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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제련소 현장을 둘러보는 모습.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제련소 현장을 둘러보는 모습.

 

“나는 혁신이나 개혁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늦은 것이다. 매일매일 조금씩 발전해 나가면 한꺼번에 큰일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 개혁보다는 변화가 중요하다.”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지난 2014년 고려아연 창립 40주년에 임직원들에게 전달한 메시지다.

 

6일 별세한 최 명예회장이 고려아연을 세계 최고의 비철금속 기업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은 그가 스스로 밝혔듯 혁신이나 개혁 같은 큰 변화가 아닌 하루하루의 꾸준함과 성실함의 결과였다는 의미다.

 

최 명예회장은 1941년 황해도에서 고(故) 최기호 창업주의 6남 3녀 가운데 3남으로 태어났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MBA를 마쳤다. 그는 최기호 창업주로부터 물려받은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과감한 투자, 기본에 충실한 경영 철학으로 고려아연을 독보적인 위치에 올려놓은 주역이다.

온산제련소에서 현장 경영 중인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온산제련소에서 현장 경영 중인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온산제련소 준공 모습.
온산제련소 준공 모습.

 

자원 빈국에서 세계 1위로…'불가능을 현실로'

최 명예회장은 자원 빈국이던 한국에서 아연 제련이라는 산업의 불씨를 지폈다. 1974년 그는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에 따라 고려아연 창립을 주도했고, 제련소 부지 선정부터 자금 조달, 기술 도입까지 전 과정을 진두지휘했다.

 

당시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따라 제련사업을 맡게 됐지만, 국내엔 기술도 경험도 없던 시절이었다. 세계은행 산하 금융기구인 국제금융공사(IFC)로부터 투자와 차관 도입 협정을 이끌어 고려아연의 성장 기틀을 마련했다. IFC가 "7000만 달러(당시 약 700억원)는 필요하다"고 했을 때, 그는 "5000만 달러면 충분하다"고 설득했고, 끝내 4500만 달러로 온산제련소를 완공했다.

 

최 명예회장은 기술도, 경험도 없던 시대에 세계 최고를 꿈꿨다. 단기 수익보다 장기 경쟁력을 중시했고, 최신 기술을 아낌없이 도입했다. 제련공정에 DRS 공법을 적용하고, 아연괴를 국제시장에서 통용되는 LME 제품으로 만들었다.1990년 기업공개를 추진, 투명경영 실현과 국민적 기업으로 도약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1983년 영풍정밀, 1984년 서린상사, 1987년 코리아니켈 등 계열사를 설립해 그룹의 기반을 확대하고 사업간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다.

 

1992년 3월 회장 취임 이후에도 '원칙에 어긋나는 것은 하지 말고 기본에 충실하자'라는 경영 철학대로 아연공장 및 연 제련 공장을 계속 증설해 나갔고, 호주에 아연제련소 SMC를 설립하며 글로벌 사업 기반도 확대했다.

호주 선메탈(SMC)을 방문한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호주 선메탈(SMC)을 방문한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세계 TC 벤치마크가 고려아연, 시장 질서도 이끌다

 

최 명예회장은 신중에 신중을 더하는 성격이었지만,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과감한 투자와 모험, 끈질긴 노력으로 반드시 결과를 끌어내는 승부사 기질을 가진 경영인이었다. 비철금속 세계 1위를 견인한 퓨머와 DRS공법, 친환경 제련소의 모범이 되는 호주 SMC 등은 이런 최 명예회장의 뚝심이 빚어낸 결과였다.

 

최 명예회장은 제련산업을 공해산업이 아닌 친환경사업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을 꾸준히 펼쳐 나가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과 녹색경영을 실현하는 데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아연 잔재를 환경친화적인 청정슬래그 형태로 만들어 시멘트 원료로 판매하는 등 아연 잔재 재처리 기술을 상용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기술로 고려아연은 전 세계 아연 제련소들의 공통적인 고민이었던 아연 잔재를 친환경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세계적인 회사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최 명예회장의 지속적인 투자와 기술 개발의 결과는 창업 초기와 경영 성과를 비교해 보면 아연 생산 능력은 연 5만톤에서 65만톤, 매출액은 114억에서 12조원 수준까지 늘어났다. 회사 가치의 척도인 시가총액도 최대 20조원에 육박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이뤘다.그의 뚝심은 국내 산업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고려아연이 광산업체들과 매년 협상하는 제련 수수료(TC)는 현재 전 세계 아연 제련시장의 기준이 되고 있다.

 

고려아연이 맺은 계약 조건은 글로벌 벤치마크로 기능하며, 세계 가격 결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생산량뿐 아니라, 시장 질서를 움직이는 영향력까지 갖춘 기업으로 우뚝 선 배경에는, 창업주의 흔들림 없는 원칙과 안목이 있었다.

1974년 8월 1일 고려아연 창립 기념식(앞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 최기호 창업자, 왼쪽에서 세 번째 최창걸 명예회장).
1974년 8월 1일 고려아연 창립 기념식(앞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 최기호 창업자, 왼쪽에서 세 번째 최창걸 명예회장).

 

"손에 쥔 재산은 믿지 마라" 경영철학이 된 故 최기호 가르침

최 명예회장은 아버지인 최기호 창업주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최기호 창업주는 6.25 전쟁 당시 모든 재산을 잃고 남한으로 내려왔고, "재산은 잃을 수 있지만, 머리에 든 것은 절대 잃지 않는다"며 최 명예회장에게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 가르침은 투명경영, 기술 중심 성장, 인재 존중이라는 최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으로 이어졌다.

 

최 명예회장의 경영은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믿음 아래 노사 간 신뢰를 바탕으로 38년 무분규, 102분기 연속 흑자라는 기록을 남겼고, IMF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속에서도 구조조정 없이 회사를 지켰다. 그는 늘 "고려아연은 특정인의 회사가 아니라 임직원 모두의 것"이라며, 함께 성장하는 기업을 꿈꿨다.

 

기부와 나눔도 그의 경영의 연장이었다. 그는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마음으로 아동복지, 장학사업, 사회공헌에 앞장섰다. 전 임직원의 급여 1% 기부 운동도 직접 이끌었다.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의 회원인 최 명예회장은 이후 부인인 유중근 경원 문화재단 이사장과 아들인 최윤범 회장이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하며, '패밀리 아너'로 기록됐다. 이런 사회 공헌 활동의 공을 인정받아 최 명예회장은 2013년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에서 '국민훈장 동백상'을 수상했다.

고려아연 제51주년 창립기념식에서 최윤범 회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고려아연 제51주년 창립기념식에서 최윤범 회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9월 28~29일 이틀 간의 일정으로 울산 온산제련소를 방문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게르마늄 공장 신설 준비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9월 28~29일 이틀 간의 일정으로 울산 온산제련소를 방문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게르마늄 공장 신설 준비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최윤범, 친환경 소재·전략 광물 공급 기업으로 '미래 50' 준비

현재 고려아연을 이끄는 3세 경영인 최윤범 회장은 고인의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회사를 또 다른 도약의 시대로 이끌고 있다. 그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철학을 실천하며 온산제련소와 해외 현장을 두루 거친 뒤, 미래 성장 전략을 주도하고 있다.

 

최 회장 취임 이후 고려아연은 '비철금속 강자'에서 친환경 소재·전략 광물 공급 기업으로 체질을 바꾸며 새로운 50년을 준비 중이다. 신재생 에너지, 2차전지 소재, 자원순환을 3대 성장축으로 삼은 '트로이카 드라이브' 전략은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최근 미국과의 전략 광물 협력, 게르마늄·안티모니 등 공급 확대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 내 위상이 커지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8월 1일 고려아연 창립 51주년 기념사를 통해 지난해 적대적 M&A 사태를 겪으면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며 포기하지 않았던 경험을 공유하며 앞으로도 공동체로서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자는 의지를 다졌다. 어떤 외풍 속에서도 고려아연이 지향하는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회장은 "지난 11개월의 태풍을 견뎌내는 동안에 우리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포기하지 않고 멈추지 않았다" "파도는 계속 치겠지만, 우리의 목표를 잊지 않고 서로를 나침반 삼아 단결한다면 고려아연은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있다"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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