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인 2015년, 17만~18만원이면 살 수 있던 돌 반지 한 돈(3.75g) 가격이 현재 70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세공비 등을 더한 소매 가격은 80만원에 육박한다.
금값의 고공행진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국제 금 가격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온스당 3700달러 선을 넘보고 있고, 국내 금값 역시 g당 17만원을 돌파하며 전례 없는 수준으로 치솟았다. ‘골드 러시’ 배경에는 미국의 통화 정책 완화(금리 인하) 기대감, 지정학적 리스크 심화, 그리고 각국 중앙은행의 ‘탈달러’ 기조에 따른 금 매입 릴레이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금값 급등 왜?
금리·전쟁·중앙은행 매입
최근 금값의 가파른 상승세로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 동력을 핵심 원인으로 꼽는다. ‘미국 연준의 통화 정책 완화 기대감’ ‘지정학적 리스크 심화’, 그리고 ‘각국 중앙은행의 거침없는 금 매입’이다.
무엇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금값 상승의 가장 강력한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 금은 이자가 붙지 않는 자산이다. 따라서 금리가 높을 때는 채권이나 예금 등 이자를 주는 자산에 비해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 반대로 금리가 인하되면 금 보유에 따른 기회비용이 줄어들고,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서 달러로 표시되는 금 가격은 상대적으로 상승 압력을 받는다. 시장은 연준이 조만간 금리 인하 사이클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하며, 이는 실질금리를 끌어내려 금의 투자 매력을 한층 더 높일 전망이다.
민세진 신한은행 프리미어 PWM파이낸스센터 팀장은 “달러인덱스가 4년 만에 최저치를 찍는 등 안전자산인 금의 선호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지정학적 리스크 역시 금의 ‘안전자산’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중동 긴장이 지속되는 등 국제 정세가 불안할수록 투자자들은 주식이나 채권 같은 위험자산 대신 금과 같은 안전자산으로 눈을 돌린다. 과거에는 국지적 분쟁이나 단발성 위기가 금값을 단기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그쳤다면, 현재는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지정학적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금에 대한 수요를 구조적으로 떠받치고 있다.
송종길 한국금거래소 사업사장은 “과거에는 단발적 요인에 의해 금에 대한 투자 심리를 자극하는 기간이 짧았으나, 현재는 투자 매수와 차익 실현 매도가 장기화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한국금거래소의 판매 실적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된다. 골드바 판매량은 2022년 3.3t에서 2025년 8월 누적 기준 6.8t으로 급증했고, 같은 기간 실버바 판매량은 7.5t에서 24t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불확실성 시대에 실물 안전자산을 확보하려는 수요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각국 중앙은행의 ‘골드 러시’도 금값 상승에 한몫한다. 특히 신흥국을 중심으로 ‘탈달러(De-dollarization)’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외환보유고에서 달러 비중을 줄이고 금 보유량을 늘리는 추세가 뚜렷하다.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중앙은행은 1037t에 달하는 금을 순매수하며 1950년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런 흐름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중앙은행의 꾸준한 금 매입은 시장에 강력한 수요 기반을 제공하며 가격 하단을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송종길 사장은 “과거보다 훨씬 조직적이고 규모가 큰 자금(ETF, 중앙은행, 투기적 수요 등)이 동시에 여러 지역에서 움직이는 것이 현재 금 시장의 특징”이라고 진단했다.
계속 오를까?
“건강한 조정 거쳐 우상향”
사상 최고치를 뚫은 금값이 과연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추가 상승에 무게를 싣는다. 다만 최근의 단기 급등에 따른 ‘숨 고르기’는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본다.
김도아 우리은행 TCE PB지점장은 “최근 단기 급등한 만큼 기술적 조정이 있을 수 있지만, 추세적 하락이 아니라 ‘건강한 조정’으로 봐야 한다”며 “2025년 하반기와 2026년 초까지 온스당 2900~3200달러대 박스권을 예상하며, 금리 인하가 지속적으로 실행될 경우 3500달러 선 이상도 노려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보다 낙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한국금거래소, 신한은행 등은 내년 상반기까지 온스당 4000달러대의 상승 여력이 크다고 내다본다.
향후 금 시장 방향키는 ‘실질금리’와 ‘중앙은행의 매입 기조’라는 두 가지 변수가 쥐고 있다. 김도아 지점장은 “연준의 기준금리 정책과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금값 변동의 가장 직접적인 트리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앙은행의 구조적 매입세는 금값의 강력한 하방 지지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투자 전략은
포트폴리오 분산…절세·편의성 따져야
지금이라도 금 투자를 고려하는 투자자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도아 지점장은 “금은 주식, 채권과 상관관계가 낮아 포트폴리오 분산, 리스크 헤지 자산이라는 본연의 가치가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며 여전히 투자 가치가 있다고 설명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포트폴리오 분산’ 차원 접근을 한목소리로 권했다.
민세진 팀장은 “전체 포트폴리오의 5~10% 정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분할매수하는 전략이 유효하다”고 조언했다. 투자 방식은 크게 실물 투자, 골드뱅킹, ETF 등으로 나뉜다.
실물 투자는 10%의 부가세 등 비용 부담이 크지만 전통적인 안전자산 보유라는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이에 대해 송종길 사장은 “실물 투자는 심리적 안정감 외에도 재산 분산 및 상속 증여,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서의 가치가 크다”며 “부가세 부담이 없는 골드 유가증권이나 개인 간 직거래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개인 투자자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골드뱅킹과 ETF가 꼽힌다. 김도아 지점장은 “ETF는 주식처럼 손쉽게 매매할 수 있어 시장 변동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고, 골드뱅킹은 소액 적립식 투자로 분할매수 전략에 적합하다”고 추천했다.
다만 세금 문제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이 두 방식은 매매차익에 15.4%의 배당소득세가 부과된다.
민세진 팀장은 절세 관점에서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KRX 금 현물 직접 투자를 추천한다”며 “장기 투자를 계획한다면 IRP나 ISA 같은 절세 계좌를 활용해 금 ETF를 매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결국 종합적으로 따져 가장 적합한 투자 수단을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