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미국 증시 하락에 베팅하며 주목받고 있다.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에너지 섹터에선 BP는 매수하고, 토탈과 셸은 공매도하는 등 종목별 롱·숏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비트코인 간접 투자도 확대했다.
폴 싱어 회장이 이끄는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지난해 4분기 미국 증시에 대한 강한 하락 베팅에 나섰다. 영국 에너지 대기업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지분은 대거 사들이며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본격적인 경영 개입에 나서는 한편, 경쟁 에너지 기업인 토탈에너지스와 셸엔 공매도 포지션을 취하며 에너지 기업에 대한 ‘양면 전략’을 펴고 있다. 비트코인 간접투자도 확대하며 포트폴리오 전략을 다각화하고 있다.
엘리엇이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지난해 4분기 주식 보유 현황 공시(13F)에 따르면 엘리엇은 나스닥100,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등 미국 주요 지수 하락에 베팅하는 풋옵션을 대거 매입했다. 풋옵션은 특정 주식을 미래의 정해진 가격에 팔 수 있는 권리로, 이를 매수하는 것은 주가 하락을 예상하는 전략이다.
1조 원대 나스닥100 풋옵션 사들여
엘리엇은 미국 증시가 과열됐다고 판단하고 이에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나스닥100 하락에 베팅한 풋옵션 규모가 8억5000만 달러(약 1조2100억 원) 증가해, 전체 보유 비중이 지난해 3분기 1.14%에서 4분기 6.63%로 급증했다. 이에 따라 해당 종목 풋옵션은 엘리엇의 보유 비중 순위에서 18위에서 5위로 뛰어올랐다.
'SPDR S&P 미국 석유·가스 탐사 및 생산 상장지수펀드(ETF)' 하락에 대한 베팅도 새롭게 추가됐다. 이 ETF에 대한 풋옵션은 약 39만 주(5220만 달러·약 744억 원)로 전체 포트폴리오의 0.32%를 차지한다. 엔비디아 주가 하락에 대한 풋옵션도 처음으로 편입됐다. 약 145만 주(1억9500만 달러·약 2781억 원)를 추가해 보유 비중이 1.19%로 나타났다. 산업 섹터 전반에 투자하는 인더스트리얼 셀렉트 섹터 ETF 하락에도 베팅했다. 약 300만 주(3억9500만 달러·약 5633억 원)를 새로 편입해 보유 비중은 2.43%로 집계됐다.
엘리엇 포트폴리오 내 1위 종목은 여전히 S&P500 지수를 추종하는 ‘SPDR S&P500 ETF 트러스트(SPY)’ 풋옵션이다. 올해 들어 S&P500이 15% 넘게 하락하면서 엘리엇은 이 풋옵션을 통해 큰 수익을 거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종목 풋옵션은 엘리엇 포트폴리오에 지난해 3분기 처음 편입됐고 당시에도 단숨에 포트폴리오 내 비중 1위(21.4%)에 올랐다. 엘리엇은 지난해 4분기 SPY 풋옵션의 보유 비중을 25.89%까지 확대했다. 보유 주식 수는 약 720만 주에 달한다.
BP는 사들이고 토탈·셸은 공매도
BP 지분을 대거 사들인 엘리엇은 토탈과 셸 등 경쟁 에너지 기업들에 대해선 대규모 매도 및 공매도에 나서고 있다. 엘리엇은 지난해 4분기 약 4억3900만 달러(약 6261억 원)어치를 매도하며 NRG에너지 보유 비중을 4.56%에서 2.66%로 줄였다. '에너지 셀렉트 SPDR ETF'에 대해서는 풋옵션을 3.16% 보유 중이다. 다만 이번 분기에만 약 14억2000만 달러(약 2조 원)를 매도해 해당 ETF에 대한 보유 비중은 전 분기 10.28%에서 크게 축소됐다.
지난 3월 엘리엇이 SEC에 제출한 서류에 따르면 최근 엘리엇은 프랑스 에너지 대기업 토탈에너지스에 대해 6억7000만 유로(약 1조 원), 약 0.52% 지분에 해당하는 공매도 포지션을 취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례적인 규모라고 평가했다. 시장 데이터 분석 업체 브레이크아웃포인트의 설립자 이반 초소비치는 “최근 수년간 공개된 공매도 중 가장 큰 규모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엘리엇은 경쟁사인 셸에 대해서도 대규모 공매도에 나섰다. 영국 금융감독청(FCA)에 따르면 엘리엇은 셸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약 0.5% 규모의 숏 포지션을 보유 중이며, 이는 2016년 이후 셸에 대한 공매도 중 가장 큰 규모다. 해당 포지션은 지난 3월 25일 셸이 비용 절감 계획을 발표한 직후 취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보유 기업에는 롱 포지션(매수)을, 경쟁 기업에는 숏 포지션(공매도)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포트폴리오의 수익성과 리스크를 동시에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엘리엇은 지난 2월 영국 석유 대기업 BP의 지분 약 5%(약 38억 파운드·약 7조 원)를 확보한 뒤 자산 매각과 석유·가스 중심의 사업 전환을 요구하며 경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BP 주가는 5년간 5% 하락하며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같은 기간 경쟁사인 셸 주가가 37% 상승한 것과 대조적이다. BP 시가총액은 870억 달러(약 126조 원)로 셸의 절반에 못 미친다.
비트코인 간접투자 확대 행보
엘리엇은 보유 중이던 미국 위탁개발생산업체(CDMO) 캐털란트의 지분 1.25%(약 2억900만 달러·약 2980억 원 상당)를 전량 매도했다. 이 지분은 2023년 3분기부터 보유해 온 것으로, 해당 기간 동안 주가 상승에 따른 평가차익을 실현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캐털란트 주가(63.49달러)는 2023년 7월 3일(45.15달러) 대비 40% 넘게 올랐다. 캐털란트 주가는 2023년 2월 시작은 지난 2월 노보노디스크 지주사인 노보홀딩스가 캐털란트를 인수하며 반등하기 시작했다.
한편 엘리엇은 세계 최대 비트코인 보유 상장사인 스트래티지(구 마이크로스트래티지)의 주식을 2070만 달러(약 295억 원)어치 추가로 매수했다. 이에 따라 스트래티지에 대한 보유 비중은 기존 0.04%에서 0.19%로 확대됐다. 스트래티지는 세계에서 비트코인을 가장 많이 보유한 상장사로, 이 기업에 대한 투자는 비트코인에 대한 간접투자로 평가된다. 지난 3월 27일 기준 스트래티지는 비트코인 49만9096개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당시 기준으로 약 474억 달러(약 67조8500억 원)에 달하는 규모다. 엘리엇은 이번 거래를 통해 암호화폐 자산에 대한 간접 보유 비중을 눈에 띄게 늘린 셈이다.지난 2월 13일 기준 엘리엇의 총 운용자산(AUM)은 총 973억7171만 달러(약 138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