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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차전지 열풍은 폭발적이었다. 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을 묶은 ‘BBIG’는 장기 성장주로 각광받으며 ETF는 물론 퇴직연금 자금까지 빨아들였다. 그러나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중국의 공습에 2차전지 업종은 급격히 흔들렸다. ‘시장의 주도주’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월가의 투자 거장 리처드 번스타인은 “순환 장세의 주도주를 잡으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주도주의 생명력을 가늠하기란 전문가조차 쉽지 않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역사다. 한국 증시의 주도주는 최근 20년간 평균 2~5년 주기로 교체돼 왔다. 산업 업황 사이클과 이익 전망 변화가 주된 요인이었지만 그 배경에는 경제 상황, 정부 정책, 수급, 투자자 심리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1990년대

한전의 독주와 삼전의 용트림

1990년대 한국증시

1990년대 한국 증시는 공기업의 독무대였다. 1988년 포스코가 상장하고 1989년 한국전력이 재상장하면서 증시의 중심은 증권주에서 전자와 통신으로 이동했다. 1994년 한전의 시가총액은 무려 16조5000억원에 달해 2위 포스코의 세 배 가까이 됐다. “증시의 제왕은 삼성전자가 아니라 한전”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선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가 조용히 준비되고 있었다. 1992년은 특히 상징적인 해였다. 외국인에게 자본시장이 본격적으로 개방되며 증시가 한 단계 도약했고 그해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했다. 1983년 64K D램 개발로 불씨를 지핀 반도체 산업이 드디어 한국의 주력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 증시에서 IT 섹터의 순이익 비중은 7.6%에 불과했으나 1994년과 1995년에는 각각 21.8%, 40.1%로 급증했다.

 

이동통신 보급 확대는 또 다른 성장동력이었다. 1991년 가입자 수가 100만 명을 돌파했고 1994년 한국이동통신(훗날 SK텔레콤)이 민영화됐다. 1996년에는 세계 최초로 CDMA 상용화를 이끌며 통신이 주도 섹터로 떠올랐다. 통신주의 평균 PER은 1994~98년 28배를 웃돌았고 1999년에는 무려 367배까지 치솟았다. IT 버블, 인터넷 기업 상장이 더해진 과열의 결과였다. 하지만 산업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외환위기는 이런 흐름에 결정적 시험대였다. 30대 그룹의 평균 부채비율이 500%를 넘어서며 대기업 줄도산이 이어졌다. 문어발식 확장은 종말을 맞고 선택과 집중 전략이 새 경영의 키워드가 됐다. 삼성전자는 이 국면에서 반도체를 발판 삼아 비상했다. IT 활황이 뒷받침되면서 2000년부터 시가총액 1위 자리에 올라섰다. ‘제왕’의 시작이었다.

 

2000년대

IT의 부상과 ‘굴뚝 없는 나라’ 중국

 

2000년대는 IT가 명실상부 한국의 주력 산업으로 올라선 시기였다. 삼성전자는 부동의 시가총액 1위 자리를 차지하며 한국 증시의 대표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삼성전자가 2011년 1월 28일 주당 100만원을 웃도는 '황제주(株)'에 이름을 올렸다.
삼성전자가 2011년 1월 28일 주당 100만원을 웃도는 '황제주(株)'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화려한 ‘밀레니엄’의 시작만큼 그림자도 짙었다. IT 버블 붕괴 여파로 국내 증시는 4년 넘게 긴 정체기를 겪었다. 1999년 대우그룹의 41조원 규모 분식회계 사태는 대기업 구조조정과 금융권 부실로 이어졌다. 도미노 대란이자 한국 경제의 뼈아픈 상처였다. 내수 부양을 위해 신용카드 발급을 남발한 결과 2002년에는 ‘카드 대란’이 터졌다. 그사이 코스피는 500~900선 박스권에 갇혔다. 위기를 견딘 대기업 우량주의 위상만이 더욱 단단해졌다.

 

2000년대 중반부터 반전이 시작됐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르며 연평균 10% 성장률을 기록했다. 1인당 GDP는 1999년 873달러에서 2009년 3832달러로 네 배 이상 뛰었다. 산업 구조도 경공업 중심에서 중화학공업으로 빠르게 고도화됐다. 한국은 지리적 이점과 축적된 산업 경쟁력을 발판 삼아 소재·산업재에서 직접적인 수혜를 입었다. 경기민감주들이 시가총액 상위권으로 올라섰고 통신주는 3G 상용화 이후 힘을 잃었다.중국 특수를 업고 증시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주식형 펀드 열풍이 불면서 시중 자금이 증시로 흘러들었다. 코스피는 2007년 7월 마침내 2000선을 돌파했다. 마지막 축제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덮쳤다. 금융 시스템 리스크가 실물 경제로 전이되며 한국에도 충격이 덮쳤다. 초저금리와 양적완화의 시대가 열렸고 중국은 유럽 등 선진국이 주저앉는 사이 ‘G2’로 도약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 한국은 2010년대 중반까지 중국발 성장의 그늘 아래서 수혜를 누렸다. 자동차 업종은 미국 빅3의 몰락기를 틈타 경쟁력을 키웠고 2007년 등장한 ‘아이폰’은 피처폰 일색이던 모바일 시장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이 혁신이 곧 2010년대 모바일 시대의 신호탄이 됐다.

 

2010년대 전반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 시대

2010년대 전반 주식시장

2010년대 전반 한국 증시는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으로 막을 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던 시점, 자동차는 수출 회복을 견인했고 화학·정유는 원자재 사이클과 맞물리며 증시의 맨 앞에 섰다. 현대차, 현대모비스, 기아가 시총 톱5에 올랐다.

 

호황은 길지 않았다. 금융위기의 후폭풍이 채 가시기도 전에 유로존 위기가 터졌고 한국 경제는 ‘반도체 겨울’에 구조적 저성장의 터널에 들어섰다. 산업별 호황 주기가 짧아지면서 주도주도 빠르게 바뀌었다. 자동차만이 꾸준히 경쟁력을 유지했을 뿐이다. 코스피는 1800~2000선에서 5년간 박스권에 갇혔다.

 

2012년 이후 경기민감주가 숨을 고르자 투자자들의 시선은 새로운 테마로 향했다. 여행·레저, 면세점, 화장품, 엔터 등 중국 소비 관련 종목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을 넘어 ‘세계의 소비시장’으로 변신하면서 한국 기업들도 수혜를 입었다. 롯데쇼핑,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이 시총 상위권에 빠르게 올라왔다. 특히 아모레퍼시픽은 ‘황제주’로 이름을 올렸다.글로벌 IT 기업들은 치열한 모바일 플랫폼 선점 경쟁을 벌였다. 스마트폰이 성장 엔진으로 부상했지만 국내 메모리 반도체 업계는 치킨게임 후유증에 시달리며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 변곡점은 2013년이었다. 마이크론이 엘피다 인수를 마무리하면서 치킨게임이 종식됐고 SK하이닉스와 네이버가 시가총액 톱10에 진입했다.

 

한국 바이오 산업도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 ‘램시마’로 2013년 9월 유럽 판매 승인을 획득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고 한미약품은 2015년 빅파머들과 연이어 계약을 따내며 잭팟을 터뜨렸다. 미래 주도주가 숨을 고르며 발판을 다지던 시기였다.

 

2010년대 후반

알파고와 반도체의 봄

2010년대 후반 주식시장

하지만 ‘차화정’ 호황도 영원하지 않았다. 2016년 사드(THAAD) 사태로 중국 소비주가 직격탄을 맞았고 글로벌 경기 둔화로 자동차·정유 업종도 부진에 빠졌다. ‘차화정’의 황금기는 약 5년 남짓으로 끝났다. 이 자리를 채운 게 지금은 잊힌 AI 시초 ‘알파고’다.4차 산업혁명이란 거대한 물결이 세계 산업 지형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산업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됐다. ICT 융합은 기존 제조업을 대체할 새로운 성장동력을 키워냈다.

 

반도체는 산업 사이클 회복이 4차 산업혁명의 흐름과 맞물리며 슈퍼호황을 맞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나란히 시총 1·2위를 차지했고 두 기업의 합산 시가총액이 국내 증시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였다. 미국 기술주의 서버·데이터센터 투자 증가와 스마트폰 고스펙화는 메모리 반도체 수요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 반도체 호황은 2년 동안 국내 증시를 주도하며 지수의 상승 추세를 이끌었다.바이오 산업은 더 이상 막연한 기대의 영역에 머물지 않았다. 2015년 한미약품의 기술 수출은 바이오 섹터가 실체를 갖춘 산업으로 부상하는 계기였다. 이후 셀트리온이 2017년 시총 7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8년 시총 4위로 뛰어오르며 국내 증시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전통 제조업이 중국발 공급과잉 충격으로 주도권을 상실한 자리를 바이오가 채운 것이다.

 

그러나 활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6년 출범한 트럼프 1기의 ‘미국 우선주의’는 미·중 무역분쟁으로 이어졌다. 패권 경쟁은 단순한 관세 충돌을 넘어 기술 지배권을 둘러싼 대결로 번졌다. 시장은 1년 반 동안 무역분쟁의 충격에 흔들렸고 일각에서는 ‘경제 위기 10년 주기설’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2020~2022

코로나 버블과 언택트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 증시에 전례 없는 충격을 던졌다. 동시에 새로운 주도주를 탄생시켰다. 일상의 중심이 비대면으로 옮겨가면서 플랫폼 기업과 바이오 산업이 가장 큰 수혜를 입었다.

 

이 시기 증시는 ‘코로나 버블’이라 불릴 만큼 뜨겁게 달아올랐다. 2021년 코스피는 사상 처음으로 3300선을 돌파했고 동학개미운동으로 수백만 개인투자자가 시장에 유입됐다. 증시를 이끈 주역은 ‘BBIG(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이었다. LG화학과 삼성SDI는 전기차 배터리 글로벌 1위 경쟁자로 올라섰고 네이버·카카오는 플랫폼 성장주로 각광받았다. 엔씨소프트와 넷마블 등 게임주는 언택트 소비 확대의 최대 수혜주였다.

2020~2022
코로나 버블과 언택트

‘BBIG 7’으로 불린 대표 종목들은 2020년 평균 영업이익 증가율이 74%에 달했고 평균 PER 60배, PBR 6배에 이를 정도로 고평가됐다. 합산 시가총액은 256조원으로 KOSPI의 16.8%까지 치솟았다. 특히 테슬라가 쏘아 올린 전기차 물결이 2차전지 관련주를 밀어올렸다. ‘황제주’가 된 에코프로도 후보 중 하나였다.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2022년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 중국발 공급과잉, 성장성 둔화가 겹치면서 버블은 빠르게 꺼졌다. BBIG 주도주의 퇴조는 한국 증시에 씻기 힘든 충격을 남겼다.

 

2024~

정책 드라이브, 지금조방원

2차전지 열풍이 남긴 상흔을 덮은 것은 ‘조방원’의 약진이었다. 반도체 일극 체제였던 한국 증시에 글로벌 지정학 리스크와 에너지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겹치며 조방원은 새로운 주도 테마로 부상했다.조선은 친환경 선박과 LNG 운반선 발주 급증으로 슈퍼사이클을 열었고 방산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변수에 힘입어 초강세를 이어갔다. 한화오션, HD현대중공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은 밸류 부담에도 불구하고 연이어 신고가를 새로 썼다. 전문가들은 “국가전략산업으로 격상된 만큼 구조적 실적 개선이 가능하다”며 조방원을 단기 테마가 아닌 장기 성장축으로 평가했다.

시대별 한국주식 대장주

2025년 무대의 주인공은 ‘지금조방원(지주회사·금융·조선·방산·원자력)’과 ‘ABCDE(AI·바이오·콘텐츠·방산·에너지)’다. 팬데믹 저점(2020년 3월 1457pt) 이후 코스피를 3300선까지 밀어 올렸던 2021년 랠리가 유동성과 펀더멘털 개선의 결합이었다면 2025년의 상승장은 정책 드라이브와 거버넌스 개혁이 이끄는 랠리라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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