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자자들의 시선이 금과 은으로 쏠린다. 세계 금융시장을 좌우하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로 화폐 가치 하락 우려가 커지면서 투자금이 실물자산으로 옮겨가고 있다. 관세정책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와 미국의 베네수엘라 원유 수출 봉쇄 등 지정학적 불확실성까지 겹치며 안전자산 선호에 힘이 실렸다. 각국 중앙은행의 금 매입이 금값을 끌어올리는 가운데 산업 수요 등을 등에 업은 은은 45년 만의 최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은’ 45년 만의 슈퍼 랠리
“은괴(실버바)는 주문해도 2개월은 기다려야 합니다.”
“은수저, 은팔찌, 은반지 팔러 왔어요.”
2025년 은값이 가파르게 치솟았다.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 은 선물 가격은 4월 저점 대비 트로이온스(이하 온스·31.1g)당 77.92달러로 166% 뛰었다. 1980년 은 파동 당시 고점(48.7달러)을 45년 만에 경신했다.
최근 은 가격 강세는 산업 구조 변화와 맞물려 있다. 은은 귀금속으로 분류되지만 실제 수요의 절반 이상이 전력·전자·에너지 산업에서 발생한다. 세계은협회에 따르면 전 세계 은 생산량의 60%는 산업용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전기전도율과 열전도율이 가장 뛰어난 금속이라는 특성상 태양광 패널, 전기차,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고효율 전력이 필요한 산업에서 필수 소재로 자리 잡았다.
특히 태양광 설비 확대는 은 수요를 밀어올리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태양광 패널 한 장에는 수십 그램의 은이 들어간다. 매년 은 시장 보고서를 발간하는 실버 인스티튜트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태양광 패널에 포함된 은의 총량은 1억4000만 온스에 달했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는 2030년 세계 태양광 설비가 3배 늘어나면 은 수요는 현재보다 2배 증가한다고 전망했다. 자동차산업도 은 수요 확대 요소다. 전기차 배터리에는 대당 25~30g의 은을 활용한다.
공급 부족도 은 가격을 부추긴다. 순수 은 광산은 대부분 고갈된 상태다. 현재 생산하는 은의 상당 부분은 구리·아연·금 등 다른 금속을 채굴하는 과정에서 부산물 형태로 확보하고 있다.공급을 빠르게 늘리기도 어렵다. 은 광산 개발에는 통상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고 최근에는 환경 규제와 광산 투자 위축까지 겹치면서 신규 생산 여력이 제한적이다. 은 수요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음에도 공급이 구조적으로 경직돼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설상가상으로 중국 정부가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수출 허가증 관리 대상 화물 목록’을 발표하면서 은을 포함시켰다. 은 수출을 통제하겠단 얘기다. 중국은 세계 최대 은 생산국 중 하나이고 매장량 또한 세계 최대 수준이다.
월가의 은 투자 전문가인 피터 크라우스는 지난 5년간 누적된 은 공급 부족량은 약 7억3000만 온스로 추산했다. 이는 전 세계 은 광산의 1년 치 생산량에 해당하는 규모다.
다만 은 가격은 최근 급등 이후 큰 폭의 조정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말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은 선물 가격은 하루 만에 8% 넘게 급락하며 2021년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이후 연초까지 변동성이 이어지며 단기 과열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고 있다.시장에서는 급등에 따른 차익 실현 매물과 함께 시카고상품거래소(CME)가 은 선물 증거금을 잇달아 인상한 점이 가격 조정을 키운 요인으로 보고 있다. 증거금 인상은 레버리지 거래 비중이 높은 은 시장에서 매도 압력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은은 안전자산인 금과 경기 민감 자산인 구리의 특성을 동시에 지닌 만큼 단기 과열 국면에서는 가격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모건스탠리는 올해 평균 전망치로 온스당 57달러를 제시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도 온스당 65달러를 전망했다. 70달러를 훌쩍 넘어선 현재 가격보다 훨씬 낮은 수치인 셈. 골드만삭스는 “태양광발전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고 일부 제조업체가 은을 구리 등 더 저렴한 소재로 대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 투자, 어떻게?
은 투자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실버바·은화·그래뉼(은 알갱이) 등 현물을 직접 구매하는 방법이다. 은값 상승으로 수익이 발생해도 양도소득세나 배당소득세 같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은통장(실버뱅킹)도 있다. 은행에서 전용 계좌를 개설한 뒤 0.01g 단위로 원하는 만큼 은을 사고팔 수 있다. 계좌에 돈을 입금하면 은행이 국제 은 가격과 환율을 적용해 은을 통장에 적립하는 방식이다. 다만 매매차익에 대해서는 15.4%의 배당소득세를 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은선물 상장지수펀드(ETF) 투자다.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어 접근성이 높고 소액 투자도 가능하다. 매매 차익에 대해 배당소득세 15.4%를 적용한다. 국내에선 KODEX 은선물(H)이 유일한 상품인데 지난해 12월 1개월 수익률이 전체 ETF 중 가장 높은 44%(NAV 기준)를 기록했다.
◆돌반지 한 돈 100만원?
“요즘 사금 채취 유튜브를 많이 봐요. 관련 동호회에도 가입했죠. 충북이나 강원도 어느 계곡에 사금이 많다는 정보도 공유해요.”
금값이 치솟자 금을 대하는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1돈(3.75g)짜리 돌반지가 부담스러워 1g짜리 반지를 맞추는 수요가 늘었고 금은방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금을 팔려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수명을 다한 금니부터 골프채, 폐전자제품 부품에 붙은 금 조각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골드바 수요가 폭증하면서 한때 소형 골드바를 중심으로 품귀 현상이 나타났다. 다만 최근 NH농협은행과 신한은행이 소형 골드바 판매를 재개했고 현재 1kg 골드바만 취급 중인 국민·하나·우리은행도 1분기 내 소형 골드바 판매를 다시 시작할 계획이다.
한국금거래소에 따르면 1월 7일 기준 순금 1돈 매입 가격은 91만1000원으로 4년 전 30만원대와 비교해 세 배 가까이 뛰었다. 최근 1년 상승률만 70%를 웃돈다.
금값은 4~5년 전부터 오름세를 보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가자지구 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와 탈세계화, 각국 중앙은행들의 금 비축 움직임이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특히 러시아가 서방 제재로 달러 자산을 동결당한 이후 달러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중국과 인도, 브라질 등 신흥국들은 미 국채 비중을 줄이는 대신 금 매입을 확대하고 있다. 믿을 건 직접 쟁여둔 금뿐이라는 심리가 확산한 것이다. 세계금위원회(WGC)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3년 연속 연간 1000톤 이상의 금을 사들였고 지난해 금값이 고공행진했음에도 3분기 중앙은행의 금 순매입량은 220톤으로 전분기 대비 28%, 전년 동기 대비 10% 증가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금값이 2026년에도 강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나 상승폭을 둘러싼 의견에는 차이를 보였다. JP모간은 온스당 5055달러를, 뱅크오브아메리카와 HSBC는 5000달러를 목표가로 제시했다. ‘온스당 5000달러’ 시대가 현실화할 경우 금 돌반지 가격도 100만원 선을 넘기게 된다. 국제 금값이 온스당 5000달러에 이르고 원·달러 환율이 1450원 수준을 유지한다면 순금 한 돈 가격은 약 87만원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부가가치세와 소매 마진, 세공비를 더하면 일반 소비자가 실제로 부담해야 할 구매가는 100만~110만원에 이를 전망이다.
모건스탠리는 중앙은행의 금 수요가 둔화될 것으로 분석하며 온스당 4800달러를 전망했다. 1월 5일 금 선물은 온스당 4451.5달러에 거래됐다.
한편에선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심화해 중앙은행이 금리를 동결하거나 인상한다면 위험 선호 심리가 살아나 금 보유의 기회 비용이 높아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런 조건에서는 금값이 현재 수준에서 5~20%가량 하락할 가능성도 나온다.

금 투자, 어떻게?
금 투자 방법도 크게 세 가지다. 전통적으로 골드바 등 금 실물을 직접 구매하는 방법이 있다. 은행이나 금은방, 편의점 등 오프라인을 방문하거나 홈쇼핑 등 온라인으로도 구매 가능하다. 하지만 실물 투자는 세금도 떼이고 사고팔 때의 가격 차이도 꽤 커 시세 차익을 노리기 쉽지 않다.
은행이나 증권사를 통해 KRX 금시장에 참여하는 방법도 있다. 금 거래 계좌를 따로 개설해 KRX 금을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다. 1g 단위로 투자가 가능해 진입장벽이 낮고 비과세 혜택도 있다.

골드뱅킹은 실물 거래 없이 0.01g 단위로 소액투자가 가능하다. 다만 거래 수수료 1%와 매매 차익에 대한 배당소득세 15.4%를 내야 한다.
ETF나 금 펀드로 투자하면 비용을 아끼면서 손 쉽게 투자할 수 있다. 양도세와 배당소득세를 내야 하지만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활용해 투자하면 절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