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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리지 투자 연쇄청산 
시장 공격 의혹도

 

세계 암호화폐 업계는 지난 10월 10일을 ‘크립토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 추수감사절 직후 진행되는 대규모 세일이 아닙니다. 증시가 폭락할 때 쓰는 그 ‘블랙’입니다. 코인 시장이 대대적으로 무너지면서 문자 그대로 ‘검은 금요일’이 된 것입니다.

 

실체와 전모는 아직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날 일어난 여러 사건을 되짚어보면 그 키워드는 폭락 하나에 그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되는 것만 보더라도 달러 환율 5000원 돌파, 트레이더의 사망, 시장 조작 의혹, 막대한 투기 이익 등 충격적 단어들이 난무합니다. 이날은 아마도 나중에 코인 시장의 역사에 한 챕터를 차지할 것이며 그 전체 윤곽이 명확히 밝혀져야 합니다.

 

미·중 관세전쟁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폭락

코인 시장 데이터 기업 코인글래스는 24시간 동안 190억 달러어치 포지션이 청산됐다고 분석했습니다. 손실을 본 투자자는 16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암호화폐 역사상 최대 규모입니다. 비트코인 가격이 12% 하락했고 일부 알트코인은 최대 80%까지 급락했습니다.

 

대개는 미·중 관세전쟁이 재개됐다는 시장의 판단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중국이 미국에 대한 희토류 수출 제한 방침을 밝혔고 이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대해 100% 추가 과세로 반격에 나선 때였습니다. 관세전쟁에 다시 불이 붙은 것으로 받아들인 자금 시장은 모두 요동쳤습니다. 주말이 지나고 한국경제신문의 1면 머릿기사 제목은 ‘미·중, 또 벼랑 끝 무역전쟁…금융시장 휘청’이었습니다.그런데 이상합니다. 이 기사를 보면 S&P500 지수는 2.71%, 나스닥 지수는 3.56% 하락했습니다. 그런데 비트코인만 10% 넘게 떨어졌습니다. 비트코인이 과도하게 하락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코인 시장 청산 규모 190억 달러 또한 코로나19 폭락 때 12억 달러, FTX 붕괴 때 16억 달러와 비교하면 과도합니다. 이번 비트코인의 급락은 관세전쟁만으로는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급격한 하락의 직접적 원인은 레버리지 포지션의 연쇄 청산이었습니다. 사후약방문처럼 나오고 있는 분석가들의 복기 작업을 보면 당시 시장은 매우 과열되어 있었습니다. 비트코인 가격은 10월 6일 12만6000달러를 넘기면서 새로운 최고가를 기록한 상태였습니다. 미국 정부 셧다운 이후 연준이 금리를 내릴 것이란 기대감 덕분이었습니다. 연말까지 랠리를 이어갈 수 있다는 낙관론이 팽배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선물 시장입니다. 레버리지로 상승장에 베팅을 하면, 다시 말해 증거금을 담보로 돈을 빌려 더 많은 코인을 사면 하락장에서 증거금보다 큰 손실이 발생할 때 투자자는 증거금을 모두 잃게(청산당하게) 됩니다. 하락장에서 청산은 불가피하고 하락이 이어지면 청산도 연쇄적으로 이뤄집니다.

 

과열된 시장과 연쇄 청산의 악순환

문제는 변동성이 심한 코인 시장의 참가자들은 레버리지에 대한 감각이 원체 다르다는 것입니다. 레버리지 20~30배 투자도 적지 않습니다. 게다가 주식시장에선 청산 전에 투자자에게 증거금 추가를 요구하는 마진콜 제도로 어느 정도 안전장치가 있는 것과 달리 코인 시장은 알고리즘에 따라 자동으로 청산이 이뤄집니다.이번에 일어난 상황이 그랬습니다. 코인 시장 상승 기대감 속에 고(高)레버리지 주문이 몰려들었습니다. 폭락 직전 미결제 약정은 940억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락이 시작되자 걷잡을 수 없는 가격 하락이 일어났다는 분석이 가능합니다.

 

또 다른 원인은 이번 폭락장에서 바이낸스, 코인베이스, 로빈후드 등 주요 코인 거래소에서 기능 장애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가장 거래량이 많은 바이낸스에서는 가격이 곤두박질쳤던 한국 시각 11일 오전 6시에서 7시 사이 비트코인 매도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습니다. 선물 시장에서 촉발된 연쇄 청산으로 현물 시장에서도 코인 가격이 떨어지는데 투자자들은 대응을 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달러 기준 스테이블코인인 에테나랩스의 USDe가 0.65달러까지 하락했고 일부 알트코인은 0달러로 표시되는 현상도 있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의 가격이 하락하면 담보 가치가 하락하게 되므로 의도치 않은 청산이 일어납니다. 바이낸스는 나중에 이 같은 이상 거래 피해자들을 파악해 2억8300만 달러를 보상 처리했습니다.

 

시장에 유동성이 충분히 있었다면 주문 가격을 촘촘히 메워서 우하향 기울기가 조금이라도 완만해졌겠지만 코인 시장의 유동성은 이번에도 수직낙하를 못 버텼습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빗썸에서 스테이블코인 테더(USDT)의 가격이 장중 5755원까지 오르고 업비트에선 트럼프 일가의 회사에서 발행한 스테이블코인 USD1이 장중 1만원까지 올랐습니다. 역시 유동성이 뒷받침하지 않는 상황에서 나타난 이상 현상이었습니다.

 

의혹의 그림자, 시장 조작 가능성

 

비극적인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코인 투자 인플루언서 콘스탄틴 갈리치는 람보르기니 차량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그가 사망 전날 가족에게 재정적 어려움으로 우울함을 느낀다며 작별 인사를 남겼다고 밝혔습니다. 갈리치는 이번 폭락장 속에 투자자들의 자금 3000만 달러를 손해 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그런데 정반대로 폭리를 취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트럼프 발표 직전 매도 포지션을 취해서 1억6000만 달러어치 이익을 취한 트레이더가 있었습니다. 탈중앙화 거래소 하이퍼리퀴드의 계정 2개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가격 하락에 베팅했는데 시점이 트럼프의 추가 관세 발표 1분 전이었습니다. 트럼프의 보복 조치를 예상할 수 있는 시점이었으므로 우연의 일치일 수 있지만 백악관 내부 정보를 접한 누군가의 소행일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아예 시장이 공격당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심각한 가격 하락이 촉발된 곳은 바이낸스와 일부 코인이었고 바이낸스가 이들 코인의 가격 책정 메커니즘을 업데이트하겠다고 공지한 기간에 일어났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의 디페깅, 스프레드 확대, 일부 세력의 막대한 수익 등이 동시에 일어난 것은 우연이기 힘들다는 시각입니다.최악인 것은 전체 피해 규모가 지금 파악된 것보다 클 수 있다는 점입니다. 거래소들이 청산 관련 데이터를 좀처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코인 시장은 여전히 어리고 미숙한 곳인가 봅니다. 과도한 레버리지, 불충분한 유동성, 거래소의 기술적 한계, 투명성 부족, 그리고 시장 조작 가능성까지. ‘크립토 블랙 프라이데이 코인 시장이 진정한 성숙을 위해 해결해야 과제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날로 기억될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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