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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스자산운용
이지스자산운용

 

국내 최대 부동산 전문 운용사 이지스자산운용의 경영권 매각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당초 시장의 전망을 웃도는 몸값이 형성된데 이어 인수전의 승자가 국내 금융사가 아닌 중국계 자본으로 결정되면서 적잖은 파장이 일었다. 여기에 입찰 과정의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까지 불거지며 논의는 법적 분쟁 국면으로 번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주요 투자자인 국민연금이 투자금 회수 가능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매각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업계 1위 회사 왜 매물로 나왔나

이지스자산운용의 운용자산(AUM)은 약 67조원에 달한다. 펀드 수는 2023년 413개에서 2024년 473개로 늘어나며 10년째 업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고(故) 김대영 회장이 설립한 회사다. 김 회장은 국토교통부 차관, 대한주택공사 사장 등을 지낸 관료 출신이다. 2001년 코람코자산운용의 설립 멤버로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당시 국내 최초로 리츠(REITs) 도입을 추진하는 등 한국 부동산 자산운용 산업을 개척했다.

 

이후 김 회장은 2010년 이지스자산운용을 설립해 국내외 상업용·주거용 부동산 전문 투자운용사로 키웠다. 이 회사의 부동산펀드 설정액은 약 26조2000억원이며 이 중 14조3000억원이 국내 자산이다. 그러다 2018년 김 회장이 타계하며 배우자인 손화자 씨가 지분 전량인 45.5%를 상속받았다. 손 씨는 지난 6년간 꾸준히 지분을 축소해 현재 12.4%까지 줄어들었다.

 

이지스자산운용의 매각설은 지난해부터 업계 안팎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돼 왔다. 최대주주인 손 씨가 건강 문제 등 개인 사정을 이유로 보유 지분 정리에 대한 의사를 밝히면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올해 들어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를 매각 주관사로 선정하며 본격적인 매각 절차에 착수했다.

 

현재 매각 대상은 손 씨가 보유한 12.4% 지분과 주요 재무적투자자(FI)들의 지분을 합하면 60% 이상이 된다. 여기에 대신파이낸셜그룹과 조갑주 전 신사업추진단장 측 등의 지분이 포함되면서 약 98% 수준으로 형성됐다. 이번 거래의 물밑 조율은 사실상 김 회장의 딸인 김애미 투썸플레이스 사외이사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이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MBA를 취득한 후 맥킨지앤컴퍼니에서 근무하며 글로벌 금융권 인맥을 쌓아왔다.

국내 부동산펀드 운용사 규모
국내 부동산펀드 운용사 규모

 

◆생각보다 몸값 높아졌는데

매각 주관사가 제시한 초기 기업가치는 약 8000억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매각 지분이 기존 66%에서 98%로 늘어난 데다 본입찰에서 한화생명, 흥국생명, 중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 등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몸값이 1조1000억원 이상까지 올랐다.

 

초반 판도는 한화생명과 흥국생명의 맞대결로 압축되는 분위기였다. 보험사들이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배경에는 단순한 몸집 불리기를 넘어선 구조적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저금리 기조 장기화와 인구 구조 변화로 보험 본업의 성장성이 급격히 둔화되면서 안정적인 수익원을 외부에서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장기 자금을 운용해야 하는 생명보험사들에 대체투자 역량 확보는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화생명은 비교적 이른 시점부터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전에 공을 들였다. 부동산·인프라 등 실물자산 운용 역량을 키워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을 품을 경우 30조원대에 달하는 부동산 자산 운용 능력을 단숨에 확보하게 되고 기존 금융 계열사들과의 시너지를 통해 종합 자산관리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이는 보험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금융그룹 전반의 체질을 바꾸려는 시도로도 해석된다.

 

후발 주자인 흥국생명 역시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국내 보험 시장이 정체 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장기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태광그룹 차원에서 최근 공격적인 인수합병 행보를 이어가는 가운데 이지스운용 인수는 그룹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카드로 평가된다. 또 최대주주인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인수 의지가 확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지스자산운용 매각 일지
이지스자산운용 매각 일지

◆힐하우스는 어떤 곳?

하지만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전의 승리는 힐하우스로 돌아갔다. 힐하우스는 본입찰을 앞둔 시점에 참여의사를 밝히며 전면에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12월 8일 주관사인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는 힐하우스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힐하우스는 ‘프로그레시브 딜(경매호가식 입찰)’ 방식의 경쟁 과정에서 인수가를 1조1000억원 수준까지 끌어올리며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 본입찰 단계에서 힐하우스가 제시한 금액은 9000억원대 중반으로 최고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본입찰 이후 주관사 측의 프로그레시브 딜 제안에 힐하우스가 다시 베팅에 나서며 인수 가격을 대폭 상향했다. 경쟁 후보였던 흥국생명은 약 1조500억원, 한화생명은 9000억원대 후반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프로그레시브 딜은 일정 기준을 통과한 후보들만을 대상으로 추가 입찰을 진행해 가격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흥국생명은 이번 결과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모건스탠리가 본입찰 이전 단계에서 ‘프로그레시브 딜은 진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전달했다는 것이다. 본입찰에서 1조500억원을 제시해 가장 높은 가격을 써냈음에도 불구하고 모건스탠리가 힐하우스 측에 추가 인상 여지를 열어두며 사실상 재입찰 기회를 제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흥국생명은 12월 11일 이지스자산운용 매각과 관련해 최대주주와 주주대표, 모건스탠리 관계자 등 5명을 공정 입찰 방해 및 사기적 부정거래(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소했다.

 

경찰은 12월 31일 흥국생명 관계자를 소환해 고소인 조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금융당국은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힐하우스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보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힐하우스는 중국계 기업가 장레이가 2005년 예일대 재단으로부터 2000만 달러를 출자받아 설립한 사모투자 운용사다. 본사는 싱가포르에 두고 있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기술·소비·플랫폼 분야 투자를 주도해왔다. 국내에서는 컬리, 우아한형제들, 크래프톤 등 성장 초기 기업에 투자하며 이름을 알렸고 최근에는 SK온·SK에코프라임 등 대기업 계열사 투자로도 존재감을 넓혔다.

 

이 같은 이력 탓에 시장에서는 힐하우스가 이지스자산운용의 새 주인이 될 경우 단순한 지분 인수를 넘어 글로벌 확장을 가속화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다만 동시에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사모펀드 특성상 중장기 성장보다는 수익 회수에 무게가 실릴 경우 국내 최대 부동산 운용사의 안정성과 공공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은 발 뺄까

국민연금이 이지스자산운용의 경영권 매각 과정에서 강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며 투자금 회수 가능성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출자한 펀드 관련 자료가 사전 협의 없이 원매자 측에 전달됐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이지스자산운용의 최대 기관투자가로 지난해 기준 10개 펀드에 걸쳐 약 2조1000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출자금 회수가 현실화하면 경영권 매각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12월 17일 이지스자산운용 측은 국민연금 실무진을 통해 공식 입장을 확인한 결과 “이지스 인수합병과 관련해 현재로서는 출자금 회수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국민연금, 이지스자산운용에 위탁한 자산
국민연금, 이지스자산운용에 위탁한 자산

이지스자산운용은 출범 초기부터 대형 연기금 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며 실적을 쌓았다. 특히 국민연금은 이지스가 추진한 주요 부동산 프로젝트마다 핵심 투자자로 참여해왔다. 역삼 센터필드와 마곡 원그로브 대형 개발 사업은 이지스의 운용 역량을 대외적으로 입증한 사례로 꼽힌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투자 성과를 넘어 이지스가 대규모 복합 개발과 장기 운용을 수행할 있는 조직이라는 인식을 시장에 심어줬다. 이는 다른 기관투자가들의 참여를 이끄는 마중물이 됐고 결과적으로 이지스가 자금조달력과 사업 확장 면에서 경쟁사보다 앞서 나갈 있는 기반이 됐다. 같은 배경 때문에 이지스를 두고국민연금이 키운 회사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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