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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주택 경기 호황으로 호시절을 누렸던 건설업계가 절체절명 위기에 처했다. 극심한 경영난으로 폐업 신고를 한 건설사가 급증하면서 시장에 떠돌던 ‘5월 위기론’이 현실로 다가오는 모습이다.

 

부도 건설사 급증

올 들어 건설사 1080곳 폐업 신고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올 들어 폐업 신고를 한 건설사는 1080개(4월 16일 기준)에 달한다. 하루 평균 10개 이상 문을 닫는 중이다. 문 닫는 건설사가 급증하면서 건설업계에서는 ‘5월 위기설’까지 등장했다.

 

사정이 심각한 곳은 지방 건설사다. 폐업 신고를 한 건설사 중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업체는 595개로 전체의 60%에 달한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2021년 10월 분양한 대구 수성구 파동 ‘수성레이크우방아이유쉘’은 지난해 2월 중도금 1차 대출 실행이었지만 시행사가 1년 넘도록 대출해줄 금융기관을 찾지 못했다. 이 단지는 분양 당시 고분양가 논란에 1.02 대 1이라는 저조한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를 두고 수분양자들은 분양률이 낮아 은행권에서 중도금 대출을 거절당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보통 아파트는 분양 대금을 계약금 10%, 중도금 60%, 잔금 30% 수준으로 나눠서 낸다. 중도금은 분양 대금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커서 은행권 집단대출을 받는 경우가 많다. 시행사는 분양이 시작되면 금융권과 집단대출 협약을 맺고, 수분양자는 해당 금융사에서 대출받는 구조다.

 

중도금 대출을 받지 못해 뿔난 수분양자들은 분양가를 낮춰주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요구까지 했다. 대구 기존 아파트값이 급락하면서 시세가 분양가보다 한참 낮기 때문이다. 이 단지 인근 ‘수성못코오롱하늘채’ 전용 84㎡는 최근 3억8000만원에 매매 거래돼 ‘수성레이크우방아이유쉘’ 같은 평형 분양가(5억930만~5억4190만원)보다 1억원 넘게 저렴하다.

급증하는 전국 미분양 주택

중도금 대출을 못 받아 수분양자들이 대거 계약을 해지하면 시행, 시공사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분양 계약자가 없으면 건설사가 준공 시점까지 공사비를 직접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극심한 자금난을 겪게 된다.

 

“건설사 입장에서 계약금, 중도금을 받지 못하면 예정대로 공사를 진행하기 어렵다. 은행권에서 중도금 집단대출 조건으로 70~80%대 분양률을 요구하는 분위기라 대출받기가 녹록지 않다. 금리가 오르고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 건설사마다 생존 경쟁에 내몰리는 형편이다.” 건설업계 관계자 귀띔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구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할인 분양하는 단지도 잇따르는 모습이다.

 

대구 수성구 만촌동 ‘만촌자이르네’는 1년 가까이 미분양이 소진되지 않아 최대 25% 할인 분양에 돌입했다. 심지어 입주 2년 후 집값이 하락하면 시공사가 매수하는 ‘환매’ 조건을 검토 중인 단지(대구 수성포레스트스위첸)도 등장했다. 미분양이 절정이던 2010년대 초 등장했던 ‘애프터리빙(분양조건부 전세)’ 마케팅이 또다시 등장한 셈이다.

 

건설사들이 수십억~수백억원 이익을 포기하고 할인 분양 등 각종 고육책을 내놓지만, 미분양이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줄도산’ 후폭풍이 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7만5438가구로 1년 전보다 200%가량 급증했다. 이 중 83%가 지방 물량이다. 대구가 1만3987가구로 가장 많고 경북(9074가구), 충남(8456가구) 미분양도 넘쳐난다. 특히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전국적으로 8554가구에 달한다. 수도권은 1483가구인 반면 지방은 7071가구로 대부분이 지방 몫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방의 경우 수요가 충분하지 못하거나 주택 공급 물량이 많은 지역 중심으로 미분양이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서울, 수도권 일부 단지만 1순위 청약을 마감할 뿐 대부분 지방 청약 단지는 미분양에 허덕이는 모습이다. 부동산R114가 한국부동산원 청약홈 청약 결과를 분석한 결과 올 1분기 전국 분양 단지 34곳 중 1, 2순위 내 청약이 마감된 곳은 13곳으로 38.2%에 그쳤다. 지난해 1분기에는 87개 분양 단지 중 21개 단지(24.1%)만 미달한 것과 대비된다.

 

지난 2월 분양한 ‘힐스테이트동대구 센트럴’은 1, 2순위 청약에서 478가구 모집에 28명이 신청해 경쟁률이 0.06 대 1에 그쳤다. 건설사들이 제대로 신고하지 않은 미분양까지 고려하면 실질 미분양은 이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 건설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최근 지방 미분양이 증가하면서 청약 심리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금리 인상 여파로 집값이 여전히 하락세를 보이는 데다 경기 침체도 지속되면서 청약을 미루는 수요자가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연체율이 급증하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금융감독원의 ‘부동산 PF 대출 관련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증권사의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은 10.38%로 나타났다.

 

지난해 9월(8.16%)과 비교하면 2.22%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1년 전인 2021년 말(3.71%) 대비 3배 급증했다.

 

PF는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건설 사업에 사업성과 현금흐름을 보고 담보 없이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 기법이다. 건설사들은 주로 PF 대출을 통해 공사비를 충당한 후 발주처에서 분양수익이 들어오면 현금으로 정산한다. 현물로 담보를 잡는 것이 아닌 사업성을 따져 대출이 일어나는 구조라 부동산 호황기에는 걱정이 없다. 하지만 미분양이 증가하는 등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 빠지면 문제가 커질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5월 이후 건설사 위기가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대책은 없나

중도금 대출 보증 비율 상향 거론

건설업계는 미분양 급증에 따른 지방 건설사 줄도산 위기를 막기 위해 정부가 중재 역할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한다. 대한주택건설협회는 현재 대출 금액의 80% 수준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 한국주택금융공사(HF)의 중도금 대출 보증 비율을 높여달라고 요구한다. 이들 기관 보증 규모가 커지면 은행권에서 요구하는 분양률이 낮아져 중도금 대출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미분양 사태가 심각한 지역에 한시적으로 금융, 세금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일례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을 유예하거나 취득세 감면, 미분양 주택 매입 시 5년간 양도세 면제 등의 혜택을 제공해야 건설사 자금 여건이 개선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편에서는 정부가 부동산 경착륙 가능성이 높은 곳을 서둘러 ‘위축 지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요구도 쏟아진다. 주택 분양, 매매 등 거래가 위축됐거나 위축될 우려가 있는 지역의 경우 주택 거래량, 미분양 주택 수 등 지정 요건을 충족하면 주거정책심의위원회를 거쳐 위축 지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

 

대한주택건설협회는 최근 국토부에 “주택 시장 침체가 우려되는 지역을 위축 지역으로 조속히 지정해야 한다. 위축 지역에는 규제 지역에 상응하는 수준의 인센티브를 부여해 주택 시장 침체 리스크가 지역 경제에 확산되지 않도록 맞춤형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다만 위축 지역으로 지정되면 오히려 투자 수요뿐 아니라 실수요마저 위축돼 ‘낙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A대 교수는 “미분양 물량이 급증한 것은 금리 인상, 경기 침체 등 외부 요인도 있지만 건설사가 분양가를 지나치게 높게 책정하거나 수요 예측을 제대로 못한 것도 간과할 수 없다. 도덕적 해이 논란도 있는 만큼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뒤 맞춤형 지원책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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