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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이 넉 달 만에 장 중 1410원대까지 올라선 9월 26일 서울 명동 시내 환전소에 환율이 표시돼 있다.
원·달러 환율이 넉 달 만에 장 중 1410원대까지 올라선 9월 26일 서울 명동 시내 환전소에 환율이 표시돼 있다.

 

최근 환율 전망은 그야말로 안갯속.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과 지정학적 긴장 등으로 투자 전략을 세우기조차 쉽지 않다. 이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강한 달러를 선호하지만 약한 달러가 훨씬 많은 돈을 벌게 해준다”고 발언하며 시장에 혼재된 신호를 던진 것도 투자자들의 고민을 깊게 한다(지난 7월 25일).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달러와 엔화에 투자한 이들은 글로벌 정세와 시장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달러를 계속 보유해야 할까’, ‘지금 엔화를 사야 할까’, ‘달러와 엔화의 매수 시점은 언제일까’ 등의 질문을 이어가고 있다.

 

◆달러 약세? 결국엔 강달러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 9개월. 이 기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1973년=100)는 10% 이상 하락했다. 올해 초 110포인트를 넘었던 달러지수는 10월 1일 기준 97.71포인트를 기록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집권 이후 줄곧 약달러 신호를 시장에 흘려왔다. 제조업 부활을 앞세워 백인 노동자들의 지지를 결집한 트럼프 대통령은 “강달러는 제조업의 재앙”이라고 못 박으며 미국 중앙은행(Fed)을 정면으로 압박했다. 제롬 파월 의장을 공개적으로 흔들고 측근을 Fed 이사로 앉히며 금리인하를 밀어붙였다. 결국 Fed는 지난 9월 트럼프 집권 후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낮췄고 시장은 연내 두 차례 추가 인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통상 자국 통화 약세는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끌어올린다.

 

재정적자 관리도 약달러 선호의 배경으로 꼽힌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지난 7월까지 1조6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전년(같은 기간) 적자보다 1090억 달러 늘어난 것이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하며 재정적자 문제를 짚었다. 월가의 거물 하워드 막스 오크트리캐피털 회장은 “미국은 청구서가 없는 신용카드를 쓰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장기금리 인하에 집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정적자를 덮으려면 국채 발행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금리가 오르면 조달 비용이 커지기 때문이다. 

 

최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일본에 “금리를 안 올리느냐”고 압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의 장기 금리가 오르면 미국 국채의 매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투자자들은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움직인다. 결국 미국도 국채 매력을 유지하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 즉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약달러 발언은 실제 정책 기조라기보다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카드’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전 세계 공장을 미국으로 오라든가, 관세를 때린다든가 등의 정책들이 결국 달러 강세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또 달러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선 강달러가 필요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달러가 실제로 급락 조짐을 보일 때마다 신속히 진화에 나섰다. 

 

미국은 그동안 ‘강달러’로 금융업계와 백악관 모두에 이익이 되는 구조를 누려왔다. 달러가 강세를 유지하면 미국은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동시에 불어나도 각국 정부와 투자자들이 꾸준히 미 국채를 매입했다. 국채 가격이 올라 금리는 낮아졌고 이는 미국 증시를 떠받쳤다. 또 기축통화 지위를 활용하면 국제 제재나 외교적 압박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

 

미국이 달러패권을 손에 쥐고 있는 한 세계는 달러를 필요로 하고 강달러 체제는 반복적으로 복원됐다. 이 때문에 달러는 언제 어디서든 보유하고 싶은 안전자산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닷컴버블 붕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미국 신용등급 강등 등 위기 때마다 달러는 오히려 상승했다.

미국 달러인덱스 추이
미국 달러인덱스 추이

 

◆1350이 보이면 달러를

 

전문가들은 내년 상반기까지 달러가 완만하게 우하향할 것으로 봤다. 다만 달러는 원화 대비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태형 우리은행 TCE시그니처센터 PB는 “과거처럼 환율이 1300원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원화 가치 상승)은 낮다”며 “달러 저점을 노리기보다는 급락 시 매수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환율이 1350~1360원 수준까지 내려가면 달러 비중을 늘릴 적기”라며 투자 비중을 적게는 20%, 많게는 60%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천했다.

 

9월 30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 오후 3시 30분 주간종가 대비 5.50원 오른 1406원에 마감했다. 한·미 양국이 환율 정책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환율 합의를 마무리했지만 관세 협상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환율 불안이 계속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BOJ 10월 금리 인상할까

 

올 초만해도 일본 엔화는 강세였다. 일본 원·엔 환율은 지난해 7월 일본 중앙은행(BOJ)의 깜짝 금리인상을 기점으로 꾸준히 올라 1000원선을 넘어서기도 했다. 가격이 낮았을 때 엔화를 사모으거나 일본에 상장된 미 국채에 투자(엔화 강세에 고수익 상품)한 ‘엔테크족’들은 너도나도 차익 실현에 나섰다. 반대로 엔화를 빌렸던 이들은 높아진 이자 부담에 상환을 서둘렀다.

 

그런데 몇 달 사이 분위기가 급변했다. 최근 엔화는 주요 통화 대비 약세를 보이고 있다. 스위스 프랑 대비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고 유로화와 비교해서도 바닥권에 근접했다. 영국 파운드, 브라질 헤알, 멕시코 페소 대비로도 연중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다만 달러와의 환율은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달러가 연내 미국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으로 약세를 보인 영향이다.

 

일부 시장에서는 글로벌 헤지펀드 등이 과거처럼 엔 캐리 트레이드를 재개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팔고, 금리가 높은 다른 통화를 매수해 차익을 노리는 전략이다.

 

엔화 약세의 배경에는 일본의 마이너스 실질금리(물가 상승률이 금리보다 높아 돈의 실제 가치가 줄어드는 현상)가 자리 잡고 있다. 정치적 이슈도 작용했다. 적극 재정 정책을 주장해온 다카이치 사나에 전 일본 경제안보담당상이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해 차기 총리 취임이 유력해진 것(10월 4일). ‘아베노믹스(아베식 경기부양정책)’를 지지해온 다카이치 총재는 이번 선거전 기간 적자 국채 발행 증가도 용인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최근 시장에서는 BOJ가 10월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다카이치 총재의 취임으로 금리 인상 시점이 뒤로 미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BOJ는 앞으로 국내외의 경기·물가 동향뿐 아니라 내부의 조기 인상 요구와 정치적 변수까지 두루 살피며 금융정책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평가했다.

 

일반적으로 금리가 오르면 자국 통화의 매력이 커져 가치가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좁혀지는 미국과 일본 금리 격차
좁혀지는 미국과 일본 금리 격차

◆엇갈린 전망, 900원이 무너지면 적기?

 

엔화의 향방을 두고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다. 골드만삭스, 노무라 등 엔고에 무게를 두는 쪽에서는 올해 말 엔화 시세가 달러당 135엔대까지 갈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금리인하에 BOJ의 금리인상이 더해져 엔·달러 환율이 하락한다(엔화 가치 상승)는 것이다. 지난 9월 엔·달러 환율은 147~149엔 선에서 움직였다.

 

반면 현재 수준의 엔화 약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본이 가파르게 금리를 올리지 않는 한 미국과의 정책금리 차가 큰 폭으로 변화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미즈호은행 등은 엔 시세가 149엔대에서 움직일 것으로 전망했다.

 

박 PB는 엔화 투자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일본은 부채가 많아 금리를 큰 폭으로 인상하기 어렵다”면서도 “그럼에도 엔화는 여전히 주요 통화이고 일본 국채 대부분은 자국민이 보유하고 있어 금리 인상으로 비용 부담이 늘어도 큰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장 상황을 지켜본 뒤 원·엔 환율이 900원 선을 깨면 그때 매수하는 전략을 권한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국가부채는 2025년 3월 말 기준 약 1324조 엔(GDP 대비 234.9%)으로 선진국 중 가장 높다. 재정적자로 허덕이는 미국(2024년, GDP 대비 약 124%)의 두 배 가까이 되는 수준이다. 

 

10 1(서울 외환시장) · 환율은 954.73원에 마감했다. 원화와 엔화를 직접 교환하는 시장은 따로 없어 · 환율은 ·달러 환율과 ·달러 환율을 이용해 간접 계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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