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과 석 달 전만 해도 비트코인은 ‘2025년의 승자’로 불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상자산 대통령’을 자처하며 백악관에 복귀했고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에 편입하는 지니어스법이 미 의회를 통과하는 등 호재가 잇따랐다. 비트코인은 연중 최고가를 연이어 경신하며 한때 90% 가까이 급등했고 투자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같은 기간 S&P500지수가 약 15%, 국제 금값이 55%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비트코인의 성과는 단연 두드러졌다.
하지만 분위기는 급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산 제품 100% 추가 관세 부과’ 발언이 촉매가 되면서 2025년 10월 중순 대규모 강제 청산 사태가 발생했고 시장은 급격히 흔들렸다. 연말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인하에 나섰지만 코인 시장에는 별다른 반등을 가져오지 못했다. 결국 연초의 기대와 달리 비트코인의 2025년 성적표는 –9%를 기록했다. 3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마이너스 수익을 낸 것이다.
시장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지만 일각에선 2026년 반등 가능성을 여전히 점치고 있다. “그때 팔걸”이라는 후회와 “지금이 기회일까”라는 투자자들의 고민이 교차하며 시장은 다시 갈림길에 섰다.
◆극과 극의 전망
‘20만 달러’라는 낙관적 기대와 반대로 2025년 12월 31일 비트코인 가격은 8만7000달러 선에서 거래를 마감했다. 최고점(12만6210.5) 대비 31% 떨어졌다.2025년 초까지만 해도 비트코인 시장을 떠받친 주체는 ‘큰손’ 투자자들이었다. 오랜 기간 비트코인을 보유해온 이른바 고래 투자자들이 10만 달러 선에서 차익을 실현했고 그 빈자리는 비트코인 현물 상품지수펀드(ETF)와 가상자산을 보유한 기업들이 메우는 구조로 변화했다. 세계 최대 비트코인 보유 기업인 스트래티지(옛 마이크로스트래티지)와 같은 기업들의 자금이 유입되면서 추가 상승 동력을 얻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달러 단기 유동성 부족 등으로 글로벌 투자자들이 위험자산에서 한발 물러나기 시작하면서 변동성이 큰 가상자산이 가장 먼저 조정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빚을 내서 투자한 레버리지 포지션이 강제 정리되며 가상자산 역사상 최대 규모인 190억 달러의 청산 사태를 빚었다.
시장에선 낙관론과 비관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간은 비트코인이 향후 시장 안정 국면에 접어들 경우 2026년 최대 17만 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비트코인이 단순한 투기 자산을 넘어 금과 유사한 ‘가치 저장 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인플레이션 헤지 자산으로서의 위상이 강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JP모간은 특히 기관투자가들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스트래티지를 들었다. 스트래티지는 비트코인 가격 변동이 기업가치에 직접 반영되는 구조를 갖고 있어 최근 비트코인 가격 하락과 함께 주가 역시 큰 폭으로 조정을 받았다. 그런데 회사는 보유 전략을 유지하며 오히려 추가 매수에 나섰다. 2025년 말 스트래티지는 총 1299개의 비트코인을 추가로 사들였다. 매입 금액은 약 1억880만 달러, 평균 매입 단가는 약 8만8000달러 수준이다.
JP모간은 스트래티지의 기업가치 대비 비트코인 보유 비중이 일정 수준 이상 유지되는 한 시장이 이를 ‘신뢰 신호’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 경우 투자자들은 비트코인 가격이 이미 바닥을 통과했다고 판단할 수 있으며 이는 향후 반등의 촉매로 작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씨티그룹은 2026년 비트코인 가격이 14만3000달러에서 최대 18만900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비트코인 현물 ETF를 중심으로 한 자금 유입 가능성에 주목했다. 앨릭스 샌더스 씨티리서치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의 비트코인 채택이 지속된다는 전제하에 2026년에는 현물 ETF를 통해 최대 150억 달러의 신규 자금이 유입될 수 있다”며 “이는 비트코인 가격 상승을 견인하는 핵심 요인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각국 정부의 규제 환경 변화도 긍정적인 변수로 꼽았다. 샌더스 애널리스트는 “미국 의회가 가상자산 산업의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시장구조 법안을 통과시킬 가능성이 높다”며 “규제 불확실성이 완화하면 기관투자가의 참여가 한층 확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다만 씨티는 낙관 일변도는 경계했다. 시장 변동성이 재차 확대될 경우 비트코인 가격이 7만8000달러 선까지 조정받을 가능성도 함께 제시했다.
거시경제 분석가 루크 그로멘은 비트코인이 향후 4만 달러 선까지 추가 하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그로멘은 “최근 금값이 랠리하고 있지만 온라인 금으로 불리는 비트코인은 그 존재 가치를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며 “양자컴퓨터의 급부상은 가상자산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비트코인 회의론자인 경제학자 피터 시프도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시프는 “비트코인의 약세는 일시적인 조정이 아니라 자산 자체의 내재가치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이크 맥글론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수석전략가는 보다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그는 비트코인 가격이 최악의 경우 1만 달러 선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봤다. 현재 흐름을 1929년 대공황 직전의 주가 움직임에 비유하며 당시와 마찬가지로 장기간 이어진 상승 국면 이후 급격한 조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2026년이 정점?
비트코인 가격이 흔들리면서 다시 한번 ‘4년 주기설’이 거론되고 있다. 비트코인은 그동안 4년마다 찾아오는 반감기를 전후로 상승과 조정을 반복해 왔다. 반감기는 비트코인 채굴에 따른 보상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시기를 말한다. 반감기 후 비트코인 공급이 줄면서 가격이 상승하지만 이후 다시 조정을 받는 현상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사이클을 과거와 동일선상에 놓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과거에는 반감기가 가격 흐름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였다면 현재는 관세전쟁이나 미국 정부의 셧다운, 금리인하 등 복합적인 요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현물 ETF 등장 이후 비트코인이 금융시장 전반의 흐름에 영향을 받는 자산으로 성격이 바뀌었다는 평가가 많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이번 4년 주기 사이클이 4%대 고금리 환경에서 진행되는 것을 고려하면 추가 금리인하가 진행되는 2026년에 비트코인 가격이 최대 17만 달러에 도달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비트코인은 전통 금융자산?
전문가들은 비트코인이 단순한 투기 자산에서 벗어나 전통 금융자산의 성격을 점점 더 강하게 띠고 있다고 분석한다. 김 센터장은 “2024년 1월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된데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친가상자산 행보를 본격화하자 비트코인은 대체자산으로 자리 잡았다”고 진단했다.
김 센터장은 기관 자금의 유입은 지금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보수 운용사로 꼽히는 뱅가드가 최근 가상자산 투자 상품 판매에 나선 점은 상징적”이라고 말했다. 2025년 12월 2일 세계 2위 자산운용사인 뱅가드그룹은 그동안 고수해온 ‘가상자산 비관론’을 접고 가상자산 관련 ETF와 뮤추얼펀드 판매에 나섰다. 비트코인·이더리움·리플·솔라나 등에 투자하는 상품을 자사 플랫폼에서 취급하기로 하면서 사실상 디지털 자산 시장에 본격 진입한 것이다. 그동안 변동성과 투기성을 이유로 가상자산 투자를 배제해왔던 뱅가드는 최근 기관·개인투자자 수요가 급증하자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센터장은 “미국 정부가 2025년 3월 비트코인을 전략자산으로 지정하면서 제도권 편입은 한 단계 더 진전됐다는 평가가 나온다”면서도 “정부 차원의 직접적인 매입 계획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이 매수 계획 발표가 비트코인 가격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