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400달러 웃돌던 주가,
꾸준히 하락하며 200달러 밑으로 추락
연간 전망도 부정적
룰루레몬 "새로운 트렌드 창출 기회 놓쳐"
27년 전 기능성 요가 바지가 등장했다. ‘일상에서 사용하기 어려울 만큼 낡은 옷’이 운동복으로 활용되던 시절이었다. 1998년 운동선수 출신의 칩 윌슨은 ‘룰루레몬’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땀 흡수가 빠른 소재를 활용한 게 그 시작이었다. 면 소재의 요가복이 대다수이던 시절 룰루레몬은 등장 자체로 혁신이었다.
여기에 스타일까지 더해지자 2000년대 들어 젊은 여성들은 청바지보다 요가복을 더 찾기 시작했다. 룰루레몬은 애슬레저(일상복으로 활용 가능한 운동복) 트렌드를 주도했으며 북미 지역을 ‘요가복의 나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에서는 ‘요가복계의 샤넬’로 유명하다. 고급화 전략, 고품질과 기술력, 높은 충성도 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룰루레몬이 최근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올해 초 400달러를 돌파했던 주가는 최근 16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분기 실적 악화에 연간 전망도 부정적인 탓이다. 회사 측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 200달러도 무너졌다…흔들리는 ‘요가복 제왕’
전 세계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요가복 브랜드 룰루레몬의 주가가 하락세다. 9월 26일 종가는 176.30달러를 기록했다. 한달 전과 비교하면 25.90포인트(12.81%) 떨어졌다.
올 들어 룰루레몬의 주가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1월 400달러대에서 거래됐으나 2월 들어 300달러 선으로 내려왔고 4월에는 200달러 선까지 추락했다. 소폭 회복하며 6월 300달러대로 올랐지만 얼마 가지 않아 하락이 시작됐고 최근까지도 이 추세가 유지되고 있다.
룰루레몬의 주가는 올해 초 대비 57.0% 이상 떨어지며 2019년 2월 수준으로 회귀했다. 2020년부터 등락을 반복했지만 200달러 밑으로 내려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실적의 여파다. 9월 4일 룰루레몬은 2025 회계연도 2분기에 매출 25억2522만 달러, 영업이익 5억2381만 달러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6.5%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3.0% 감소했다. 매장을 방문한 고객 수는 전년 대비 8.5% 감소했다.
반기 기준으로도 상황은 비슷하다. 매출은 지난해 상반기 45억7997만 달러에서 올해 상반기 48억9588만 달러로 6.9%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9억7287만 달러에서 9억6244만 달러로 1.0% 줄었다.
캘빈 맥도널드 룰루레몬 최고경영자(CEO)는 “2분기에도 해외에서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모멘텀을 이어가고 있지만 미국 사업 실적과 일부 제품이 실망스러웠다”며 “실적 부진의 원인을 면밀히 분석해 상품 구성을 강화하고 사업 성장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계속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간 전망도 부정적이다. 올해 매출 전망치에서 2억4000만 달러가 추가로 감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 수입품에 대한 높은 수준의 관세가 적용된 영향이다. 공급업체 간 경쟁을 통해 마진을 확대하고 가격을 인상하는 등 여러 선택지를 고려하겠지만 효과가 없을 경우 이 추정치보다 더 악화할 수 있다고도 전했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룰루레몬 목표 주가를 낮추고 있다. 핵심 지역인 미국에서 성장이 둔화되고 있으며 신생 브랜드 증가로 인한 경쟁 심화, 신제품 혁신 부족 등을 이유로 꼽았다. 특히 룰루레몬이 변화하는 소비자 트렌드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 ‘전문성’에 대한 고집, ‘스타일’에 밀렸다
룰루레몬의 성장 둔화 요인은 △흥미롭지 않은 디자인 △트렌드 대응 실패 △애슬레저 시장 경쟁 심화 등이다.
가장 큰 문제는 ‘단순한 디자인’이다. 룰루레몬은 디자인보다 성능에 집중한다는 특징이 있다. 인플루언서가 아닌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같은 운동선수를 캠페인 모델 등으로 활용하는 것도 원단과 기술력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이다.
2010년대에는 성능 위주의 전략이 통했으나 2007년 설립된 미국 애슬레저 브랜드 알로(alo)의 급부상 이후 디자인에 대한 불만이 많아졌다. 실제 알로는 코르셋 재킷, 가터벨트(하의가 흘러내리지 않게 잡아주는 도구)가 부착된 상의 등 운동에 필요하지 않은 디자인을 첨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요가복을 통해서도 개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알로의 전략이다.
알로는 요가복이 일상에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힘을 발휘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모델, 팝스타, 운동선수 등 모두가 알로의 세련된 운동복을 입고 있다”며 “알로가 룰루레몬을 제쳤고 알로의 팬들은 룰루레몬과 나이키에 맞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알로는 ‘유명인이 사랑하는 요가복’으로 통한다.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 모델 켄달제너·벨라 하디드 등이 자주 입는 브랜드로 통한다.
룰루레몬도 이를 인정했다. 맥도널드 CEO는 “우리의 캐주얼 의류 제품은 너무 예측 가능한 스타일로 나와 새로운 트렌드를 창출할 기회를 놓쳤다”며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는데 우리의 제품은 고객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트렌드 대응도 느리다. 룰루레몬은 새로운 제품의 출시보다 오랜기간 잘 팔린 제품에만 주력해왔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룰루레몬이 ‘트렌드 주류에서 밀려난 지 오래’라는 평가가 나온다. 회사는 2026년까지 디자인팀을 주축으로 신제품 출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전체 상품군에서 새로운 스타일의 비중을 23%에서 35%로 늘릴 계획이다. 맥도널드 CEO는 “돌이켜보니 우리는 일부 카테고리에서 너무 오랜 기간 특정 상품에 의존해왔다”며 “시장 환경은 2~3년 전과 비교하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경기침체, 관세 인상, 경쟁 심화 등도 룰루레몬에 부정적이다. 맥도널드 CEO는 “미국 프리미엄 스포츠웨어 시장은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2분기에도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소비자들은 전반적으로 의류 지출을 줄이고 있으며 기능성 액티브웨어 지출 역시 줄이고 있다. 구매 선택도 신중해지고 있으며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하는 경향도 생겨났다”고 말했다.
룰루레몬은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있다. 룰루레몬은 2022년 5개년 성장 계획을 발표한 뒤 신발, 액세서리, 골프복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했다. 문제는 이런 전략이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제프리스는 “룰루레몬이 요가복 외에도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갭(Gap)과 같은 대중 브랜드로 변모하는데 이런 변화가 회사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충성도 높은 고객의 이탈이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