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는 한국을 대표하는 플랫폼 기업으로 검색과 광고, 커머스에서 여전히 견조한 실적을 내고 있다. 그러나 안정적인 성과가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 포털과 커머스라는 전통적인 성장축은 이미 한계에 이르렀고 인공지능이나 글로벌 확장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야 여전히 절대 강자로 군림하지만 글로벌 경쟁 무대에서는 존재감이 미미하다. 네이버는 새로운 성장 스토리가 절실한 상황이다.
반대로 두나무는 다르다. 업비트라는 거래소는 이미 글로벌 톱티어 거래량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입증했다. 한국에서 ‘김치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성장한 한계를 넘어 글로벌 현물 거래량에서도 코인베이스를 위협할 정도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그러나 두나무 역시 고민이 많다. 기업공개라는 과제, 규제 환경의 불확실성, 그리고 블록체인 생태계 확장이라는 난제가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거래소 사업만으로는 미래 성장이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이처럼 성장의 한계에 다다른 네이버와 글로벌 무대를 향해 도약해야 하는 두나무는 서로의 결핍을 메워줄 수 있는 지점에서 만난다. 바로 합병이다.
두나무와 네이버파이낸셜의 결합은 단순한 협업 차원이 아니다. 이는 한국 디지털 금융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이벤트다. 가정하건대 두 기업이 합병한다면 단순히 거래소와 결제망을 합치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금융 플랫폼을 탄생시킨다.합병 직후 송치형 두나무 의장은 합병법인의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되고 네이버는 기존 네이버파이낸셜 지분(69%)과 의결권을 기반으로 합병법인에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네이버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답게 이사회 구성과 의결권 설계를 통해 합병법인의 실질적 지배를 확보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송치형 의장은 아마도 네이버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며 신규 지배구조가 완성이 된다.
일각에서는 네이버가 합병법인을 흡수하여 하나의 기업으로 재탄생하는 그림도 거론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송치형 의장의 합병법인 지분과 네이버 간의 지분 스와프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 두나무 주주들의 반발, 우회상장 논란, 규제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도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두나무 투자자들이 동의할 것 같은 이유
합병 시나리오에서 가장 큰 변수는 기존 두나무 주주들의 입장이다. 단독 상장을 고집하는 목소리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투자자들이 두나무 단독으로는 30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쉽게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문제다. 업비트의 거래대금은 코인베이스에 맞먹지만 글로벌 브랜드 인지도와 사업 다각화 측면에서 두나무는 여전히 부족하다.
반면 네이버파이낸셜과 합병해 글로벌 무대에 나선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단순한 숫자 계산보다 ‘거래소와 결제망을 동시에 가진 디지털 금융 인프라’라는 스토리가 강력한 설득력을 갖는다. 합병 이후 나스닥에 상장할 경우 시장은 두 회사를 단순한 한국 기업이 아니라 글로벌 디지털 금융 기업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크다.
주요 주주들의 이해관계도 자연스럽게 정렬된다. 네이버파이낸셜의 2대 주주인 미래에셋증권 역시 합병 이후 더 큰 지분 가치를 얻게 되므로 반대할 명분이 없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단독 상장보다 훨씬 매력적인 선택지가 합병이라는 점이 분명하다.
스테이블코인, 두 회사가 만나는 교차점
두 회사의 만남을 촉발한 결정적 키워드는 스테이블코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과 전통 금융을 잇는 가교다. 두나무는 업비트라는 글로벌 거래소 인프라를, 네이버는 네이버페이와 네이버파이낸셜이라는 결제 인프라를 보유한다. 거래와 결제라는 두 축이 만날 때 비로소 스테이블코인은 힘을 가진다.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거래소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바이낸스의 FDUSD가 단기간에 거래소 핵심 페어를 장악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는 단순히 거래소가 스테이블코인의 유통에 대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두나무와 네이버의 결합은 이 흐름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히 결제 수단을 넘어 금융상품, 대출, 투자, 송금 등 다양한 서비스의 기반이 된다. 네이버와 두나무가 손잡으면 한국 시장을 넘어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스테이블코인 금융망이 구축될 수 있다. 이는 글로벌 금융 질서에서 결코 작은 의미가 아니다.이번 논의는 단순히 기업 합병의 문제가 아니다. 네이버 내부적으로는 리더십 전환의 의미가 크다. 이해진 창업자가 송치형 의장을 전면에 내세우려는 이유는 분명하다. 네이버는 이제 검색과 쇼핑, 광고를 넘어 새로운 비전과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송 의장은 블록체인과 글로벌 확장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다.
두나무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순 거래소로는 더 이상 한계가 있다. 글로벌 주요 거래소들은 이미 커스터디, 토큰화, 디파이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며 ‘종합 금융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두나무 역시 네이버와 손잡으면 단순 거래소가 아니라 디지털 금융의 허브로 도약할 수 있다. 네이버는 전통적인 IT 인프라와 사용자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두나무는 블록체인 기술과 거래소 운영 경험을 보탠다. 서로의 결핍이 정확히 맞물리는 구조다.네이버와 두나무의 결합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스토리, 주주와 이해관계자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 그리고 블록체인과 전통 금융을 연결하는 필연적 흐름 속에서 합병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네이버는 정체된 성장에서 벗어나 글로벌 스토리를 얻고 두나무는 글로벌 상장의 현실적 발판을 마련한다. 기존 주주들은 더 큰 가치를 공유하게 되며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시대적 키워드는 두 회사를 단단히 묶어준다. 무엇보다 이사회와 의결권을 통한 네이버의 합병법인 지배 구도가 마련된다면 경영권 불확실성 역시 최소화할 수 있다.
이 결합이 현실화된다면 한국 디지털 금융의 무게중심은 단숨에 글로벌로 이동한다. 단순한 협력이 아니라 ‘진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큰 그림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