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5년 서울. ‘문화 대통령’이라 불리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노래 ‘컴백홈’을 들고 나왔다. 청소년들의 방황과 갈등, 소외감을 이해하고 일단 ‘집으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는 같은 세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이자 연대의 선언이었다.
30년이 흐른 2025년 인도네시아 소셜미디어에 한글로 쓴 게시글이 퍼졌다. ‘팅갈 민따 마앞 트루스 등으린 락얏 아파 수샇냐’. 외계어처럼 보이는 이 문장은 인도네시아어 발음을 그대로 한글로 적은 것이다. 의미는 ‘그냥 사과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면 된다. 그게 어렵나’.

국회의원이 과도한 특혜를 받는 것에 반발한 인도네시아 젊은이들이 지난 9월 시위 중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리트윗(재게시)했던 글이다. 정부 검열을 피하고 이를 알아볼 수 있는 세대와 유대하기 위해 이들은 일종의 ‘한글 시위’를 벌였다. 한국 콘텐츠를 일상적으로 접한 젊은 세대가 한글을 읽을 줄 알기에 가능한 방식이었다.
두 사례는 시간과 국경을 넘어 문화가 사람들을 묶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보여준다.타국에서 한글로 시대의 공감을 만들어낸 장면에서 한국 문화가 가진 ‘소프트파워’(다른 국가가 자발적으로 따르도록 만드는 매력과 가치)를 엿볼 수 있다.
한국어시험(TOPIK) 첫해였던 1997년 전 세계응시자는 2692명에 불과했지만 올해(9월까지)는 55만 명이 한국어 시험에 도전했다.
약 30년간 한국어 시험 응시자가 203배 증가했다. 나스닥에 상장된 외국어 학습 플랫폼 듀오링고를 통해 한국어를 배우는 글로벌 사용자는 약 550만 명으로 중국어 학습자보다도 많은 수준이다. 음악, 드라마, 영화, 게임, 웹툰에 이르기까지 K컬처가 쌓은 축적의 시간은 지난해 문학으로까지 확대됐다.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하면서 전 세계 서점에 한국 책이 깔렸다. 올해는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많이 본 영화에 한국 이야기를 담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이름을 올렸다. 문화의 힘은 단기간에 얻을 수 없다.
지난 30년, 한국이 문화 수용자에서 전파자로 진화하기까지의 시간을 분석했다.
1990년대
대중 문화 뿌리가 만들어지다

1990년대 K컬처의 뿌리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전까지 한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다.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8.6%였다. 경제성장과 함께 등장한 X세대(당시 10대 후반~20대 초반)는 자유와 개성으로 문화를 향유하며 현대 사회에서 ‘취향’을 만들어 즐긴 첫 세대가 됐다. 새로운 세대의 문화적 욕구가 폭발하고 법과 제도가 바뀌면서 문화적 다양성은 꽃을 피웠다.
1995년 케이블TV가 개국하면서 지상파만 봐야 했던 시청자들이 즐길 수 있는 채널과 콘텐츠가 대폭 확대됐고 1996년에는 대중음악과 영화에 대한 법적 검열이 철폐(음반 및 비디오에 관한 법률 ‘사전심의와 사후처벌’ 조항 삭제)되면서 한국 문화의 창의성이 본격적으로 팽창했다.1998년 김대중 정부가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하고 문화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해외 문화도 수용했다.
변화의 격동기였던 1990년대 또 다른 이정표가 세워진다. 바로 문화 설계자들의 탄생이다. JYP를 설립한 가수 박진영, BTS를 키워낸 방시혁 하이브 의장, ‘오징어 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이 모두 1990년대에 20대를 거치며 대학을 다닌 세대다.이들은 미래 K컬처의 붐을 만들어낸 주역이다. 시대의 교차점은 이들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시대를 읽고 빠르게 문화산업에 뛰어든 기업도 있었다. CJ의 전신인 제일제당이다. 1995년 5월 1일 당시 제일제당은 기자회견을 열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합작회사 ‘드림웍스’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CJ는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의 판권을 보유하게 됐다. 드림웍스 투자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콘텐츠 사업을 확대하면서 차곡차곡 문화 콘텐츠 기업 CJ의 기반을 갖추기 시작했다.
1997년에는 국내 최초로 ‘음악 전문’ 타이틀을 달고 나온 채널이 탄생했다.CJ가 1995년 인수한 ‘Mnet’이었다. Mnet은 당시 가요톱10 등 지상파 방송에서만 볼 수 있었던 가수들의 무대뿐만 아니라 뮤직비디오, 가수들의 일상 콘텐츠, 해외 콘텐츠 등을 제작하며 한국 대중음악의 다양성과 팬 문화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K팝이 팬덤 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수익구조 역시 이 당시 탄생했다. 이수만 프로듀서가 1995년 SM엔터테인먼트, 1996년 양현석 프로듀서가 YG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한국형 아이돌 산업’이 시작됐다.
H.O.T.가 1996년, 젝스키스가 1997년 데뷔했고 SES, 핑클 등 여자 아이돌 그룹이 경쟁 구도를 형성하며 K팝 팬덤 문화도 탄생했다. 친밀감과 참여의식, 경쟁심리로 뭉친 팬클럽 문화, 응원 문화 등은 오늘날 전 세계 K팝 팬덤의 원형이 됐다. 당시부터 팬들은 단순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자율적 규칙을 만들고 서로를 돌보는 커뮤니티로 진화했다. 당시 아이돌의 인기는 절대적이었다. 1996년 ‘전사의 후예’로 데뷔한 H.O.T.가 콘서트를 하는 날에는 서울시가 지하철 연장 운영을 하고 조퇴 금지령을 내렸다. 전국 여고생들이 H.O.T.를 보기 위해 콘서트장으로 몰려들자 지자체가 나서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2000년대
아시아로 무대 넓힌 K콘텐츠 : 문화, 돈이 되다

2000년에는 H.O.T.로 돈을 번 SM엔터테인먼트가 국내 엔터업계 최초로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문화가 산업으로 인정받고 ‘스타 양성 시스템’이 비즈니스 모델로 제도화된 순간이었다.
오디션을 통해 잠재력 있는 연습생을 발굴하고 트레이닝과 혹독한 테스트를 거쳐 완성형 아이돌을 내놓는 한국의 아이돌 제작 포맷은 이때 굳어졌다. 해외에서는 이를 두고 “K팝은 한국 제조업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며 “표준화된 제작 방식과 유통망 구축, 수출 지향적인 산업 구조 등이 닮았다”고 분석한다.

2000년대 초반에는 K드라마 열풍이 불었다. 2001년 방영한 드라마 ‘겨울연가’는 일본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한류 드라마의 시초로 꼽힌다. 2003년 일본에 수출한 ‘겨울연가’는 20%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지상파 채널 NHK에서 방영됐지만 방송 시간은 토요일 오후 11시로 대중적인 시간대가 아니었음에도 기록적인 시청률을 달성한 것이다.
이듬해인 2004년 ‘겨울연가’는 일본 내 히트상품 2위에 올랐다. 당시 한·일 양국에서 드라마 한 편으로 3조1300억원(일본제일생명경제연구소)의 경제효과를 유발했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 콘텐츠가 돈이 되면서 어엿한 수출품목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2003년 국내에서 방영해 시청률 50%를 달성한 사극 ‘대장금’은 총 87개국으로 퍼졌다. 수출 및 광고만으로도 약 380억원가량의 수익을 올렸다. 2차 콘텐츠로 발전한 ‘대장금’의 생산유발효과는 무려 1119억원에 달했다.
2000년대 중후반에는 1세대보다 더 혹독한 양성 시스템을 거쳐 데뷔한 아이돌 그룹이 아시아 시장을 휩쓸었다. 2세대로 꼽히는 동방신기와 빅뱅, 원더걸스, 소녀시대, 슈퍼주니어가 활약하며 K팝 아이돌의 세계화 발판을 마련한 시기다. 동방신기는 2009년 한국 그룹 최초로 일본 도쿄돔에 입성한 뒤로 올해까지 도쿄돔 공연만 33회를 기록했다. 해외 아티스트 사상 도쿄돔 최다 공연 기록이다.

빅뱅은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처음으로 ‘창작 아이돌’ 시대를 열었다. 지드래곤 등 멤버들이 직접 작사·작곡에 참여하며 아이돌이 ‘기획사가 만든 상품’이 아닌 자체 IP를 생산하는 창작 주체로 진화했다.이는 양성형이었던 아이돌 산업 구조와 비즈니스 모델이 변화하는 계기가 됐다. 멤버들이 창작에 참여함으로써 음원 저작권 수익이 직접 연결됐고 자체 IP를 가진 아이돌의 수명도 길어졌다.
지드래곤이 여전히 가장 뜨거운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이유다. 그럼에도 한계는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K팝의 영향력은 아시아를 벗어나지 못했다.
2010년대
유튜브로 쓴 BTS 신화 : 플랫폼 시대 최대 수혜자가 되다

2010년대. 알찬 콘텐츠 생태계가 준비됐던 한국 문화는 플랫폼 경제 시대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휩쓸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이나 BTS, 블랙핑크의 성공도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유튜브 사상 최초로 10억 조회수를 돌파한 영상에 등극했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 단순한 노래 가사, 재밌는 안무가 성공 비결이었지만 이 노래가 전 세계인에게 도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힘이었다.

BTS 역시 ‘중소돌’의 구조적 한계를 소셜미디어로 극복했다. 리더 RM이 직접 자신들을 “뉴미디어의 혜택을 많이 받은 그룹”이라고 설명할 정도다.
BTS 멤버는 모두 국내파다. 심지어 서울 출신도 없다. 당시 중소 소속사였던 빅히트엔터테인먼트(현 하이브)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 보니 지상파보다는 음악 케이블TV 위주로 활동을 펼쳤다. BTS는 이 같은 공백을 채우기 위해 일찍부터 트위터·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로 눈을 돌렸다. 데뷔 전부터 무대 밖 일상을 소셜미디어로 공유하고 팬들과 활발하게 소통했다. 그들이 공유하는 모든 일상은 팬들에게 ‘덕질’할 맛 나게 하는 ‘떡밥’이 됐다. 이처럼 방탄소년단이 올린 콘텐츠는 그 자체로 확산될 뿐만 아니라 팬들을 통해 재생산됐다. 팬들은 스스로 방탄소년단의 영상을 각국 언어로 번역하거나 재미있는 콘텐츠만 모아 콘텐츠를 재가공했다.
팬들이 만들어낸 번역 영상은 BTS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디딤돌이 됐다.
BTS는 팬과 함께 성장했다. 팬들은 일방적인 수용자를 넘어 아이돌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돕는 ‘조력자’ 역할을 하며 BTS의 글로벌 진출을 도왔다.
그 결과 2017년 ‘DNA’로 빌보드 핫100 차트에 처음 진입한 BTS는 2018년 ‘페이크러브’로 빌보드 첫 10위권에 진입했다. 같은 해 ‘작은 것들을 위한 시’(8위), ‘온’(ON·4위) 등 다른 곡도 연이어 빌보드 차트에서 흥행했다.
2018년 5월 열린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BTS에 붙는 수식어는 ‘세계 최고의 보이밴드’였다. K팝 스타라거나 한국에서 왔다는 부가설명은 따라붙지 않았다. 2018년 당시에도 BTS 유튜브 영상 조회수가 가장 높은 국가는 아시아가 아닌 미국이었다.
드라마와 영화 역시 플랫폼을 타고 세계로 뻗어나갔다. 2016년 한국에 진출한 넷플릭스는 ‘킹덤’ 등 오리지널(자체 투자) 시리즈를 위해 한국 콘텐츠에 공을 들였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투자해 만든 첫 오리지널 시리즈인 ‘킹덤’은 회당 제작비로 30억원이 들었다. OTT 시대가 개막하면서 한국 콘텐츠 수출구가 확대된 것이다.
2020년대
주류로 올라선 K컬처 : 다름의 장벽을 깨고 새로움으로

2020년대. 한국 콘텐츠는 축적해둔 산업적 경험과 창작 역량을 밟고 올라 세계 주류 무대에 섰다. 세계적인 코로나19는 한국 문화산업에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2020년 영화 ‘기생충’은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4관왕을 수상했다. ‘기생충’ 이전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 콘텐츠는 멜로디만으로 즐길 수 있는 음악과 달리 글로벌 시장에서 자막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영어권 시청자들은 자막 없이 영상을 보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이 “자막의 장벽은 장벽도 아니다. 1인치 정도 되는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들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며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쓴다고 생각한다. 그 언어는 ‘영화’”라는 수상 소감을 남긴 이유다.
BTS 열풍은 더 뜨거워졌다.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은 2020년 BTS는 첫 영어 노래인 ‘다이너마이트’로 한국 가수 최초 빌보드 핫100 차트 1위를 달성했다. 무려 32주간 차트에서 내려오지 않으며 새로운 기록을 쓰기도 했다. 2022년 BTS 정국은 카타르 월드컵에서 개막식을 장식했다. 국가 행사인 월드컵에 해외 가수를 세우는 일은 매우 드물다. K팝의 글로벌 상징성을 인정받은 장면이다.

2022년 YG엔터테인먼트 소속 여자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는 월드 투어를 돌며 세계 무대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블랙핑크가 2022년부터 2023년까지 3개월간 진행한 월드투어 ‘본 핑크(Born Pink)’ 공연 수익만 112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걸그룹 스파이스걸스를 제치고 전 세계 여성 아이돌 그룹 중 역대 최고 투어 수익을 기록한 것이다.
2023년에는 블랙핑크가 세계 최대 음악페스티벌인 ‘코첼라’ 메인무대(헤드라이너)에 섰다. 비영어권·여성 그룹 최초였다.

블랙핑크 IP는 ‘돈’에 가장 민감한 명품 산업의 러브콜도 받았다. 멤버 전원이 샤넬(제니), YSL(로제), 디올(지수), 셀린느(리사) 등의 글로벌 앰배서더로 활약하며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성들의 우상으로 자리 잡았다. K팝 스타의 IP가 문화를 넘어 패션 등 경제적 자본으로 확대되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지난해 10월에는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K컬처의 위력은 정점을 찍었다. 외신은 K컬처 열풍이 한국문학으로 확대됐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전문가들은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이 그동안 한국 문화와 콘텐츠의 힘이 축적된 결과라고 분석한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국제적으로 권위를 갖는 시상은 해당 문화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 나오기 힘들다”며 “현재 전 세계적으로 한국 콘텐츠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상이 가진 여러 가지 함의가 작품과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어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드라마와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의 원천이 된 한국문학의 서사와 구조가 ‘주류’ 반열에 올라섰다는 분석도 있다.
오형엽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이 세계 문학의 수용자에서 전파자로 이동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그동안 한국문학이 드라마와 영화, 음악 등 K콘텐츠의 원천 소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장벽이 높은 문학까지 수면 위로 올라와 전파자로서 정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K컬처는 또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난 6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많이 본 작품에 등극했다. 영화에 삽입된 노래 역시 파급력이 세다. 케데헌 OST ‘골든’은 미국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8주 연속 1위 자리를 지켰다. 케데헌은 K팝과 K무속을 결합한 스토리를 한국 출신 제작진이 투입돼 만든 영화다.
소재는 신선했고 서사는 보편적이었다. 가상의 3인조 K팝 걸그룹 ‘헌트릭스’가 무대 밖에서 악귀를 사냥하는 영웅으로 활약하는 이야기다.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K팝으로 다가가 무속의 콘텐츠 원형을 신선하게 던진 것이 먹혀들어간 것이다.
디테일에는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충실한 고증이 담겼다.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 감독과 한국계 작가를 부인으로 둔 크리스 아펠한스 감독이 공동 연출을 맡고 한국인 작곡가, 아트 디렉터들이 참여해 디테일을 살렸다. 노래와 안무는 현역 작곡가와 안무진이 대거 참여해 기존 K팝 팬이 듣기에 이질감 없는 K팝을 창작했다.
케데헌의 성공에는 산업적 의미도 있다. K콘텐츠의 확장성과 새로운 성공공식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국내 엔터 업계에 기회와 숙제를 동시에 던졌다.
이번 성공은 넷플릭스가 가진 막강한 자본력과 글로벌 유통망 덕분이었다. 국내에서 제작되고 배급하는 콘텐츠가 넷플릭스만큼의 파급력과 수익 구조를 내기에는 현실의 벽이 있다.
일본 자본이 투입된 미국 제작사와 글로벌 OTT가 K컬처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을 흥행시키면서 ‘K’의 정체성 역시 다시 정의됐다.
김지연 CJ ENM 콘텐츠전략 담당은 “글로벌 시청자들은 K컬처를 한국만의 것으로 인식하기보다 하나의 콘텐츠 장르로 자연스럽게 소비하는 추세”라며 “콘텐츠를 만드는 글로벌 제작사들도 이런 흐름 속에서 K컬처의 소비자이자 제작자로서 성공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한국의 문화가 콘텐츠가 되는 시대로 진입했다. 하지만 미래 30년은 불확실하다. 어떤 게임체인저가 세계의 문화적 판도를 바꿀지 모른다. 최소 수년간 지속될 K컬처의 전성기에 문화산업의 주체들이 이 변화를 어떻게 준비하는가에 미래 30년 K컬처의 운명이 달려 있다.
지원은 하지만 간섭하지 않는 정부의 역할, 문화를 산업으로 인식하는 패러다임의 전환, 한국형 플랫폼을 향한 새로운 도전, AI 시대에 대비한 창작자들에 대한 지원 등 수많은 숙제가 전성기를 지나고 있는 K컬처 앞에 놓여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