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을 빠르게 실생활에 적용하고 있다. 최근 생성형 AI 딥시크와 세계 최초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마라톤 대회로 세계를 놀라게 한 중국이 두 가지 첨단기술을 일상생활에 접목하는 작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미국과 기술 패권 경쟁 때문이 아니라 AI·로봇 기술의 산업 응용으로 제조업 구조 개혁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고 한다는 분석이다.
“로봇 팔이 해주는 경락이라고 해서 별로 기대를 안 했는데 정말 시원하네요.” 올 5월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국가회의센터에서 열린 국제과학기술산업박람회. 자녀들과 함께 방문한 중국인 곽모 씨는 디지털 중의학 경락 조절 로봇을 체험한 뒤 이같이 말했다.
그 옆에선 정형외과 AI 기술 개발과 수술 로봇 응용을 주력으로 하는 업체인 베이징창무구가 정형외과 수술 로봇을 관람객들 앞에서 직접 시연하고 있었다. 부스 안에서 끊임없이 아이스크림을 퍼서 작은 용기에 담고 있는 이른바 ‘아이스크림 로봇’에는 유난히 어린 관람객들의 관심이 쏠렸다. 손가락 하나하나 관절을 움직이면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피아노 로봇’에는 각국에서 온 로봇 관련 연구기관 관계자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기술 과시보다 활용에 초점
이처럼 중국 정부와 업체들은 올 들어 AI·로봇 기술을 접목시킬 수 있는 산업 영역을 넓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기술개발 성과를 과시하는 것을 넘어 첨단기술의 산업 현장 응용 수준을 높여 선제적으로 미국과 유럽 등의 경쟁국을 제치겠다는 전략이다. 이번 박람회만 해도 과학기술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정보기술, 스마트 제조, 의료 건강, 식품 물류 등 일상생활의 다양한 산업 분야를 망라한 종합 응용기술 행사로 불리는 게 적합했다.1998년 시작된 이 박람회는 중국의 과학기술 성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플랫폼으로 불리고 있다. 올해 박람회는 총 면적만 약 5만㎡로 국내외 800여 개 업체와 기관이 참여했다. 박람회 개최 초창기만 해도 단순히 기술혁신을 선보이고 새로운 제품 개발 모델을 보여주는 전시적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다양한 과학기술 개발이 어떻게 산업과 응용·적용될 수 있는지를 설명해주는 현장 친화적 기술박람회로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람회 한 관계자는 “실제 응용 수준에서 최신 연구개발 성과가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과학기술 혁신과 산업 발전의 긴밀한 융합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박람회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특히 의학 분야에서 AI·로봇의 활용이 다양하게 확인됐다. 박람회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것 중 하나도 디지털 중의학 경락 조절 로봇이었다. 이 제품은 딥러닝 AI 시스템을 활용해 단시간 내 고객 신체 전체의 경락 경로를 계획하고 추출하게 설계됐다. 조절 헤드가 달린 이중 팔 로봇으로 고속 진동이 가능하며 경락 위치나 자극 강도, 자극 깊이 등을 정확하게 제어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산업용 휴머노이드 로봇 발전에 대한 중국 업체들의 의지도 곳곳에서 묻어났다. 수직으로 벽을 오르고 검사와 수리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이른바 ‘스파이더(거미) 로봇’은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 대처 능력까지 갖춰 제조 업체 관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중국이 세계 최대 규모의 제조 시스템 등 국가적 장점을 최대한 앞세워 AI와 로봇을 활용한 산업 지능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눈에 띄는 건 대부분의 첨단기술 관련 박람회에 관련 업계 종사자나 전문가들이 참석하는데 비해 중국에선 비교적 나이가 어린 학생들의 관람이 많다는 점이다. 8세 자녀와 아이 친구들 3명을 데리고 박람회를 찾은 파트파임 교사인 우모 씨는 “자녀에게 첨단기술 현장을 일찌감치 보여줘 흥미를 찾아주고 싶었다”며 “장래희망을 정하는 데도 도움이 될 듯해 일부러 시간을 내서 자녀와 같이 왔다”고 말했다.
생활 속으로 파고드는 로봇
이뿐만이 아니다. 기자가 최근 방문한 베이징 경제기술개발구 징하이 5로에 위치한 베이징휴머노이드로봇혁신센터(로봇센터)에서도 중국의 이 같은 산업 응용 의지는 강하게 드러났다. 로봇센터는 2023년 11월 문을 열어 설립이 고작 1년 반밖에 안 된 새내기 업체이다. 하지만 올 4월 열린 세계 최초 휴머노이드 로봇 하프 마라톤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톈궁의 제작사로 알려지면서 단숨에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로봇 제작사가 됐다.
로봇센터에 들어서니 앞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에 대한 힌트가 곳곳에서 포착됐다. 한편에선 손가락이 없는 톈궁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총 10개의 손가락을 갖춘 휴머노이드 로봇이 끊임없이 귤과 사과를 집어 올려 그릇에 놓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톈궁 개발자가 귤의 위치를 계속 옮기면서 방해했지만 다시 경로를 탐색하고 작업을 수정해 결국 임무를 완수했다.
그 옆에선 역시 톈궁과 얼굴과 몸통은 유사하지만 손가락 대신 집게가 달린 휴머노이드 로봇이 책상 위에 어지럽혀진 종이컵, 도시락통, 종이 쓰레기 등을 주워 끊임없이 쓰레기통에 집어넣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톈궁 개발에 참여한 익명을 요구한 한 엔지니어는 “톈궁이 미래에 가장 빠른 휴머노이드 로봇일 뿐 아니라 가장 실용적인 로봇이 되기를 바라면서 개발을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휴머노이드 로봇은 수천 개 부품으로 이뤄져 있어 인간에게 쉬운 일이 오히려 로봇엔 어렵고 반대로 인간에게 어려운 게 로봇엔 간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로봇센터가 ‘마라톤 로봇’ 다음으로 공 들이고 있는 건 시니어 케어(고령자 돌봄) 로봇이다. 집안에서 물건을 나르고 청소를 하면서 가벼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이야 말로 상대적으로 체력이 약하고 동반자가 필요한 고령자들에게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로봇센터 관계자는 “로봇 마라톤을 통해 톈궁의 하드웨어와 스포츠 능력 관련 테스트를 마쳤다”며 “앞으로 위치 인식, 환경 인식, 경로 계획, 관절 제어 등 자율 항법 연구개발에 더욱 집중할 방침”이라고 했다. 전기차의 자율주행 방식을 휴머노이드 로봇에 직접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경로를 탐색하고 목표를 수행할 수 있도록 반복적으로 업그레이드를 진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선 ‘근로자 대체’ 우려도
다만 급성장하는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에 대한 근로자의 우려를 의식한 듯 인간과 휴머노이드 로봇 간 경계를 분명히 하는 모습도 보였다. 기자를 만난 량량 베이징경제기술개발구 관리위원회 부국장은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을 보조하고 지원해 생산성을 높이고 위험한 환경에서 작업하는 등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한편 베이징에서 승인된 발명 특허 건수는 매년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에만 11만9635건이 승인됐는데 전년 대비 10.9% 증가했다. 베이징은 1만 명당 159.81개의 고부가가치 발명 특허를 보유한 것으로 집계됐다. 푸쑹타오 중국전자정보산업발전연구원 미래산업연구센터 소장은 “중국은 현재 디지털화에서 지능화로 나아가는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며 “심층 지능화의 응용 실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있다”고 했다. AI와 로봇을 기반으로 한 심층 지능화가 생산 요소를 재구조화하고 산업 형태를 재편하고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