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상자산 인프라 시장에 빅테크와 대형 금융사가 줄줄이 뛰어들면서 변곡점을 맞고 있다. 네이버가 포괄적 주식교환으로 두나무(업비트)를 계열사로 편입하기로 한 데 이어, 미래에셋그룹도 코빗 인수에 나서는 등 가상자산 인프라 전쟁 서막이 올랐다는 분석이다. 그룹 편입, 인수 절차 등이 순조롭게 마무리되면 국내 플랫폼·자본 시장 1위 사업자가 가상자산 인프라 시장에서 맞불 경쟁을 벌인다. 특히, 미래에셋은 제도권 자본 시장 1위 사업자라는 점에서 코빗 인수 시도를 예사롭지 않게 보는 시각이 많다. 전문가들은 막강한 자본력과 기술력을 갖춘 대기업 진출로 국내 가상자산 시장 경쟁 구도가 거래량 중심에서 ‘웹3(Web3, 잠깐용어 참조)’ 패권 경쟁으로 고도화될 것으로 바라본다.

미래에셋, 디지털자산 사업진출
미래에셋컨설팅으로 ‘금가분리’ 우회
네이버에 이어 미래에셋그룹도 국내 4위 가상자산거래소 코빗 인수를 추진한다.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그룹 부동산 관리 계열사 미래에셋컨설팅은 코빗 최대주주 NXC와 2대 주주 SK스퀘어 등이 보유한 지분 전량 인수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현재 코빗 지분은 넥슨 지주사 NXC와 자회사 심플캐피탈퓨처스가 약 60.5%, SK스퀘어가 31.6%를 갖고 있다. 거래 규모는 약 1400억원대로 추산된다.
미래에셋그룹은 수년 전부터 가상자산 사업에 공을 들여왔다. 무엇보다 박현주 회장 의지가 남다른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지난해 10월 ‘미래에셋그룹 운용자산 1000조원 돌파’ 기념 행사에서 웹3 환경 변화를 언급하며 “디지털 기반 금융 혁신을 다시 한번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미섭·허선호 미래에셋증권 대표 역시 최근 신년사에서 “2026년을 미래에셋3.0 원년으로 삼을 것”이라며 “전통 금융을 넘어 디지털자산을 포함한 새로운 금융 질서로 전환을 선도하겠다”고 밝혔다. 미래에셋증권은 글로벌 디지털 ‘월렛(지갑)’도 개발 중이다.
네이버와 관계 균열을 미래에셋그룹의 디지털자산 독자 진출 배경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2017년 미래에셋증권은 네이버와 5000억원 규모 자사주를 맞교환하며 ‘자본 혈맹’을 맺었다. 2019년에는 미래에셋증권 등 계열사가 네이버파이낸셜에 8000억원을 투자해 2대 주주로 올라섰다.
그러나, 2021년부터 네이버가 하이브, 두나무 등과 손잡고 가상자산 밸류체인 구축에 나서자 불편한 기류가 감돈 것으로 알려진다. 네이버는 핀테크 자회사 네이버파이낸셜을 통해 두나무를 완전자회사로 편입한다. 미래에셋그룹은 네이버파이낸셜 2대 주주다. 시장에서 최대 13조원(NH투자증권 보고서)까지 평가됐던 네이버파이낸셜 가치가 주식교환 비율 산정 과정에서 4조9000억원으로 평가된 것도 미래에셋 눈높이에 한참 못 미쳤다는 평가다. 두나무 기업가치가 네이버파이낸셜을 훌쩍 웃도는 만큼, 신주 발행 과정에서 미래에셋 영향력 축소가 불가피하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가 가상자산 밸류체인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인 파트너인 미래에셋은 사실상 배제됐다. 그룹 수뇌부에서도 독자적인 플랫폼 확보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인수 주체는 미래에셋컨설팅이 유력하다. 미래에셋컨설팅은 미래에셋자산운용 지분 37%를 보유하고 있다. 미래에셋컨설팅은 박현주 회장이 지분 48.5%를, 박 회장 배우자인 김미경 씨가 10.2%를 보유한 가족회사다. 지난 2024년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연결 기준 1492억원, 별도 기준 490억원이다. 자체 현금만으로는 인수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미래에셋컨설팅을 인수 주체로 앞세운 이유는 2017년부터 적용된 ‘금융·가상자산 분리’ 원칙 때문으로 풀이된다. ‘금가분리’ 원칙은 은행·증권사 등 금융기관이 디지털자산을 보유하거나 매입·담보 취득·지분 투자를 금지하는 행정지도다. 미래에셋컨설팅을 앞세운 것은 이를 우회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미래에셋컨설팅은 골프장·호텔 운영 등을 영위하는 비금융사다.
코빗을 택한 배경을 두고는 여러 해석이 나온다. 당초 미래에셋그룹은 해외 가상자산거래소 인수도 물밑 검토했으나 가격 차이 등으로 불발된 것으로 알려진다. 고팍스는 지난해 10월 세계 최대 거래소 바이낸스에 인수됐다. 결국 매각설이 돌던 코빗 인수로 방향을 틀었다는 분석이다.
코빗 위상은 거래 규모만 놓고 보면 존재감이 거의 없다. 국내 원화거래소 점유율도 1% 미만으로 추정된다. 업비트, 빗썸, 코인원 등과 비교하면 상당한 격차다. 다만, 대기업 주주로 비교적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갖췄고 원화거래소 운영 경험과 대응 역량 축적 등은 장점으로 평가된다. 미래에셋그룹 역시 전통자산과 디지털자산을 잇는 교두보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려는 목적에서 코빗 인수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웹3 패권 경쟁 서막
빅테크 vs 제도권 금융
네이버-두나무에 이어 미래에셋-코빗 진영이 가시화하면서 국내 ‘웹3’ 패권 경쟁 구도에 격랑이 일 전망이다. 전자(前者)는 국내 1위 빅테크가 거래소를, 후자(後者)는 제도권 1위 금융사업자가 거래소를 편입하는 구조다. 네이버-두나무와 미래에셋-코빗 진영 모두 가상자산거래소를 끼고 있지만, 사업 전개 방향은 사뭇 다를 것이란 시각이 많은 이유다.
네이버-두나무 연합은 크게 네이버(모회사)-네이버파이낸셜(자회사)-두나무(손자회사)로 이어진다. 이를 두고 ‘한국형 페이팔+코인베이스’ 모델에 견주는 시선이 많다. 페이팔은 글로벌 결제망과 사용자 접점을 장악했다. 코인베이스는 가상자산·커스터디(Custody·수탁) 인프라를 기반으로 웹3 생태계를 확장 중이다. 수탁은 가상자산을 대신 보관·관리해주는 금융 인프라 서비스다. 기관투자자가 가상자산 시장에 들어오려면 수탁 인프라는 필수다.
네이버는 검색·콘텐츠·데이터·AI 모델·클라우드라는 플랫폼 핵심 자산을 갖췄다. 네이버파이낸셜은 연간 80조원 규모 결제망을 보유 중이다. 두나무는 글로벌 상위권 거래소 운영 경험과 블록체인 기술, 유동성을 갖췄다. 이들 기업 간 결합으로, 플랫폼-결제-자산거래를 하나의 사용자 경험과 데이터 흐름으로 묶는 ‘디지털 수직계열화’가 가능하다는 평가다. 이미 미국에서는 페이팔과 코인베이스를 축으로 웹3 금융 생태계가 무한 팽창 중이다. 경영환경 급변 상황에서 플랫폼·결제·거래 인프라를 동시에 갖춘 ‘연합 플랫폼’을 지금이라도 꾸리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 낙오자가 될 수 있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는 진단이다.
네이버-두나무 연합 실행 전략을 규정하는 키워드는 인공지능(AI)과 웹3다. 웹3는 플랫폼 등 개별 기업이 정보를 직접 관리하지 않고 이용자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데이터를 소유하고 정보를 유통하는 생태계다. AI는 다소 난해한 웹3에 대한 사용자 경험 확산 역할을 맡는다. AI 기술이 자산 거래·결제·보관 과정을 단순화해 직관적인 플랫폼 경험으로 바꿔 웹3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다는 논리다. 블록체인은 자산과 데이터의 이동·소유를 기술적으로 보증하고 AI는 방대한 거래·콘텐츠·결제 데이터를 분석해 추천·자동화하는 엔진 역할을 맡는 식이다.
미래에셋-코빗 진영은 이종자산 간 결합으로 신사업 확장·시너지를 노린다. 토큰증권(STO)부터 실물자산 토큰화(RWA), 기업금융 등을 망라하는 플랫폼 구축을 도모할 수 있다. ▲비상장·대체자산 토큰화 유통 ▲기관투자자를 전제로 한 가상자산 수탁·정산 체계 구축 ▲해외 자산과 국내 투자자를 잇는 신상품 설계 등이 이런 예다.
홍진현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미래에셋컨설팅은 비금융 지주·투자 플랫폼으로, 증권·운용 등 금융업을 직접 영위할 수 없다”면서 “그럼에도 해당 인수 주체로 나선 것은 단기거래소 수익이 아닌 중장기 디지털자산 인프라 확보 목적으로 해석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향후 기관용 디지털자산 브로커리지, 토큰화 증권(STO), 수탁·정산 연계 등 금융 계열사와 간접적 시너지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은행권도 웹3 패권 경쟁에 뛰어들 채비다. 금융위는 최근 국회에 보고한 ‘디지털자산기본법 주요 쟁점 조율 방안’에서 쟁점이 된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로, 은행 중심(50%+1) 컨소시엄부터 허용하기로 했다. 플랫폼 기업과 파트너십을 전제로 다양한 합종연횡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은행권에선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연계된 예·적금 사업 결합이 새 먹거리로 주목받는다. 이미 가상자산거래소 지분을 취득한 곳도 있다. JB금융그룹은 바이낸스에 인수된 고팍스 국내 출자자 가운데 주요 주주다. JB금융그룹은 JB우리캐피탈과 JB자산운용을 통해 투자를 단행했다. 가상자산 수탁 시장도 사업화 가능성이 높은 분야로 꼽힌다. 가상자산 보관, 결제, 흐름 관리는 은행 같은 전통금융 기관이 이질감 없이 뛰어들 수 있는 분야로 평가된다. 이미 주요 은행은 가상자산 수탁 시장에 지분 투자 등을 통해 간접 진출했다. 하나금융이 미국 가상자산 수탁사 ‘비트고’와 손잡고 차린 ‘비트고코리아’가 대표적이다.

현실화까진 험로 예상
거래소 지배구조 개편 파장
다만, 이 같은 전략을 현실화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가상자산거래소 지배구조에 대한 규제다.
금융당국은 가상자산거래소에 대해 현행 자본 시장 대체거래소(ATS)에 준하는 수준의 공공성을 갖추는 방안을 추진한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 등 지배구조 체계를 확립하고 소유 지분을 15~20%로 제한하는 방안이 뼈대다. 가상자산거래소를 한국거래소 같은 공적 금융 인프라로 보고 공공성을 부여하겠다는 취지다.
규제 현실화 땐 파장이 상당하다. 국내 5대 원화 가상자산거래소 최대주주는 지분 매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거의 모든 거래소가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두나무는 송치형 회장 지분율이 25.5%다. 빗썸은 빗썸홀딩스가 73.6%를 갖고 있다. 코인원은 창업자 차명훈 대표가 53.4%, 코빗은 NXC가 60.5%, 고팍스는 바이낸스가 67.5%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관련 안이 아직 법제화되진 않았지만, 네이버-두나무와 미래에셋그룹 등도 규제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운 것으로 알려진다. 자칫 인수 이후 대주주가 초과 지분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정부안대로 20% 이하 지분을 인수할 경우 경영권 확보가 어려워 거래 실익이 크게 떨어진다.
이런 이유로, 정부안 구체화 과정에서 적잖은 난관이 예상된다.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금융당국 방안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쏟아진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탈중앙화 블록체인 자산을 거래하려 가상자산거래소를 둔 것인데, 코인거래소를 ATS와 동등하게 생각한다는 발상 자체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라며 “금융당국의 블록체인에 대한 이해도가 아직도 낮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처사”라고 말했다. 이미 확립된 민간 기업 지분 구조를 사후 처분으로 강제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시각도 많다. 또 다른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충분한 검토나 업계 의견 수렴 없이 발표된 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
잠깐용어 *웹3 | 웹3는 이용자가 데이터와 자산을 직접 소유·통제하는 차세대 인터넷이다.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중개자 없이 거래·보관·정산이 가능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