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집값 향방에 전 국민이 주목하고 있던 6월 2차에 걸친 대통령실의 내각 인선에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인선도 발표되지 않았지만 세간의 관심은 자연스레 국토부 장관 후보에 집중됐다.
지난 10여 년 사이 국토부 장관은 모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쏠리는 자리로 변했다. 유례없는 집값 상승과 부동산 양극화로 인해 뜨거워진 민심(民心)이 정부의 신속한 대응을 바라면서부터다.
이처럼 국토부의 역할이 정책만큼 정무에 쏠리게 되면서 수십 년간 관료나 학자 출신이 차지하던 장관직을 유력 정치인이 차지하게 된 영향도 크다. 문재인 정부 김현미 장관, 윤석열 정부 원희룡 장관을 거쳐 이재명 정부에선 3선 국회의원이자 여당 사무총장인 김윤덕 의원이 첫 장관 후보자가 됐다.‘실세’로 평가되는 정치인 출신이 국토부를 이끌게 되면서 대통령이나 총리,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있던 마이크는 어느새 국토부 장관 몫이 됐다. ‘쇼맨십’이 충만한 장관의 한마디에 속보가 쏟아지고 부동산 커뮤니티와 유튜브,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장관 발언에 대한 확대 재생산을 반복한다. 대중의 관심도가 유명 연예인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 같은 관심은 ‘양날의 검’이 되고 있다. 국가적으로 민감한 부동산·교통은 물론 지역 개발 정책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잘하면 대권주자, 못하면 욕받이”라는 우스개까지 나온다.
관료·학자에서 정치인으로
이재명 대통령은 장고 끝에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을 국토부 장관 후보로 지명했다. 전북 출신인 김 후보자는 전북대 운동권 출신으로 2006년 열린우리당 소속 전북도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김 후보자는 2012년 19대 국회의원으로 중앙정치를 시작한 뒤 후반기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21대 국회의원 당선 후에는 더불어민주당 주거복지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정통 행정관료나 학자 출신에 비해 부동산정책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2021년 호남에 지역구를 둔 의원 가운데 유일하게 제20대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면서 ‘신(新) 이재명계’이자 측근으로 각인됐다.
이처럼 어느새 정권 초 국토부 장관은 여당의 유력 정치인이 맡는다는 공식이 생겨나고 있다. 이에 대해 정권 초 힘 있는 ‘실세’이자 ‘복심’을 투입해 정책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기 위한 방편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이재명 대통령의 ‘부동산 책사’로 불리는 이상경 국토부 1차관(가천대 도시계획조경학부 교수)과 김 후보자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개편 등을 통한 공공주택 공급, 지역균형발전에 힘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윤덕 후보자는 7월 15일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는 길에 기자들을 만나 “LH 개혁의 경우 기존에 해왔던 직원들 문제를 떠나 매우 구조적이고 판을 바꿀 수 있는 큰 규모 개혁을 염두에 두면서 능동적, 공격적으로 임해달라는 주문을 (이 대통령에게서) 받았다”고 말했다. 힘 세진 국
토부, 논란도 많아
정치인이 지휘봉을 잡는 만큼 자연스럽게 반대파들과 대결 구도도 형성된다. 그 과정에서 ‘쎈 소리’도 나온다. 역대 최장수 국토부 장관이었던 김현미 전 장관은 투기세력을 정조준하며 “사는 집이 아니면 파시라”는 발언을 했다. 김 전 장관은 새천년민주당 시절부터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 부대변인으로서 역량을 발휘했다.국회 현안질의에서는 주택공급 대책에 대한 질문에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고 답변한 바 있다. 이는 “2021년, 2022년 아파트 공급 물량이 줄어드는 이유는 5년 전 아파트 인허가 물량이 대폭 줄었고 공공택지도 상당히 많이 취소됐기 때문”이라는 설명과 함께 전 정부를 탓하는 맥락으로 읽혔다.
윤석열 정부 초기 국토부 장관을 지내며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한 원희룡 전 장관은 건설노조와 대립각을 세웠다. 2022년 12월에는 아파트 건설현장을 직접 찾아 “건설노조의 불법행위를 근절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2023년 전세사기 문제가 불거지자 “문재인 정부가 전세사기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관료 출신 중에서는 이명박 정부 2대 국토해양부 수장을 맡았던 권도엽 전 장관이 비교적 큰 목소리를 냈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국세청 사무관, 건설교통부 국토계획국, 주택도시국 과장, 국토해양부 1대 차관을 거친 권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 핵심 공약이던 ‘4대 강 사업’에 대한 공격을 방어하는 한편,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의 재건축·재개발 정책 기조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여론에 미치는 파급력은 최근 정치인 장관에 미치지 못한다. 대중적인 인지도 차이가 있는 것은 물론 미디어 환경도 예전과 달라졌다.이 같은 특징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각종 발언에 대한 잡음이 나오면서 그사이 실무자들이 계획한 실효성 있는 정책 논의는 묻힌다는 것이다. 반면 오히려 실무진이 설계한 정책에 힘이 실린다는 분석도 있다.
국토부 내부에서는 이름 있는 ‘정권 실세’가 장관으로 오는 것을 나쁘게만 보지는 않는 분위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부처 자체에 힘이 실릴 뿐 아니라 예산을 관할하는 기획재정부와의 알력관계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어 내부에선 정권 실세가 오는 것을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철도공사(KORAIL) 등 쟁쟁한 산하 공기업을 두고 택지개발부터 교통 인프라, 주택공급 등 각종 민감한 사안을 결정하는 자리인 만큼 국토부 장관의 권한은 막대하다. 지역개발 이권을 다루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조차 의원들 사이에서 모두 가고 싶어 하는 자리지만 정치권에선 “국회의원 4년과 장관 1년이 맞먹는다”는 말이 있다.
가진 권한도 많지만 책임도 크다. 국토부 장관은 여론의 관심만큼 비난과 지적에도 익숙해야 하는 자리에 속한다. 검증과정에서부터 자산 증여나 매매 거래 등에 대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임기 후에는 부동산 관련 이권에 연루됐다는 의혹만으로도 뒤끝이 좋지 않을 수 있다.원희룡 전 장관이 김건희 여사 일가 땅 근처로 고속도로 위치를 변경했다는 ‘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 수사가 시작되면서 출국금지된 가운데 김현미 전 장관은 국토부의 관리·감독 권한을 이용해 민간기업에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의 취업을 청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