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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기준금리 인상·물가 상승에 따른 경기침체 여파로 인해 정보통신(IT) 기술 업계 '거품 붕괴론'이 화두입니다.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이 붕괴됐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이죠. 막강한 플랫폼과 비즈니스 모델(BM)을 구축한 메타, 구글과 같은 글로벌 빅 테크마저 위기인데 신생 IT스타트업들은 상황이 더욱 어렵다는 분위기입니다.

 

실제로 작년 11월부터 전 세계적으로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각국의 금리 인상 기조 △인플레이션 공포 △경기침체 우려 △ 기술주 폭락 등이 맞물리면서 급감했습니다. 일시적 '투자 겨울'을 넘어 장기간 지속되는 '빙하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평가도 많습니다.

 

특히 거품은 가장 많이 오른 곳에서 가장 급격하게 빠지고 이는 상황입니다. 닷컴버블 시절 새롭게 등장한 인터넷이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던 것처럼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메타버스, 웹3.0, 블록체인, 대체불가토큰(NFT) 관련 스타트업들이 큰 주목을 받고 관련 투자가 급증했었죠. 상황은 급 반전하고 있습니다.

 

최근 만난 국내 한 블록체인 스타트업 창업자는 "지난 투자 라운드와 비교해 기업가치가 50~70%까지 깎여 투자가 추가 투자 유치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실제 생활에서 쓰이는 서비스가 없고, 수익 모델(BM)이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이 투자를 기피하고 있는 것이죠. 게다가 작년 '묻지마식 투자'로 뭉칫돈이 물렸던 각종 토큰, NFT 가격은 연초 대비 폭락한 상황입니다.

 

사실 업계에서는 메타버스 '거품론'에 대해 경고 메시지가 계속해서 나왔었죠. 게이브 뉴웰 밸브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초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메타버스를 이야기하는 사람 대부분은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고 일갈했습니다. 위정현 한국 게임학회장(중앙대 경영학부 교수)은 올해 초 발간한 '메타버스는 환상인가' 저서에서 "메타버스가 아직 까지 실체 하지 않는 환상인데, 이를 이용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부 세력들이 '혹세무민'(세상을 어지럽히고 사람들을 속임)하고 있다"고 비판했죠.

 

'거품은 꺼지지만 기술은 남는다'는 시각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메타버스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새롭게 일하는 방식과 새로운 시장기회가 생겨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일수록 관련 시장 기술, 사업모델, 경쟁력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죠. 반면 투자 측면에서는 메타버스, 블록체인, NFT와 관련해 아직 실체가 없기 때문에 신중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상당합니다. 관련 기술의 성장 잠재력만 믿고 '무지성 투자'를 하기보단 기술을 이해하고 옥석을 가려내는 작업을 우선해야 한다는 지적이죠.

딜로이트 메타버스 보고서
사진 : 딜로이트 인사이트 23호

 

◇메타버스 환상인가 미래인가···딜로이트 보고서

최근 한국 딜로이트 그룹은 '기회의 땅 메타버스로의 초대' 보고서를 내놓고 메타버스 시장 전망과 기업 대응 전략 등을 상세히 다뤘습니다. 딜로이트는 보고서에서 현 상황을 이렇게 진단합니다.

 

"메타버스는 유례없는 방식으로 산업화되고 있다. 첨단기술 혹은 4차 산업혁명 기술로 회자되는 대부분의 ICT기술이 메타버스 세계 구현을 목표로 모여들고 있다. 아직은 글로벌 선진 기업들도 메타버스 진입방식과 사업 모델 면에서 확실한 해답을 내놓지는 못하며 서로 다른 전략을 보이고 있다. 메타버스 시장에 대한 전망 또한 기관마다 큰 차이를 노정하고 편차도 전에 없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 공통의 모범답안이 없는 혼돈의 세계가 도래한 것이다. 이와 같은 세계에 사업 진입을 결정하고 투자를 실행하는 것은 분명 두려운 일이다. 우리는 거스를 수 없는 메타버스 시대에 직면해 있다. 새로운 기회가 있는 영역을 파악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확인해 너무 늦지 않게 진입해야 한다."

 

딜로이트는 보고서에서 과거 플랫폼 선점을 통해 경쟁 우위 효과를 경험한 빅테크 기업들이 비슷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메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텐센트 등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서비스 전 분야에서 공격적인 행보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죠.

 

아울러 딜로이트는 메타버스 시장 규모가 2021년 기준 1220억 달러 수준에서 2025년까지 최소 2400억달러에서 3900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치를 내놨습니다.

딜로이트가 분석한 메타버스의 재등장 요인
사진 : 딜로이트 인사이트 23호

◇메타버스 시장 확대를 위한 필요조건

업계에서는 메타버스 시장이 확대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두 가지를 꼽습니다. 첫째, 하드웨어 인프라스트럭처(VR·AR·HMD)의 보급 확대입니다. 2021년 기준으로 세계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기기 시장 규모는 연간 1000만 대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올해 메타(옛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등의 관련 신제품 출시로 약 3000만대까지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었죠. 3000만 대 규모는 침투율이 1% 미만 수준에 불과합니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뜻이죠. 둘째로는 소프트웨어 인프라의 고도화입니다. 즉 '3D 세계'를 실제로 구축할 수 있는 기술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인데요. 업계에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구축에 최소 5년(2026년까지)이 소요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옵니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처럼 VR가 현실을 대체해 독립적으로 존재·기능하는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너무 먼 미래에나 가능한 기술이 금방 이뤄질 것처럼 말하는 회사가 있다면 의심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딜로이트가 분석한 메타버스의 발전 단계
딜로이트가 분석한 메타버스의 발전 단계. <사진 : 딜로이트 인사이트 23호>

딜로이트는 보고서에서 메타버스 발전 단계에서 현재 우리가 농경 시대에 있다고 비유했습니다. 메타버스가 아직 경쟁 없는 '블루오션'이기 때문에 관련한 수많은 기업과 서비스가 자신만의 틈새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블루 오션 시기는 약 10년이면 끝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보고서는 결국 메타버스 시장이 대기업들의 무대가 될 것이라는 아래와 같은 예상도 내놓았습니다.

 

"대기업들이 전략을 달성하고 충분한 경험을 축적해 시장에서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게 되면 독점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이 시대는 약 20년간 지속되며 대기업들이 한층 거대한 경쟁 장벽을 세우게 될 것이다."

 

이후 메타버스는 가상과 현실의 공생 시대를 거쳐, 가상과 현실이 서로 경쟁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이를 두고 딜로이트는 "지금부터 약 50년 후면 가상 인간이 평범한 인간과 비슷하거나 능가할 정도의 지능을 갖추게 돼 통치권을 두고 실제 사람과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당분간 가상세계는 현실 대체제가 아닌 보완재

투자 관점에서 메타버스 기술은 어떤 단계에 와 있을까요. 기자가 만난 상당수 업계 전문가들은 '현시점에서 가상세계는 현실 대체제가 아닌 보완재 역할'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완전한 가상현실 세계가 이뤄지기 전까지의 과도기 구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과도기 구간에서 메타버스의 효용은 '보완재'에 주목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가상세계의 활동 결과가 현실 세계에서 효율성 개선, 비용 감소 등으로 이어지는 비즈니스가 가능하다는 것이죠.

 

대표적 예가 '디지털 트윈'입니다. 디지털 트윈이란 물리적 자산 대신 소프트웨어로 가상화한 자산의 디지털 트윈을 만들어 시뮬레이션함으로써 실제 자산의 특성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고 여러 산업 분야에서 최적화와 생산성 증가 등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것을 뜻합니다.

 

제조, 에너지, 항공, 헬스케어, 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이 기대됩니다. 업계에서 디지털 트윈 개념의 메타버스가 가장 먼저 현실화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옵니다. 디지털 트윈을 통해 구현되는 메타버스는 가상과 현실세계를 잇는 매개체 역할을 하게 됩니다. 가상세계와 현실세계 사이 거래 수단도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된다면 NFT, 가상화폐 등이 등장하는 지점입니다. 가상과 현실세계 간 거래가 늘어나면서 보안성 강화에 대한 수요도 급격하게 늘어날 수 있겠죠.

 

◇그럼에도 메타버스·웹3.0 투자는 신중해야

수많은 리스크에도 메타버스와 웹 3.0 서비스들 중 일부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과거 구글, 페이스북이 그랬듯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낼 '게임 체인저'가 등장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시장 자체가 아직 '태동기'에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메타버스와 웹3.0 사업을 준비하는 기업들도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기술 축적 없이 단순히 유행에 편승해 서비스를 시작한다면 시장에서 외면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처음엔 기존에 없던 새로운 플랫폼과 보상 형태의 막대한 자금과 이용자들이 몰렸다면, 이제 시장은 '옥석 가리기'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메타버스와 웹 3.0 서비스가 대중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이용자들에게 본질적인 사용가치와 소유 가치를 줄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출처 : 매일경제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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