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韓 반도체 기업 지분 확보 검토…간섭 우려
'인텔 논란 블러핑', '韓 압박 카드' 해석…"한미회담서 풀어야"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인텔에 이어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대만 TSMC 등 자국 내 투자 중인 해외 반도체 기업의 지분 취득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반도체법(칩스법)에 따라 확약한 보조금을 '회사 지분'과 교환하겠다는 발상인데, 보호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 지분을 확보하면 기업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공산이 크다. 백악관 대변인의 표현처럼, 미국 관세에 이어 '창의적인' 제2 복병이 돌출한 형국이다.
트럼프, 보조금 대가로 '지분' 요구…백악관 "창의적 구상"
20일 외신 등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현재 미국에 투자를 진행 중인 반도체 기업의 지분을 미국 정부가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인텔에 109억 달러(15조 원)를 지원하는 대신 지분 10%를 인수겠다고 요구 중인데, 이를 삼성전자, TSMC, 마이크론 등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19일(현지시각) CNBC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점은 이렇다. '왜 1000억 달러 가치의 기업에 이런 돈을 주는가', '미국 납세자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가'이다"라며 "트럼프의 답변은 돈에 대한 대가로 지분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러트닉 장관은 보조금으로 취득한 지분은 '의결권 없는 주식'이라며 정부가 경영권에 개입할 가능성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이것은 경영권(governance)이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보조금을 트럼프 행정부의 지분으로 전환하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기자들과 만나 "러트닉 장관이 인텔과 정부 지분 10% 취득을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라며 "대통령은 국가 안보와 경제적 관점 모두에서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두고 싶어 한다. 이는 전례 없는 창의적인 구상"이라고 했다.
"美 정부 지분 섞이면 경영 간섭 불가피"
트럼프 행정부가 '지분 취득'을 실행에 옮길 경우 문제가 복잡해진다. 미 상무부는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에 47억 5000만 달러(약 6조 6415억 원), SK하이닉스에 4억5800만 달러(약 6404억 원)의 보조금을 주기로 확정했다. 마이크론은 62억 달러, TSMC 66억 달러씩이다.
예컨대 삼성전자의 이날 기준 시가총액은 416조 7425억 원인데, 트럼프 행정부가 보조금(6조 6415억 원)만큼 주식을 취득하면 약 1.6%의 지분을 갖는다. 삼성전자 본사가 아닌 미국 법인의 지분을 취득한다면 미국 정부의 지분율이 훨씬 커질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실제로 삼성전자의 지분 취득을 시도할지, 지분을 취득한다면 본사 지분인지 비상장사인 미국 법인인지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칩스법 조항에서 보조금으로 지분 취득이 가능한지에 대한 유권해석도 필요한 문제"라고 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인텔처럼) 의결권이 없는 지분을 획득하더라도 트럼프 행정부가 (삼성전자의)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다는 의미는 매우 부담스러운 대목"이라며 "어떤 식으로든 경영 의사결정에 영향이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
'정무적 계산' 해석 일단 무게…한미회담 숙제 늘었다
산학계는 트럼프 행정부의 '지분 취득' 시도에는 정무적 계산이 깔려 있다고 본다. 지분 취득 대상 기업을 확대해 '인텔 국영화 논란'을 잠재우려 한다는 분석이 가장 먼저 제기된다.
여기에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지분 취득 가능성을 띄워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가 인텔 지분 10% 인수 검토에 나서자 시장에선 '불공정 논란'이 튀어나왔다. 미국 정부가 인텔 지분을 보유함으로써 사실상 '국영 기업화'하고, 이를 토대로 자국 빅테크나 팹리스의 인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수주를 사실상 강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센 '트럼프 청구서'를 위한 압박 카드란 해석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명 정부가 한미정상회담에서 발표할 대미 투자에서 마스가(MASGA·한미 조선협력 프로젝트)를 앞세울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 말고 반도체도 있다, 다른 선물도 가져오라'는 시그널을 발신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계는 지분 요구가 가시화되지 않은 만큼 입장 표명 없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요구가 없는 상황에서 입장을 밝힐 상황은 아니다"며 "지분 종류와 취득 방식 등에 따라 대응 방식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재명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