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경 신세계 회장,
만년 3등을 '1위 백화점'으로 만든 경영인
숙고·빠른 실행·숫자로 표현되는 결과 중시
성과 위해 관성처럼 해오던 선택 의심
10년간 백화점 부문에 10조 투자
변화 시도해야 초격차 유지할 수 있다는 마인드
신세계그룹의 상속이 마무리됐다. 이명희 총괄회장이 지난 4월 30일 정유경 신세계 회장에게 보유하고 있던 (주)신세계 지분 전량(10%)을 넘겨줬다. 이 총괄회장은 올해 초 이마트 지분도 모두 정용진 회장에게 매각했다.1993년 삼성그룹으로부터 분리 독립한 지 32년 만에 본격적인 남매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이명희 총괄회장의 둘째인 정유경 회장은 2015년부터 총괄사장으로 백화점을 이끌어왔지만 지난해 회장 승진을 통해 ‘신세계의 리더’ 자리를 공식화했다.
정유경 회장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많지 않다. 오빠 정용진과 달리 대외 활동이 많지 않다. 공개석상에 등장한 것은 단 한 번뿐이며 언론 인터뷰도 한 적이 없다.그러나 성과로 증명된 경영 스타일은 누구보다 확실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숫자’다. 수치로 증명되는 성과, 매출과 이익률과 같은 구체적 지표들이 정유경의 언어다.
숫자를 위해 그는 과감한 시도를 해왔다. 관성처럼 해오던 선택들을 의심했다. ‘명품 매장은 왜 1층에만 있어야 할까’, ‘해외 백화점과 비슷한 분위기를 내는 것만이 한국 백화점의 살길일까’, ‘백화점과 미술관의 경계는 존재할까’, ‘서울에 있는 문화유산과 백화점 명품을 결합시키는 방법은 없을까’, ‘백화점업의 본질은 언제까지 부동산업이어야 할까’ 등이 그가 던진 질문이다.
그리고 상식을 하나하나 깨기 시작했다. 명품매장을 백화점 5층으로 옮기고 입주해 있는 브랜드와 브랜드 사이에 있는 벽도 허물었다. 전문관이라고 불렀다. 지하와 꼭대기에 있던 백화점 음식점만을 따로 떼어내 음식점 길거리도 조성했다. 낯설더라도 기꺼이 시도한다는 면에서 그는 ‘룰 브레이커’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직은 미완성이다. 그에게는 신세계그룹을 반석에 올려놓은 어머니의 그늘을 걷어내고 ‘정유경만의 신세계’를 만드는 숙제가 있다.
모든 것이 달라진 2015년, 불문율을 깨는 리더
1972년 이명희 총괄회장의 1남 1녀 가운데 둘째로 태어난 정유경 회장은 만 23세의 나이에 조선호텔에서 일을 시작했다. 2009년 부사장 승진과 동시에 신세계로 자리를 옮긴 뒤 백화점 관련 업무를 해왔다.
정유경 회장이 본격적으로 경영 1선에 나선 것은 2015년. 신세계 총괄사장으로 취임하면서다. 부사장 승진 6년 만의 변화였다. ‘총괄사장’은 기존에 없던 직책이다. 정유경 회장이 백화점과 관련된 주요 계열사 경영을 책임질 것이라는 사인이었다.
정유경 총괄사장 체제에서 신세계는 변화를 시도했다. 그는 불문율을 깨는, 룰 브레이커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은 대구였다.
2016년 12월 15일, 대구 최초의 신세계백화점이 오픈했다. 이날 백화점을 찾은 고객들은 당황했다. 1층에 당연히 있어야 할 명품 매장이 없었다. 화장품과 액세서리 매장만 있는 생소한 광경이었다. 1층은 백화점의 얼굴이자 고객을 끌어들이는 핵심 공간이다. 이 때문에 그간 모든 백화점은 1층에 명품을 배치해왔다. 대구 신세계는 달랐다. ‘3대 명품’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조차 5층에 있다. 명품을 전부 5층으로 옮겨벼린 것은 정유경 회장의 결정이었다.
1~4층의 경우 동대구터미널이 사용하는 공간이 있어 면적이 다소 협소했다. 정유경 회장은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집중했다. 고객이 편하게 쇼핑할 수 있도록 모든 명품을 5층에 몰아놨다. 층 전체를 ‘명품관’으로 만들었다. 당시 업계에서는 “5층에 명품이 있다는 것은 치명적인 단점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정 회장은 이 단점을 네트워크로 해결했다. 명품 브랜드들과 지속적 교류를 통해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 것이 힘을 발휘했다. 현재 대구 신세계에는 주요 명품 브랜드 모두 입점했다. 대구·경북 지역 백화점 가운데 유일하게 전국 매출 상위 10위권에 이름을 올리게 된 배경이다. 정유경 회장은 지방 점포의 전략도 바꾸었다. 백화점이 단순한 쇼핑 시설을 넘어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도록 점포를 고급화해야 한다는 게 정 회장의 판단이었다. 다른 점포와는 차별화된 생존 전략을 2010년대부터 구상했다. 정 회장은 “디지털이 부상해도 보편적인 인간의 감성을 충족하는 오프라인 경험은 영원할 것”이라며 “지방에서도 고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최고급 백화점으로 승부를 보자”고 강조했다.
대구 신세계는 정유경 회장의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그가 수년간 세계 주요 도시의 쇼핑몰을 실무진과 함께 직접 답사한 뒤 내놓은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지방 점포 입점을 꺼리는 명품들을 대거 확보한 것은 물론이며 지역 최초 아쿠아리움, 콘서트홀 등 엔터테인먼트 공간을 융합해 가족 중심의 체험형 백화점으로 탈바꿈시켰다.그해를 정유경 당시 사장은 숨가쁘게 보냈다. 강남점 증축(2016년 2월), 센텀시티몰 오픈(3월), 면세점 명동점 오픈(5월), 김해점 오픈(6월), 대구 신세계 오픈(12월) 등 대형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백화점은 백화점다워야? NO
그가 깬 또하나의 공식은 ‘백화점은 백화점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백화점의 초대형화를 주도했다. 2016년 ‘강남점 증축’이 그 결과물이다. 당시 백화점 전망은 좋지 않았다. 신규 출점이 줄어드는 추세였다. 대신 복합쇼핑몰은 늘어났다.
정 회장은 본업의 가치를 되살리는 동시에 백화점이 지역의 일상과 문화를 풍요롭게 만드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실행에 나섰다.
이른바 ‘랜드마크 프로젝트’였다. 정 회장은 2016년 투자를 늘렸다. 강남점을 세계적인 백화점으로 만들기 위해 면적을 2배 가까이 확장하고 입점 브랜드도 600여 개에서 1000여 개로 대폭 확대했다. 음식점 거리를 대형으로 조성했다. 강남점은 현재도 서울에서 가장 큰 백화점으로 서울뿐만 아니라 수도권 전체의 쇼핑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백화점 내 ‘전문관’이라는 개념도 정 회장이 처음 도입했다. “우리도 선진 백화점처럼 고객이 취향별로 편리하게 원스톱으로 브랜드를 비교하며 쇼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정 회장의 생각이었다. 명품 브랜드 매장 사이에 있는 벽도 허물었다. 당시 임원들은 반대했다. 브랜드 설득이 어려울 것이라고들 했다. 그동안 백화점 구조는 벽을 가운데 두고 브랜드와 브랜드가 나뉜 형태였다. 브랜드에서는 다른 브랜드와의 통합을 선호하지 않고, 백화점 또한 이들의 운영에 간섭할 수 없었다.
정 회장은 임원들과 브랜드를 설득한 끝에 강남점에 ‘전문관 큐레이션’을 만들었다. 공간 구분을 카테고리 기준으로 나누는 방식이다. 슈즈·생활·아동·컨템포러리 패션 등 4개 전문관으로 나뉜 강남점은 고객들이 한 공간에서 다양한 브랜드를 접할 수 있도록 해 쇼핑 편의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라진 애매함, 경험을 공간화하다
정 회장의 핵심 성과 중 하나는 ‘고급화’다. 조선호텔 입사 후 이명희 총괄회장으로부터 꾸준히 경영 수업을 들었고 해외 출장에도 동행하며 사업 안목과 글로벌 감각을 키워온 결과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신세계백화점의 이미지는 ‘럭셔리’와 거리가 멀었다. 지리적인 요인이 가장 컸다. 갤러리아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이 압구정의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고 있는 반면 신세계백화점은 반포에 있었기 때문이다. 재건축 시기를 거쳐 2010년대 새로운 강남 1번지로 주목받은 반포와 달리 압구정은 오랜 기간 ‘가장 비싼 동네’였다. 노른자 땅에 자리 잡은 현대와 갤러리아가 먼저 ‘고급 점포’ 이미지를 확보했고 신세계는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미약했다. 일각에서는 ‘쇼핑은 압구정에서, 영화 관람은 반포(신세계)에서’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특색이 없었던 영향도 있다. 고급화에서는 갤러리아의 입지가 강했고 접근성 면에서는 점포 수가 많은 롯데가 우위였다.
여러 이유로 신세계백화점은 업계 3위(2014년 매출 기준)에 머물렀다. 다점포 전략을 취한 롯데와는 매출이 2배 이상 차이 났고 현대백화점과의 2위 경쟁에서도 밀렸다.
정 회장의 승부수는 고급화였다. 갤러리아와 현대가 이미 ‘럭셔리’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도전이 성공할 가능성은 낮았다. 정 회장은 “새로운 콘텐츠와 서비스를 얹어 고객 방문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게 우리 업(業)”이라고 강조했다.
가장 먼저 명품 라인업을 강화했다. 2016년 강남점 리뉴얼 오픈 때 ‘국내 최초’가 많았던 까닭이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 이탈리아 남성복 브랜드 라르디니,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펜디 등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단독 남성 매장을 열었다. 다음은 ‘경험’을 공간화했다. 백화점을 단순 판매 공간이 아닌 브랜드의 헤리티지와 철학을 경험할 수 있는 하나의 ‘예술 전시장’으로 변화시켰다. 공간 자체를 ‘콘텐츠’로 만들어 고객이 백화점을 들어온 순간부터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도록 하는 전략이다.
2020년 강남점 3층에 갤러리를 도입했다. 해외패션전문관이 있는 3층에 회화, 사진, 오브제, 조각 등 12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한 ‘아트 스페이스’를 오픈했다. 지난해 선보인 ‘하우스 오브 신세계’도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푸드홀의 고급화’를 위해 좌석 간 간격은 넓히고 진입로 곳곳에는 예술 작품을 설치했다.
올해 4월 리뉴얼한 신세계 본점은 ‘문화유산과 백화점, 그리고 명품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콘셉트를 보여줬다. 신세계는 옛 제일은행 본점을 매입해 ‘더 헤리티지(유산)’라는 이름을 붙였다. 문화재 가치를 유지하고 복원하는 방식으로 한국 건축사의 기념비적 건물을 계승한 게 특징이다.
신세계는 명품 브랜드와 제품이 줄 수 없는 차별화된 경험을 고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1935년 준공 당시와 90% 동일한 수준으로 복원했다. 그리고 매장은 1개만 넣었다. 샤넬 매장이었다. 이 매장을 제외한 다른 공간은 모두 한국적인 것으로 채우는 모험을 했다. 여백, 곡선, 대칭과 균형 등 한국적인 절제미를 가미했다.
이 같은 ‘공식의 파괴’가 가져온 결과는 긍정적이다. 신세계는 경쟁사를 제치고 ‘럭셔리 점포’ 이미지 구축에 성공했다.
엄마를 닮은, 사람 쓰는 법
엄마와 닮은 면도 있다. ‘사람 쓰는 방식’이다. 이명희 총괄회장은 본인이 선택한 사람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최대한 믿어주는 경영인으로 통한다. 핵심 전략이 확정된 후 사업적인 결정은 전문경영인에게 일임했다. 부동산을 매입하거나 M&A 관련 실무도 참견하지 않았다. 이명희 총괄회장은 아버지인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로부터 배운 ‘믿지 못하면 쓰지 말고 일단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따랐다.
정유경 회장의 경영 스타일도 유사하다. 신세계인터내셔날(SI)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1년 토종 브랜드 톰보이를 인수하자마자 디자이너를 물색했다. 코데즈컴바인의 전성기를 이끈 이지연 디자이너를 선택하고 그에게 대부분의 권한을 넘겼다. 브랜드를 키울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자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정 회장은 자주 리뉴얼을 위해 김경은 신세계 아트스페이스 소장을 자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 본부장)로 발탁했다. 정 회장은 한국적인 요소를 첨가하는 등 리뉴얼의 핵심을 전달한 이후 모든 권한을 김 본부장에게 줬다. 자주는 180도 달라졌다. 김 본부장은 최근 더 헤리티지 내 ‘K-문화의 랜드마크’ 구성도 주도하면서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냈다. 정 회장의 신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변화였다.
윌리엄 김 신세계인터내셔날 대표도 정 회장이 직접 영입한 인물로 알려졌다. 윌리엄 김은 구찌에서 CFO(부사장), 버버리에서 리테일·디지털 수석부사장을 역임한 명품 패션 전문가로 2023년부터 회사를 이끌고 있다. 김 대표는 어뮤즈 인수, 니치향수 라인업 확대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있다.
신세계 관계자는 “정유경 회장은 한번 사람을 선택했으면 그를 믿고 권한을 최대한 준다”며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업계 1등·매출 3조·투자 10조…숫자로 증명하는 성과
정 회장은 한번 결정한 부문에서는 반드시 숫자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주변에서는 “철저한 준비 끝에 결단을 내린다”고 전했다. 그리고 실행에 들어가면 속도감 있게 밀어붙이는 게 그의 경영 스타일이다. ‘숙고, 빠른 실행, 숫자로 표현되는 결과 중시’ 등 룰 브레이커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정유경 회장은 임원들과의 회의에서 “이익은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전 직원의 목표이자 기업을 영속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강조한다. “리더는 명확한 숫자 목표를 설정하고 조직의 역량을 집결해야 한다”고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정유경 회장은 모습을 드러내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리더는 결과로 말해야 한다는 게 경영 철학”이라고 설명했다.
그 결과는 어떨까. 본인은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숫자는 괜찮다. 신세계는 10년 만에 다른 회사가 됐다. 거래액은 2015년 약 9조원에서 지난해 21조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자산은 7조9000억원에서 15조원으로 2배 이상 확대됐다.
2015년 약 5조원이었던 매출은 2024년 11조5000억원으로 성장했고 영업이익은 약 2600억원에서 4770억원으로 2배가량 확대됐다. 오프라인 유통의 위축 속에 이뤄낸 성과다.
하이라이트는 신세계 강남점이다. 8년 연속 전국 매출 1위 점포에 올랐다. 2016년 리뉴얼 1년 만인 2017년 1조7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롯데백화점 본점을 제치고 처음으로 업계 1위를 차지했다. 2019년에는 국내 유통시설 최초로 2조원을 달성했으며 2023년부터 지난해까지 2년 연속 매출 3조원 돌파라는 기록을 써냈다.
대구점도 오픈 1년 만인 2017년 대구 지역 매출 1등 백화점이 됐고 2021년에는 국내 백화점 가운데 가장 짧은 시기인 ‘오픈 4년 만에 연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2024년 매출 기준 국내 백화점 상위 10개 점포 가운데 신세계백화점은 4개가 포함됐다. 강남점(1위), 센텀시티점(3위), 대구 신세계(6위), 본점(8위) 등이다.
정 회장이 주도한 인수합병(M&A)은 점차 성과를 내고 있다. 2018년 신세계에 편입된 신세계까사는 지난해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최근 3개 분기 연속 흑자다. 신세계라이브쇼핑은 패션브랜드 차별화를 통해 T커머스(리모컨을 통한 상품 구매) 업계 1위에 올랐다.
미래에 대한 투자도 멈추지 않고 있다. 정유경 체제에서 신세계가 지난 10년간 백화점 신규점 오픈을 포함, 주요 계열사에 투자한 금액은 약 10조원에 달한다. 단기적인 성과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는 혁신과 변화에 도전해야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룰 브레이커 역할을 완성하기 위한 정유경 회장에게는 몇 가지 숙제가 있다. 여전히 그에게는 엄마의 큰 후광효과가 드리워져 있다. 이명희 총괄회장은 백화점 한 개만 달랑 가지고 독립해 오늘날 신세계와 이마트의 기초를 닦았다. 재계 순위 11위 그룹을 만들어 놓았다. 그에게 주어진 과제는 한국 대표 백화점이 아닌, 아시아 그리고 세계적 수준의 백화점을 만드는 것이다. 정유경만의 신세계의 모습을 구체화시키는 것도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그가 중시하는 숫자도 현재 수준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재계의 지적이다. 더 많은 투자를 위해 수익성을 개선하는 것도 과제다.
이와 동시에 전문가들은 이마트와 완전히 분리된 신세계만의 철학을 확고히 정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신세계백화점 그룹의 핵심가치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과 이를 실행할 기업문화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내려져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