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다시 달을 향하고 있다. 미국의 ‘아르테미스 프로젝트’, 중국의 ‘창어(嫦娥) 계획’, 인도의 ‘찬드라얀 프로젝트’까지 달은 냉전 이후 반세기 만에 또다시 전략적 경쟁의 무대로 부상했다. 과거 미국과 소련의 양자 대결 구도가 이제는 다자 경쟁으로 확장됐다. 유럽, 일본, 중국, 인도 등 우주 강국은 물론이고 민간 스타트업들이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에 새로운 주자들도 합류하고 있다. 달 탐사와 자원 활용, 심우주 탐사를 중심으로 우주 경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우주의 ‘금광’ 달
인류가 달에 가는 이유는 경제적 이익 때문이다. 달은 헬륨-3와 희토류, 그리고 물이 매장된 ‘우주의 금광’이다. 헬륨-3는 핵융합 발전의 핵심 물질로 1g만 있어도 석탄 40톤에 맞먹는 에너지를 낸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달에 최소 100만 톤의 헬륨-3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달은 단순히 자원의 보고를 넘어 화성 및 심우주 탐사의 시험장 역할을 한다. 달 표면에 있는 물이 중요한 이유다.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리하면 로켓 연료로 전환할 수 있다. MIT는 “달에서 연료를 조달하면 발사비용이 혁명적으로 낮아진다”며 달을 ‘우주 주유소’로 지칭했다.
더 가벼워진 탐사선을 발사하면 전체 탐사 임무의 비용 절감 효과도 크다. NASA의 용역을 맡은 넥스젠스페이스는 “달 근처에 연료 급유 기지를 세우면 화성 유인탐사선 비용을 연간 100억 달러(약 11조6000억원)를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이에 각국은 달 탐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시장조사전문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4년 미국은 우주개발에 796억 달러의 예산을 투입했다. 중국은 198억 달러, 일본은 68억 달러, 러시아는 39억 달러를 기록했다. 한국의 예산은 10억 달러로 미국의 80분의 1, 중국의 20분의 1 수준이다.
NASA vs 트럼프, 흔들리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
미국은 아폴로 11호 이후 50년 만에 다시 달을 향한다. 달 탐사 프로젝트 ‘아르테미스(Artemis)’는 2026년 유인 달 착륙과 2028년 달 기지 건설을 목표로 한다. 장기적으로는 달을 거점 삼아 화성과 심우주로 확장한다는 구상이다.
아르테미스의 특징은 민간 중심 구조다. 스페이스X, 블루오리진 등이 수송과 인프라 개발을 맡고 NASA는 기술·국제 규범을 담당한다. 미국은 2020년 ‘아르테미스 약정’을 발표해 달 자원 채굴을 사실상 허용했다. 현재 한국을 포함해 55개국이 서명하며 달 탐사 국제협력 체계가 구축됐다.
그러나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는 재정적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핵심 발사체 ‘스페이스 론치 시스템(SLS)’ 개발에는 238억 달러가 투입됐다. 발사 한 번에 40억 달러 이상이 들며 재사용 로켓을 개발한 민간 기업 대비 경쟁력이 떨어진다.운영 구조도 복잡하다. SLS는 오리온(Orion) 캡슐을 달 궤도까지 보내면 별도의 착륙선을 이용해 우주인을 표면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NASA는 이를 위해 달 궤도 정거장 ‘게이트웨이(Gateway)’를 건설하려 하지만 건설비 50억 달러, 연간 유지비 10억 달러가 소요될 전망이다. “단순 환승센터에 수십억 달러를 쓰는 게 타당한가”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트럼프 행정부는 비효율을 이유로 구조 개편에 착수했다. 2026 회계연도 예산에서 NASA 전체 예산을 24% 줄여 188억 달러로 책정했다. 예산안에는 SLS와 오리온을 두 차례 발사 후 퇴역시키고 게이트웨이 건설을 전면 취소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로 인해 화성 샘플 회수, 금성 탐사 등 다수의 과학 프로젝트가 중단 위기에 몰렸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신 스페이스X와 블루오리진 등 민간 발사체·착륙선으로 우주개발 주체를 전환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조치에 NASA 내부는 거세게 반발했다. 지난 7월 22일 전현직 직원 336명은 “예산 축소는 NASA 임무를 약화시키고 과학 기반을 붕괴시킨다”는 ‘보이저 공개 성명’을 발표했다. NASA 직원들은 성명에서 “아르테미스 계획이 흔들리면 약정에 참여한 55개국과의 협력이 손상되고 미국의 우주 리더십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우주 G2 중국, 2050년 달 거점 전략 본격화
중국은 국가 주도형 장기 전략으로 우주 패권 경쟁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중국 국가우주국(CNSA)은 2050년까지 달 남극에 국제 연구기지를 세우고 화성·목성 탐사로 활동 범위를 확장할 계획이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창어’이다. 창어는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달의 여신의 이름이다.
최근에는 CNSA가 세계 최초로 우주 급유 기술을 실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우주물체 추적 기업인 콤스포크(COMSPOC)는 “중국 인공위성 ‘스젠 21’과 ‘스젠 25’가 서로 가까이 접근하는 모습이 감지됐다”며 “(고도 약 3만6000km의) 정지궤도에서 두 위성 간에 연료를 주고받는 것으로 추정되는 모습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해당 장면은 콤스포크의 광학센서를 통해 목격됐다. NASA는 최근 보고서에서 “우주 급유는 군사적 활용 가능성이 크다”며 “정찰위성이 연료 제약 없이 작전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올해 발표된 ‘중장기 우주과학 발전계획’은 중국의 전략을 구체화한다. 이 계획은 2024년부터 2050년까지 3단계 로드맵으로 진행된다. 1단계(2027년까지)는 우주정거장 운영과 유인 달 탐사, 달 탐사 4단계 임무에 집중하며 2035년에는 달 남극에 국제연구기지를 건설하고 약 15개의 과학 위성 임무를 수행한다. 2036~2050년에는 30개 이상의 우주과학 임무가 예정돼 있다.
린시첸 중국유인우주국(CMSA) 부국장은 “앞으로 10년간 중국 우주정거장은 첨단기술 개발과 국가 전략 수요 충족, 국민 건강과 복리 증진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우주 생명과학, 미세중력 물리, 우주천문학, 신기술 응용에 대한 연구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2045년 달 경제기지 건설 내세운 우주항공청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다른 주요국들도 달 개발 경쟁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인도는 2023년 8월 찬드라얀 3호를 달 남극에 착륙시키며 미국·소련·중국에 이어 네 번째 달 착륙국이 됐다.
일본은 2023년 1월 정부 주도의 무인 탐사선 슬림을 통해 달 착륙에 일부 성공했다. 최근에는 민간 기업의 주도로 달 착륙에 나서고 있다. 일본 기업 아이스페이스(iSpace)는 2023년 4월에 이어 지난 6월에도 달 착륙에 실패했지만 2027년 두 차례 재도전을 예고한 상태다.
한국은 2022년 다누리(KPLO)를 발사해 달 궤도에 진입하며 세계 7번째 달 궤도 탐사국이 됐다. 의미 있는 첫발이지만 아직 착륙 경험은 없는 상황이다.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우주항공청은 7월 17일 ‘대한민국 우주탐사 로드맵’을 발표하며 반격의 신호탄을 쐈다. 로드맵은 ‘2045년 달 경제기지 건설과 화성 착륙선 개발’이라는 야심 찬 목표를 내세웠다. 구체적으로는 ▲2030년대 초 한국형 우주망원경 개발 ▲2035년 화성 궤도선 발사 ▲2040년 소행성 탐사 ▲2045년 달 경제기지 구축이라는 5개 핵심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항공우주청은 ‘과학 실험실’ 수준의 탐사를 넘어 우주산업의 전초기지를 구축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윤영빈 우주청장은 “민간 중심의 우주 생태계 조성과 국제협력으로 미래 세대의 기반을 만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