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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신세계그룹 총괄부회장이 그룹 ‘회장’이 됐다. 2006년 부회장에 오른 후 18년 만에 승진 인사다. 파격이라기보다는 정해진 미래에 가까웠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룹 안팎으로 큰 이슈가 됐다.

 

관심이 쏠린 부분은 승진 자체보다 ‘시점’이다. 인사 발표 후 ‘왜 하필 지금일까’라는 궁금증이 퍼져 나갔다. 부진한 실적과 주가 탓에 일각에서는 ‘회장 승진이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한 터였다. 재계에서는 그룹이 맞닥트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정 회장에게 힘을 실어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용진의 신세계’가 풀어야 할 과제는 그만큼 산적해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프로필

회장 승진으로 ‘책임감’ 부여?

 

위기 극복에 ‘강력한 리더십’ 필요

 

신세계그룹은 지난 3월 8일 정용진 회장 승진 인사를 발표했다. 1995년 입사 이후 29년 만에 회장 승진이다. 당시 27세 나이로 신세계 전략기획실 전략팀 대우이사로 입사한 그는 1997년 기획조정실 상무, 2000년 경영지원실 부사장 등을 거쳤다. 2006년 경영지원실 부회장 승진 후 지금까지 부회장직을 유지하다 올해 3월 그룹 회장으로 승진했다.

 

회장 타이틀을 새로 얻었지만, 맡은 역할 자체에는 기존과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 회장 모친이자 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회장 딸인 이명희 회장이 총괄회장으로 여전히 그룹 총수 역할을 유지한다. ‘남매 경영’도 계속된다. 이마트(마트·호텔·F&B 등) 부문은 정 회장이, 신세계(백화점·면세점·패션 등) 부문은 동생인 정유경 총괄사장이 담당하는 구조다. 경영상 역할에 큰 차이가 없고 이명희 총괄회장도 건재하다. ‘진정한 1인자’가 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룹 내에서도 ‘축하’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비장함이 감돈다. 이번 승진으로 ‘정 회장에게 막중한 책임감을 부여했다’는 인식이 강하다. ‘회장이 된 만큼 성과를 내라. 실패할 경우 책임을 확실히 져라’라는 이명희 총괄회장 메시지가 담겼다는 해석이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유통 시장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면서 과거보다 훨씬 다양한 위기 요인이 쏟아지고 있다. 완전히 다른 차원의 혁신을 위해서는 그만큼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해졌다”며 “이번 승진 인사는 정용진 회장 중심으로 위기를 정면 돌파하자는 의지”라고 설명했다.

 

회장 승진 직후 정 회장 발언에서도 이 같은 책임 의식이 드러난다. 그는 승진 다음 날 열린 첫 계열사 사장단 회의를 주재하며 “위기가 있지만 더 열심히 하겠다”는 취지로 말하고 부진한 이마트 수익과 온라인 사업 실적 개선 등 다양한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이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논란이 됐던 몇몇 게시글을 삭제한 배경 역시 ‘더 막중해진 책임감 때문 아니겠냐’는 해석이 나온다.

 

위기의 신세계…정용진 과제는

 

주주 사과·차입금 축소 요구 이어져

 

이번 회장 승진을 놓고 일각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부회장 재임 기간 동안 부진한 실적과 지지부진한 주가에 비춰, 회장으로 ‘부적합’하다는 얘기도 쏟아졌다.

 

실제 신세계그룹이 처한 환경은 녹록지 않다. 이마트를 비롯한 그룹 주요 계열사는 지난해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이마트는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손실 469억원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 2011년 이마트 법인 설립 이후 첫 연간 영업적자다. 신세계 역시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모두 감소하는 등 부진했다. 외부 환경도 낙관적이지 않다. 지난해 창사 후 첫 연간 흑자를 낸 쿠팡 매출이 이마트를 추월하는가 하면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 공세도 거세다.

 

“승진보다 주주에 대한 사과와 기업가치 제고가 먼저였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하 포럼)은 최근 정 회장 승진과 관련해 논평을 내놓으며 이같이 주장했다. 포럼은 국내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지난 2019년 설립된 비영리법인이다. 국내 행동주의펀드와 기관 투자자가 주축이 돼 출범한 민간 단체다.

 

포럼은 이마트 주가가 장기 하락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이마트 주가는 지난 5년 동안 59% 가까이 떨어졌다. 같은 기간 23% 오른 코스피와 크게 대조된다. 차입금에 대한 우려도 담겨 있다. 현재 이마트 금융부채는 14조원에 이른다. 이마트 시총(2조원)의 7배 수준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차입금 축소 압박을 받는 신세계건설 레저부문을 다른 기업이 아닌 자회사에 떠넘긴 것도 도마에 올랐다.

 

신세계건설은 부동산 불황에 따른 미분양 여파로 최근 유동성 우려가 불거진 이마트 계열사다. 지난해 이마트 연간 영업적자도 신세계건설(영업손실 1878억원) 탓이 컸다. 신세계건설은 올해 2월 최근 골프장 3곳을 포함한 레저부문을 약 1820억원에 매각하기로 했지만, 인수 주체는 또 다른 자회사인 조선호텔앤리조트다. 당장 신세계건설 부채 비율은 줄겠지만 결과적으로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포럼은 “현재 이마트는 과도한 빚이 주주 발목을 잡고 있다”며 “와이너리, 골프장, 야구단, 스타벅스코리아 등 본업과 무관한 자산 매각으로 차입금을 축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창사 첫 연간 영업적자 이마트
창사 첫 연간 영업적자 이마트

정용진의 신세계, 어떻게 바뀔까

 

철저한 ‘신상필벌’로 실적 개선한다

 

‘정용진의 신세계’는 아직 뚜렷한 청사진을 발표하지는 않았다. 다만 실적과 수익성 개선을 위해 철저한 성과주의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당장 ‘신상필벌 인사’를 강화하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실적이 부진한 최고경영자(CEO)는 수시 교체하고 성과 보상은 강화하는 방향이다.

 

신세계그룹은 최근 평가 보상 제도 개편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는 등 관련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성과 목표를 객관적인 수치로 나타내는 ‘핵심성과지표(KPI)’를 새로 수립하고 이를 토대로 기존 인사 제도를 확 바꾸겠다는 취지다. 지난해 11월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경영전략실을 개편하며 정 회장이 주문했던 ‘강도 높은 쇄신’과 같은 맥락이다. 정 회장은 경영전략실 전략 회의를 주재하며 “계열사와 업무 영역별로 정밀한 KPI를 수립해 성과를 낸 조직과 임직원에게는 확실한 보상을 뒷받침해주고 그렇지 못한 경우 반드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당장 4월부터 새로운 인사 평가 제도가 도입될 것이라는 말도 있다”며 “실적이 부진한 이마트, 유동성 위기가 불거진 신세계건설 등 최근 이슈가 된 계열사 인사부터 손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신임 회장으로 그룹 장악력을 키우기 위해 지금보다 적극적인 경영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현장을 직접 찾는 빈도를 높이고 경영전략실을 중심으로 사장단 회의를 강화하는 등이다. 재계 관계자는지난해 경영전략실 개편부터 이번 회장 승진까지, 그룹은정용진 실어주기라는 일관된 방향을 갖고 가는 듯하다 회장도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책임 경영 행보를 강화하지 않을까 추측한다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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