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들어 원·달러 환율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절대 수준은 1400원 선을 오르내리는 가운데 하루 변동폭도 베트남 동화 등 동남아시아 통화보다 크다. 외환위기가 발생했던 1990년대 후반과 원화의 이류 통화 우려가 제기됐던 2년 전처럼 대내외 충격에 완충 능력이 떨어진 여건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 누적된 잠재 환율 변동 요인이 늘어난다
국내 외환시장에서 이상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올해 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달러인덱스는 1차 한·미 간 관세 협상이 마무리됐던 지난 7월 말까지 10% 정도 하락했다. 하지만 달러인덱스와 같은 방향으로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던 원·달러 환율은 오히려 1390원대로 상승했다. 환율 수수께끼 현상으로 1차 이상 조짐이다.
8월 이후에는 대내외적으로 변동 요인이 많았지만 원·달러 환율의 중심선(pivot)은 1390원에서 크게 이탈되지 않았다. 일종의 카무플라즈 현상으로 마치 관세 협상이 잘되고 외환시장이 안정된 것처럼 착각을 들게 하는 2차 이상 조짐이다. 이 기간에 누적된 잠재 환율 변동 요인, 즉 숨겨진 바퀴벌레는 더 많아졌다.
2년 만에 재개된 미국 지방은행 사태에 JP모간 제이미 다이먼 회장이 경고한 것을 계기로 다시 거론되고 있는 바퀴벌레 이론의 골자는 이렇다. 부엌에 바퀴벌레 한 마리가 발견되면 그 속에는 떼가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잠재 부실 등이 터지기 전에 대책을 마련해 놓아야 금융위기를 방지할 수 있다는 위험관리론이다.문제는 지난 10월 중순 이후 카무플라즈 기간에 누적됐던 바퀴벌레가 속속 벽장을 뚫고 나오고 있다. 가장 먼저 달러인덱스 산출에 숨겨졌던 달러 강세 요인이 제자리를 찾고 있다. 이 지수는 구성 비중이 58%(영국 파운드화 등 다른 유럽 통화를 합치면 74%)에 달하는 유로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면 올라가고 강세를 보이면 떨어지는 비밀을 갖고 있다.
아베 신조 사후 벽장 속에 숨겨졌던 아베노믹스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엔저 정책을 표방한 다카이치 사나에 정부 출범 이후 엔·달러 환율이 오르기 시작해 154엔마저 넘어섰다. 종전보다 약화되긴 했지만 2023년 이후 원화와 엔화의 상관계수는 0.3% 내외로 추정된다. 외환위기 당시 낙인효과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초에 열렸던 전승절을 계기로 대미 협상에 공세적으로 나가고 있는 중국은 4중 전회가 끝나자마자 위안화 절하를 포함한 종합 경기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네 번째 연임 확정으로 종신 집권 체제를 구축한 시진핑 주석이 인민의 경제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원화와 위안화 간 상관계수는 0.6으로 교역국 통화 중 가장 높게 나온다.내부적으로도 숨겨진 커다란 바퀴벌레가 있다. 대미 투자 3500억 달러는 대외순자산 대비 33%, 외환보유고 대비 84%에 이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단기간 현금으로 넣으면 제2 외환위기가 발생할 확률이 높은 규모다. 관세 협상 타결을 놓고 막바지까지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원·달러 환율이 올라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려되는 것은 앞으로 원·달러 환율 상승과 외국인 자금 이탈 간의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관건은 증시다. 올해 들어 가파르게 올랐던 한국 증시가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 이후 원·달러 환율과 외국인 자금 움직임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극과 극으로 양분화되고 있다.
코스피 지수가 5000을 넘어 6000까지 가능하다는 낙관론은 이재명 정부의 친증시 정책 의지가 강한 만큼 단발성에 그쳤던 종전과 달리 집권 내내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우선적으로 꼽고 있다. 탈법정화폐 거래가 확산돼 실질가치와 화폐 기능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금과 함께 주식이 선호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낙관론의 근거다.
하지만 코스피 지수가 다시 3000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는 비관론은 마이크로 펀더멘털(micro fundamental) 면에서 PER(주가수익비율)로 본 주가 수준이 이제는 고평가 국면이 들어섰다는 점을 들고 있다. 매크로 펀더멘털(macro fundamental) 면에서도 잠재 성장률이 하락 속에 올해 성장률이 1% 내외로 낮아져 주가는 내릴 수밖에 없는 것도 또 다른 근거다.
◆ 누적돼온 바퀴벌레 떼를 잡지 못하면
낙관론과 비관론, 한국 증시가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후자의 근거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증시가 고평가 잣대인 PER 등은 주가 수준을 사후적으로 평가하는 것이지 미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 예상 PER 등으로 보완하고 있지만 늘어난 예상 이윤이 미래를 대비하는 투자성 비용을 줄인 결과라면 오히려 주가는 떨어진다.성장률도 그렇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속에 실제 성장률은 계단식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코스피 지수는 추세적으로 상승하는 가운데 올해 들어서는 세계 1위가 될 정도로 빠르게 오르고 있다. 잠재와 실제 성장률이 오르지 못하면 이재명 정부가 목표로 하는 5000은 어렵다고 보는 시각에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지표만으로 주가를 예측하는 데는 또 다른 한계가 있다. 주가 등 금융변수가 실물경제 실상을 후행적으로 반영하는 얼굴이냐는 점이다. 양적완화(QE) 등으로 금융이 실물을 압도하기 시작한 금융위기 이후에는 주가 등 금융변수의 선도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그랜저 심즈 검증 등을 통해 실물경제와 주가 간 인과관계를 보면 역으로 나올 때가 많다.국민경제 3면 등가 법칙상 경기가 침체돼 있을 때 주가의 선도 기능을 살펴보면 친증시 정책으로 주가가 올라가면 생산 면에서 기업의 자금조달이 용이해져 공급 능력이 확대된다. 지출 면에서는 주가 상승에 따른 자산소득 효과로 확대된 공급 능력이 소진되면서 성장률이 올라간다. 경기 순환상 저점, 정점과 같은 전환점에서 주가의 선도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최근 들어 제3 경기대책으로 친증시 정책이 선호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정정책은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로, 통화정책은 기준금리와 시장금리 간 수수께끼와 유동성 함정으로 전통적인 케인즈언의 총수요 관리 대책이 한계를 맞고 있다. 대신 한국처럼 대주주 요건 완화,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 제도 개선을 통해 주가를 끌어올리면 경기를 살릴 수 있다.
친증시 정책으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왜곡된 시장 간 자금이동을 바로잡는 ‘미세 조정(fine tuning)’이다. 이재명 정부가 부동산에 쏠려 있는 자금을 증시로 유도하는 정책이 외국인을 중심으로 높게 평가받는 것이 이 근거에서다. 병목현상이 심한 여건에서 유동성 총량을 늘리면 부동산 투기, 물가 앙등 등의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앞으로 국내 증시 향방을 좌우할 외국인 자금 이탈 간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원·달러 환율의 임계수준은 달러당 1430원 내외로 추정된다. 그 이전까지는 친증시 정책에 대한 기대가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른 환차손 우려보다 높아 외국인 자금이 들어왔다. 하지만 10월 20일 이후 이 수준을 넘자 외국인 자금이 7조원 넘게 이탈하고 있다.
선제적인 대책이 요구되는 때다. 올해 들어 두 차례에 걸친 이상 조짐으로 누적돼온 바퀴벌레 떼를 잡지 못하면 원·달러 환율이 올라가고 외국인 자금이 이탈되면서 주가가 의외로 큰 폭으로 떨어질 수 있다. 조기경보체제(EWS)를 가동해야 하고 국가 간 혹은 내부적으로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해 놓아야 한다. 대미 투자 협상을 잘 마무리하는 것도 가장 중요한 과제이자 대책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환 리스크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