큼 자사주를 소각까지 가지 않더라도 매입하는 순간 시총과 상장주식 수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행주식수
수권주식 중 실제로 발행된 주식의 수.
유통주식수와 자기주식수를 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