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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24일 코스피가 처음으로 2000선을 돌파했다. 그로부터 한국 증시는 오랫동안 ‘2000의 늪’을 벗어나지 못했다. ‘3000 시대’를 잠시 열었던 2020~2021년 코로나 장세를 제외하면 근 16년 동안 ‘박스피’(박스권 코스피)라는 오명을 안고 살아야 했다.

 

지난해만 해도 세계 주요국 증시가 훨훨 날던 것과 반대로 한국의 주가상승률은 오히려 마이너스였다. 하지만 올해 들어 판이 완전히 뒤집혔다.

 

이재명 정부 출범일인 6월 4일 코스피는 2770.84였다. 불과 보름 만에 3000선을 회복했고 6월 24일 3100, 7월 14일 3200을 돌파했다. 9월 10일 3300에 이어 15일에는 사상 처음으로 3400선을 넘어섰다. 10월 들어 상승세는 더 거세졌다. 2일 3500, 10일 3600, 16일 3700, 그리고 20일에는 3800선을 뚫었다. 3900선을 넘는 데는 그로부터 3일이면 충분했다.‘연일 사상 최고치’라는 헤드라인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졌고 코스피는 시가총액 3000조원 시대에 진입했다.

 

그 결과 올해 코스피 상승률은 무려 59%. 미국 나스닥(19.5%)과 S&P500(14.8%)은 물론 중국 항셍(32.6%), 일본 닛케이225(25.5%), 이탈리아 FTSE MIB(24.1%), 대만 자취안(21.6%) 등을 제치며 세계 주요국 증시 가운데 상승률 1위를 기록 중이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하나로 모인다. “코스피 5000까지 가능할까.”한경비즈니스는 국내 자본시장 최전선에 있는 증권사의 리서치센터장 15인에게 ‘코스피 5000을 위한 시대의 조건은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다.

 

10월 20~21일 양일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결과적으로는 ‘반도체주의 상승’과 ‘지배구조 개선’, ‘투자 환경’이 뒷받침돼야 코스피 5000으로 나갈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핵심 변수 ‘AI 사이클’ 

한경비즈니스가 던진 첫째 질문은 ‘현 정부 임기 내 코스피 5000 가능성’이었다. ‘불가능하다’는 응답은 한 건도 없었고 ‘가능성 낮다’는 의견은 6.6%에 그쳤다. 응답자의 73.3%가 ‘일정 부분 가능하다’고 답했고 ‘매우 가능’하다는 의견도 20%에 달했다. 대부분이 향후 수년 내에 코스피 5000 돌파를 현실적 시나리오로 보고 있음을 보여줬다.

 

다만 이는 전제 조건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AI 투자, 주주친화정책 시행 및 안착, 머니무브 유인책,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 등 조건이 맞물려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 중에서도 핵심 변수로 꼽힌 것은 ‘AI 투자 사이클의 지속’이었다. 

 

조수홍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지금의 증시는 단순한 유동성 장세가 아니라 산업 구조가 재편되는 ‘질적 강세장’”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1990년대 IT 산업 설비투자(CAPEX)가 급증하며 기업가치 평가(PER)가 확장했던 시기와 비슷한 흐름이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의 AI 가치사슬에 연결된 산업과 국가는 주가가 더 오르겠지만 전통 산업 중심 국가는 평가절하가 계속될 것”이라며 “결국 이번 상승장은 AI 투자 사이클이 정점에 달할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AI 투자 사이클이 이어지면 수혜는 자연스럽게 반도체주로 집중된다. 반도체주는 한국 증시를 떠받치는 핵심 역할을 한다. 시가총액 1·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코스피 전체 시총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실제로 삼성전자 시총은 9월 초 400조원에서 10월 중순 580조원으로 180조원 늘었고 SK하이닉스 시총도 152조원 넘게 증가했다. 이 기간 유가증권시장 시총은 2500조원에서 3000조원으로 500조원 늘어났다. 두 종목이 시총 증가분의 65% 이상을 책임진 셈이다. 결국 이번 상승장은 ‘AI 투자 사이클 지속→삼성전자 주가 상승→코스피 상승’이라는 구조적 논리가 확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주환원 정책 시행과 기업들의 행동 변화’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견도 뒤따랐다. 응답자들은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범위가 확대되고 전자적 주주총회 의무화와 감사위원 선임 시 소액주주 영향력 확대 등으로 지배구조가 개선되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이진우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1·2차 상법 개정과 세법 개정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을 상당 부분 개선했다”면서도 “자사주 소각 의무화와 배당소득 최고세율 완화 등 아직 남아 있는 개선 과제가 해소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국회에서는 여당을 중심으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제3차 상법 개정을 논의 중이다. 정부는 정치권과 함께 고배당 기업의 배당소득 분리과세 최고세율을 정부안(2025년 세제개편안) 35%보다 낮은 25%로 조정하고 분리과세 시행 시기를 올해로 앞당기는 방안도 검토할 전망이다. 상속세율 완화 필요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재처럼 주가를 기준으로 상속세를 부과하기보다 기업의 본질가치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 상속세율은 10~50%로 5단계 누진구조다. 최대주주 주식은 할증평가로 최고 60%까지 적용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이재명 정부 임기내 '코스피 5000' 달성 가능성
이재명 정부 임기내 '코스피 5000' 달성 가능성

 

코리아 프리미엄시대, 투자자 유인책 관건

투자자 유인 환경도 중요한 전제 조건으로 꼽혔다. 전문가들은 초강력 부동산 규제로 시장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는 만큼 그 자금이 자본시장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진우 센터장은 “개인연금저축을 활용해 한국 주식에 투자할 경우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 등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개인뿐 아니라 외국인 자금의 한국 주식 머니무브가 지속돼야 코스피 5000을 달성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9월 이후 외국인 투자자의 ‘K주식 쇼핑’이 이어졌다. 두 달간 순매수 규모만 13조원에 달했다. 이 중 삼성전자와 삼성전자 우선주가 10조원을 차지했다. 삼성전자는 ‘10만전자’를 눈앞에 두고 있다.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위한 제도 정비도 시급한 과제로 꼽혔다. 조수홍 본부장은 “2025년 말까지 MSCI 선진국 지수 편입 로드맵을 발표하고 2026년 이행을 통해 외국인 투자자의 선제적 유입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고 윤여철 유안타증권 리서치센터장도 “외환시장 선진화와 시장 투명성 제고 등 편입 조건을 충족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전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끝내고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를 열겠다”며 MSCI 선진시장 편입을 위한 종합 로드맵을 연내 발표하겠다고 지난 9월 밝힌 바 있다.

 

◆미국 증시 호황 없어도 코스피 날아갈까

‘미국 증시 사상 최고가 없이도 코스피 5000 달성 가능할까’에 대한 질문에 전문가들의 시각은 팽팽히 갈렸다. ‘가능하다’는 응답이 53.3%, ‘불가능하다’는 응답이 46.6%였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과 박영훈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관세 문제 타결과 대미 협상 결과가 한국 증시에 큰 영향을 준다”고 진단했다.김학균 센터장은 “한국 증시는 여전히 저평가 메리트가 크고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고유의 호재도 존재한다”며 “미국 증시가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우리 증시만으로) 사상 최고가 경신도 가능하다”고 봤다. 다만 “미국이 크게 조정을 받을 경우 한국이 독자적으로 상승하는 디커플링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코스피 전망
코스피 전망

◆향후 6개월 코스피 평균 전망 ‘3400~4170’

향후 6개월간 코스피 전망은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다. 15명의 자본시장 전문가들이 제시한 평균 코스피 밴드는 3400~4170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슈퍼사이클 진입과 수출 호조에 따른 실적 개선 등을 근거로 상방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평가했다. 이 중 윤여철 유안타증권 센터장은 상단을 4400까지, 하단은 3500으로 가장 높게 잡았다.

 

고태봉 iM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담 전후 미·중 갈등 완화 여부, 한·미 관세 타결, 긍정적 반도체 사이클, AI 3대 강국 프로젝트 기대, 원화 약세에 따른 외환 효과 등이 모두 결실을 맺는다면 상단은 4250까지 열 수 있다”며 하단은 3300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리스크 요인으로 국내 부동산 가계부채 문제, 미국 중앙은행의 금리인하 중단, AI 관련 버블 우려 등으로 인한 투자 모멘텀 약화를 지목했다. 김현 다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연내 강세장을 예상한다면서도연초 미국 중앙은행이 진행한 금리 인하가 끝나는 시점에는 주가가 지금처럼 높게 평가된 부담이 해소될 있는지에 따라 증시 변동성이 커질 있다 분석했다. 그는 코스피 밴드 3280~4130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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